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➌
SPC 사망사고 70여일 후
노동개선만큼 유지도 관건
사회적 관심 끊어선 안 돼

꽃다운 나이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70여일이 지났다.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회사는 안전대책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문제는 불거졌다. 고용노동부 감독관의 감독계획서를 직원이 불법 촬영해 회사 메신저에 공유했다. 회장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과 회사가 내놓은 대책의 ‘진정성’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국내 제빵업계 1위 SPC의 이야기다. 사고 발생 70여일, SPC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SPC그룹 계열의 SPL 평택공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70여일이 지났다.[사진=연합뉴스]
SPC그룹 계열의 SPL 평택공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70여일이 지났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15일 20대 젊은 노동자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SPC그룹(이하 SPC) 계열의 SPL 평택공장에서 일하던 이 노동자는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는 교반기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다. 이 교반기에는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없었다. 사고 즉시 기계를 멈춰줄 동료 또한 주위에 없었다. ‘안전’보다 ‘효율’만 좇은 결과였다. 

사람들의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킨 건 그 이후였다. SPC 측은 사고 발생 직후에도 공장 가동을 지속하고, 노동자의 빈소에 상조지원품으로 빵을 보내는 등 부적절한 대응을 계속했다. 결국 사고 발생 6일 만인 10월 21일 허영인 SPC 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고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SPC 계열의 샤니 성남공장에서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대기업 제빵회사인 SPC의 안일한 노동·안전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었다. 

고용노동부는 10월 28일부터 11월 18일까지 SPC 20여개 계열사 총 64개 사업장의 기획감독에 나섰지만, 그 과정에서도 잡음이 새어 나왔다. 기획감독이 진행 중이던 11월 3일 삼립세종생산센터에서 회사 직원이 현장 감독관의 ‘감독계획서’를 무단 촬영해 사내 메신저에 공유했기 때문이다. 

감독계획서에는 감독 일정, 감독반 편성, 감독 대상 사업장 등이 쓰여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직원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SPC 측은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엄중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SPC가 노동환경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꼼수를 부리려다 직원 꼬리 자르기로 끝내는 것 아니냐” 등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위선희 정의당 대변인은 “허영인 회장이 노동자 사망 사고에 진심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 이런 일이 더는 일어날 수 없다”면서 “SPC는 해당 직원으로 꼬리 자르기를 해선 안 되며 명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PC가 보여준 이같은 태도는 SPC 불매운동을 부채질했다. 그 여파는 애먼 가맹점주에게로 향했다. ‘파리바게뜨’ 등 SPC 계열의 6050개(2020년 기준) 가맹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SPC 측은 대표 브랜드인 파리바게뜨 가맹점주에게 ‘완제품 빵 반품’ ‘매입가 10% 인하’ 등의 지원 대책을 내놨다. 

사고에 사고, 논란에 논란이 더해진 지난 70여일. 지금 SPC 노동자와 가맹점주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SPC는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있을까. 

■ 노동자는 지금… = 지난 11월 14일 SPC는 안전경영위원회(이하 안전경영위)를 출범했다.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발표한 ‘재발 방지 대책’의 일환이었다. SPC 측은 “안전경영위가 전 계열사 사업장의 산업안전, 노동환경,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사항을 감독하게 된다”면서 “독립된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안전경영위는 사업장을 현장 점검하고, 직원 간담회를 진행했다.

아울러 전체 사업장에 ‘ISO45001’ 인증을 권고해 SPC가 이를 추진하고 있다.[※참고: ISO45001은 국제표준화기구가 2018년 제정한 ‘산업보건 및 안전관리 경영시스템’의 국제 표준인증이다.] 

안전경영위가 출범한 지 25일 만인 지난 12월 8일 SPC는 “외부 전문기관의 안전진단을 진행하고 개선 작업의 90%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SPC는 사업장별로 평균 10여개 개선사항을 지적받아 개선했는데, ▲연동장치(인터락)·안전난간·안전망·안전덮개 추가 설치 ▲안전라인 도색 ▲사다리 시건장치 교체 ▲카트바퀴 구름방지 장치 교체 등이었다.

[※참고: 고용노동부는 12월 28일 SPC 산업안전·근로기준 기획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SPC 계열사 사업장 중 86.5%(45개소)에서 277건의 산업안전법 위반 사항을 적발해 과태료 6억원을 부과했다. 아울러 12억원대 임금 체불,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 특별 연장근로 등 노동 관계법 위반사항 116건을 적발했다.]  

그럼 현장의 반응은 어떨까. SPC 소속 노동자 A씨는 “안전덮개를 설치하고, 안전라인을 도색하는 등 눈에 보이는 조치들은 개선된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의 세세한 고충을 듣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고강도 노동을 막기 위한 인력 충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개선 작업의 본질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안전관리학)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사고가 발생한 교반기는 덮개가 열리면 기계가 멈추도록 하는 연동장치를 분리한 상태였다. 40~50년 전에 개발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해놓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데 안전조치라는 게 분리했던 연동장치나 덮개 등을 다시 붙이는 간단한 작업이다. 이건 개선이 아니라 ‘유지’에 가깝다.” 

강 교수는 이어 말했다. “이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사리지면 SPC는 언제든 이 덮개를 떼어 내고 속도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소비자들이 SPC 경영진이 책임 의식을 갖고 안전경영 시스템을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을 끊지 않아야 한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연합뉴스]

■ 가맹점은 지금… = 이번엔 가맹점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가맹점주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점주 B씨는 “불매운동이 지속하면서 가맹점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면서 “‘반품 지원’ ‘매입가 인하’ 등 한시적인 지원책이 끝나서 회사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건 파리바게뜨 외 가맹점주협의회가 없는 중소 브랜드 가맹점주는 이런 지원책에서도 소외됐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SPC는 호실적을 기록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12일 ‘캐릭터빵 내년에 더 강해진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SPC삼립이 4분기에도 시장기대치에 부합하는 양호한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계열사 사고에 따른 불매운동으로 파리바게뜨(파리크라상)는 매출 타격이 상당한 반면, SPC삼립의 실적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끔찍한 사고도, 그에 따른 불매운동도 결국 을乙의 몫으로 남을까. 그 사건 이후 70여일, SPC의 자화상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