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메기는 누구 편일까
영세 알뜰폰 사업자 어디로
치열한 경쟁 소비자에겐 득

통신업계가 알뜰폰 이야기로 또다시 시끌벅적해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알뜰폰 사업에 뛰어들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입니다. 이를 두고 알뜰폰 업계는 “영세 사업자를 위협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잠식한 알뜰폰 시장에 대형 금융회사를 넣겠다는 발상이 아이러니하다는 겁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대격변’의 조짐을 보이는 알뜰폰 산업을 취재했습니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알뜰폰 진출을 허용하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알뜰폰 진출을 허용하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금산분리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겠다.” 지난 11월 14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규제를 완화해 금융회사가 금융사업 외의 영역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진출 허용 사업으론 알뜰폰·배달앱 등 통신·IT 서비스가 뽑힐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통신업계 측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지난 8일 “금융당국이 알뜰폰 사업을 금융회사의 부수업무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KMDA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이하 알뜰폰협회)는 이미 지난 6월 “금융회사의 알뜰폰 사업 진출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면서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죠.

금융회사가 알뜰폰 사업에 진출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길래 이러는 걸까요. 먼저 금융위가 언급한 금산분리金産分離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금산분리의 핵심은 이름이 말해주듯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겁니다. 이 원칙 아래에서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회사는 유통업·제조업·통신업 등 금융과 관련이 없는 사업에는 진출할 수 없습니다. 관련 자회사나 계열사를 두는 것도 불법이죠.

금산분리를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다른 산업의 위험요소가 금융산업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막강한 금융회사의 자본력으로 인해 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얽히는 걸 사전에 차단해 각자의 시장이 혼란스러워지는 걸 예방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정부는 몇년 전부터 금산분리 원칙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려는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2019년 4월 금융위원회가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을 전면 시행한 게 대표적입니다. 이 법을 발판으로 KB국민은행이 2019년 금융규제 특례(샌드박스) 1호로 선정됐고, 그해 10월 금융회사 최초로 알뜰폰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KB국민은행은 알뜰폰 사업을 빠르게 키워나갔습니다.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브랜드 리브엠(Liiv M)은 출시한 지 2년 7개월 만인 지난 5월 가입자 수 30만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죠. 이는 이통3사의 자회사를 제외하면 업계 3위인 수준이니, 단기간에 이룬 놀라운 성과임에 분명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기업들도 조금씩 알뜰폰 사업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두에 서 있는 건 금융앱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입니다. 지난 7월 알뜰폰 사업자인 머천드코리아를 인수·합병(M&A)한 이 회사는 내년 초 알뜰폰 사업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 중심엔 ‘토스앱’이 있습니다. 사용자 편의를 높이고, 가입자도 수월하게 유치하기 위해서죠.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토스는 뱅킹 기능부터 결제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앱”이라면서 “알뜰폰 사업을 시작하면 토스와의 시너지를 통해 단기간에 많은 가입자를 끌어모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참고: 비바리퍼블리카의 케이스는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합니다. 이 회사가 금융회사가 아닌 핀테크 기업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죠. 비바리퍼블리카의 자본은 금융이 아닌 산업자본에 해당하므로 금산분리의 제약 없이 알뜰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은 서비스 론칭 2년 반 만에 가입자 30만명을 끌어모았다.[사진=KB국민은행 제공]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은 서비스 론칭 2년 반 만에 가입자 30만명을 끌어모았다.[사진=KB국민은행 제공]

자! 이쯤 되면 알뜰폰 업계가 시끌벅적한 이유가 눈에 들어오실 겁니다. KMDA와 알뜰폰협회 등 일부 통신업계는 금융권이 기반사업과 자본력을 앞세워 알뜰폰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알뜰폰협회가 리브엠의 마케팅 방식을 지적하는 성명을 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리브엠은 2019년 론칭 당시 도매대가(통신사로부터 망을 빌려 쓰는 대가로 지불하는 대가)가 3만3000원짜리인 요금제를 2만2000원에 판매하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2020년엔 알뜰폰 업계 최초로 멤버십 서비스도 선보였죠.

그 정도가 지나쳤는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KB국민은행은 “불법지원금을 동원해 단말기를 판매해 유통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금융회사 하나의 출혈경쟁이 이 정도 수준이니 중소 알뜰폰 업체들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가긴 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소비자 입장에서 따져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경쟁업체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권이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업자 간 경쟁 덕분에 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서비스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겁니다.

김용희 숭실대(경영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현재 국내 알뜰폰 시장 점유율은 이통3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과점 상황에선 자연히 사업자 간 경쟁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비자에겐 마이너스다. 이 구조를 깨뜨리려면 경쟁을 부추길 수 있는 ‘메기’가 필요한데, 영세 알뜰폰 사업자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대기업급 자본력을 갖춘 사업자여야 한다.”

소비자는 환영할 만해

지금은 빛이 바랜 지 오래지만, 금융회사의 알뜰폰 시장 진출은 2010년 정부가 처음으로 알뜰폰을 도입했을 때의 취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그해 8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다양한 사업자의 시장진입과 다양한 형태의 사업 모델의 등장을 유도해 결과적으로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하고 이용자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 도매규제(알뜰폰 관련 통신정책) 도입의 주요 취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금융회사를 알뜰폰 판에 앉히려는 정부의 행보가 그리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물론 영세 알뜰폰 사업자를 배려하는 정책 또한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이들 사업자가 금융회사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면 경쟁업체가 줄어들고, 다시 거대 기업 위주로 재편돼 시장이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잠식한 시장을 대기업의 힘으로 풀어보겠다는 발상도 실은 아이러니합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금융회사를 끌어들일 경우 영세 알뜰폰 사업자들이 자생할 수 있는 정책을 동반해야 한다”면서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닌 경쟁력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금산분리 제도를 완화하려는 금융당국의 의지는 꽤 확고한 듯합니다. ▲금융회사의 비금융 자회사 범위 확대 ▲일부 업종 제외하고 비금융 업무 진출을 전면 허용(네거티브 규제) 등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고 있어서입니다. 금융회사가 알뜰폰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되면 알뜰폰 시장도 격변기를 맞을 공산이 큽니다. 정부는 과연 경쟁 활성화와 영세 사업자 보호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요? 아직은 확실치 않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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