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독과점 해소 전제로 통합 승인
대한항공 ‘슬롯 이전’ 시정조치안 제출
미국, 일본, EU에도 영향 미칠 전망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자료 | 더스쿠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ㆍ합병(M&A)에 훈풍이 불고 있다. M&A 필수신고국가 중 하나인 중국이 두 항공사의 통합을 승인하면서다.

통합항공사가 정식 출범하기 위해선 주요 경쟁당국(14개국) 중 필수신고국가(▲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의 기업결합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 경쟁당국의 심사를 통과하면서 대한항공은 통합항공사를 향한 7부 능선을 넘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먼저 양사의 통합을 승인한 중국이 제한 조건을 내걸었다. 중국 시장총국은 통합항공사의 일부 노선에 독과점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경쟁 제한성을 해소할 시정조치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일리가 없는 요구는 아니다. 이근영 한국교통대(항공운항학) 교수는 “가뜩이나 두 항공사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상황에서 통합항공사가 출범하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가격결정권을 쥐게 될 것”이라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항공편을 이용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에 대한항공은 통합항공사의 9개 중복노선에 신규진입을 희망하는 항공사가 있을 경우 슬롯(Slot)을 이전하겠다는 시정조치안을 제출했다. 슬롯은 항공사가 원하는 시간에 공항시설을 이용하면서 항공기를 이착륙시킬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문제는 슬롯이 항공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재산이란 점이다.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시간대의 슬롯을 보유할수록 항공사는 더 많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해당 항공사를 이용하려는 승객들이 많아서다. 이런 맥락에서 승객들의 수요가 많은 ‘황금시간대’ 슬롯을 외항사에 이전한다면 통합항공사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조건부 승인이 미국ㆍEUㆍ일본의 기업결합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슬롯 이전이 미국ㆍEUㆍ일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이 통합항공사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정도의 초대형 항공사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대기업밖에 없다”면서 “대한항공으로선 인수 과정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향후엔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 다른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셈”이라고 말했다. ‘차 떼고 포 떼는’ 형국에서 대한항공의 선택은 의미 있는 결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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