표지이야기➊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나라살림 볼모로 여야 정쟁
법망 밖 예산 이대로 괜찮나
소소위원회 밀실합의 장터
‘2+2’ ‘3+3’ 협의체 말장난

여야가 나라살림을 앞에 두고 정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야가 나라살림을 앞에 두고 정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역사 장식한 컷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마다 ‘올해의 사진(The Year in Photos)’을 발표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열정적인 제스처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바라보는 모습(2015년 6월·사진❶),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끝나자마자 연설문을 건조하게 찢고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모습(2020년 2월·사진❷) 등 역사의 한토막을 장식한 컷이 등재돼 있다.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국회도 ‘올해의 사진’에 선정된 적이 있다. 2010년이었다. 

# 부끄러운 자화상 

커다란 문짝 곳곳에 금이 가 있다. 그 문짝 앞에선 사람들이 엉겨 붙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살펴보니 이명박(MB) 정부 시절 여당(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이 야당(민주당)의 봉쇄를 뚫고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는 광경이다. ‘2011년 4대강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드잡이를 넘어 몸싸움으로 비화했던 건데, WSJ는 바로 이 장면을 2010년 올해의 사진으로 뽑았다(사진❸).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으로 모자라 나라살림을 두고도 다투는 여야 정치인의 모습이 WSJ의 눈엔 희한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다. 그때 그 일을 깊이 성찰했는지 여야는 국회선진화법이란 그럴듯한 법체계를 만들었다. 2022년 우리 국회의 얼굴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 한심하거나 볼썽사납거나 

혹시나 했지만…, 괜한 질문을 던졌다.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회의 자화상은 똑같다. 올해도 여야는 ‘2023년 예산’ 앞에서 갈라섰다. 예산안 법정기한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버렸다(12월 2일·회계연도 개시 30일 전).

갈등의 이유는 쓸모없는 정쟁이다. 여당은 ‘이재명표 예산’을, 야당은 ‘윤석열표 예산’을 거칠게 비판하면서 제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야당이 나라살림을 볼모로 잡은 채 ‘행안부 장관 해임’을 요구한 것도 볼썽사납지만, 여당이 ‘말 많고 탈 많은 장관’을 지키겠다며 버티는 모습도 한심하다. 

내심 민망했는지 ‘협상 테이블’을 차려놓긴 했다. 국회 예결위 소위원회에 ‘소小’자를 맘대로 붙인 정체불명의 ‘소소위원회’란 테이블이다. 이 위원회는 통상 국회 예결위원장(1명), 교섭단체가 있는 여당 간사(1명), 야당 간사(1명)로 구성되는데, 합법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숱한 미디어에서 연일 쏟아내는 2+2 협의체니 3+3 협의체니 하는 것도 모두 ‘법에 없는’ 조직이다.[※참고: 2+2는 여야 정책위원장 1명을 더 붙인다는 거고, 3+3은 여기에 여야 원내대표를 추가로 넣겠다는 거다. 말장난이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사진=월스트리트저널]

# 정부예산의 속성 

혹자는 ‘정치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정부예산을 짜는 것도 정치행위이니 여야가 다투는 건 당연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설득력 없는 주장은 아니다. 정부예산은 나라의 1년 치 수입과 지출을 미리 셈해서 수립하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정부예산을 결정하는 과정에선 각계각층의 요구가 다양한 형태로 분출한다. 예산을 짠다는 건 누가 얼마를 내고, 어떤 혜택을 받는지 결정하는 가치배분의 과정이어서다. 당연히 예산은 수요자 모두의 바람을 충족하기 어렵다. 예산을 사이에 두고 환호·비난·다툼이 교차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여야의 다툼이 나라살림이나 민생을 위한 것이라면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의미 있는 싸움을 벌인 적 없다. 그들이 갈등을 빚는 대부분의 이유는 진영의 승리와 자신들의 이익, 두개뿐이다. 

# 불법과 관례의 장  

여기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 정부예산은 ‘총액배분 자율편성 예산제도’ 방식이다. 부처별로 예산총액의 한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을 짠다. 예산을 더 많이 받으려는 부처 간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처 예산의 얼개를 짜는 시기는 대개 5월 말이다. 6~8월엔 각 부처와 집권여당이 협의해 예산안의 윤곽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여당 금배지의 은밀한 쪽지가 중앙예산기관에 날아든다. 대부분 ‘지역구 예산 좀 챙겨달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설계한 예산안은 9월 초 국회에 전달된다. 야당 금배지는 그제야 예산안을 볼 수 있다. 큰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으니, 야당은 정부와 여당이 만든 틀 안에서 예산을 갈라 먹어야 한다. 그래서 상임위원회별로 진행하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선 예산액이 늘어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번엔 야당의 쪽지가 곁들여져서다. 

물론 이마저도 법정기한을 지켰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법정기한을 넘긴 예산안은 앞서 꼬집은 것처럼 소소위원회란 ‘불법과 관례의 장’에서 요리된다. 어떤 기록도 남지 않고, 어떤 쪽지가 전달됐는지도 알 수 없으니, ‘밀실 야합’이란 비판을 들을 법하다. 

# 세금과 예산의 가치 

이처럼 정부예산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건 위험하다. 정쟁으로 얼룩진 예산은 ‘자원배분’ 효과를 무력화한다. 비합리적인 예산은 공정과 평등이란 가치를 훼손한다.  1920년대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은 자신의 저서 「재정학설에 관한 연구(Finanz 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en)」에서 “재정민주주의는 시민의 재정 선호를 반영한 예산이 집행될 때 달성된다”고 주장했다.

2+2 협의체든 3+3 협의체든 모두 ‘법에 없는’ 조직일 뿐이다.[사진=뉴시스]
2+2 협의체든 3+3 협의체든 모두 ‘법에 없는’ 조직일 뿐이다.[사진=뉴시스]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예산을 편성하고 재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편익과 선호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그 자리를 꿰차는 건 밀실에서 예산을 주무르는 여야 정치권의 탐욕과 이익이다. 

크누트 빅셀은 이런 오류를 매섭게 꼬집었다. “납세자가 나라에 바치는 세금의 가치는 정부가 민간에 지출하는 비용의 가치와 일치해야 한다(The value of taxes paid by taxpayers to the country should be equal to the value of expenses and benefits that the government spends on the private sector).” 

어떤가. 우리 국회는 납세자인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라살림을 심의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를 수호할 의무가 있는 국회는 과연 재정민주주의를 준수하고 있는가. 정부예산 앞에서 대치 중인 여야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 523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12월 12일 발간하는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총론입니다. 이어지는 기사  「파트1 법망 바깥에서 예산 짜는 ‘법 만드는 사람들’」을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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