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사취조단 ❹
사측 먹통 사태 피해 보상안 완료
먹통 방지법 본회의 통과했지만
예방 골든타임 놓친 점 아쉬움 커
2020년 먹통 방지법 가로막은
금배지는 왜 유감 표명도 안 하나

국회가 카카오 먹통 사태를 방지할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사후약방문 격이란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국회가 카카오 먹통 사태를 방지할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사후약방문 격이란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 2022년 10월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태’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회사 측은 재발 방지 대책을 꺼냈고, 국회는 사고를 방지할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행이고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는 대응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회는 일찍이 사태를 막을 만한 법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지난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데이터센터 재난관리를 강화할 법안이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관심이 큰 사고가 터질 때만 부랴부랴 움직인다. 뒤늦게 여론에 떠밀려 법을 만들고 규제를 보완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전에 왜 법을 만들지 않았는지’를 해명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폐기한 법안의 공백 때문에 사고가 터져도 책임지는 이들은 없다. 말 그대로 반복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재발 방지책이 아닌 사전에 문제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을 만들 순 없는 걸까. 

# 박주현 동아대(정치외교학) 학생이 ‘카카오 먹통과 금배지의 낮잠 누가 누굴 탓하랴(더스쿠프 통권 516호)’ 기사를 읽고 사후약방문식 규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대학생과 더스쿠프, 온라인 북 제작업체 북팟이 기사의 가치를 같이 만들어가는 ‘대학생 기사취조단’ 네번째 편이다.

나는 ‘카카오 세상’에 살고 있다. 친구와 대화를 주고받을 땐 카카오톡을 활용하고, 조별과제를 수행할 땐 ‘단체 톡방’을 만든다. 친구와 밥 먹고 놀고 난 뒤엔 카카오페이 ‘송금하기’를 쓴다. 번거롭게 계좌번호를 기억하고 보안카드를 챙겨 다닐 필요가 없다. 손가락 몇번 움직이면 더치페이를 할 수 있다.

카카오뱅크엔 계좌를 개설해 놨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스마트폰에서 통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임 회비를 투명하고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는 ‘모임 통장’ 역시 유용하게 쓰고 있다.

학교에 오가거나 남는 휴식 시간엔 카카오 웹툰의 인기작들을 본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대중교통 이용이 여의찮을 땐, 카카오T를 이용해 택시를 부른다. 주변엔 이 앱으로 전동킥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친구도 있다. 

지금은 유튜브뮤직으로 갈아탔지만, 과거엔 카카오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을 이용했다. 지도 앱도 카카오맵을 활용한다. 방문한 매장의 특징을 남길 수 있는 ‘마커’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다니는 골목 곳곳에 마커를 통해 흔적과 후기를 남겨 놨다.

그런데 2022년 10월 15일, 이 세상이 갑자기 멈췄다. 주말이었지만 학보사 활동을 하느라 팀원들과 업무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소통이 끊겼다. 부랴부랴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의견을 전달해야 했다. 자주 쓰던 카카오맵도 안 켜지면서 낯선 네이버지도를 새롭게 설치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엔 술자리 약속도 있었다. 카카오T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도로 위에서 손짓으로 택시를 호출해 귀가했다. 친구들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카카오 서비스를 향해 불만을 쏟아냈다

내 주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멈춰버린 카톡 탓에 약속이 무산된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굴렀고, 카톡으로 업무 내용을 주고받던 직장인이 불편을 겪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카카오T로 호출을 받지 못한 택시기사와 톡채널에 입점했는데 접속 장애로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사장님들의 사연도 안쓰러웠다.

민간 기업의 서비스가 멈췄을 뿐인데, 우리 국민들은 재난이나 다름없는 일을 겪었다. 카카오 서비스가 그만큼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문제의 원인은 경기도 성남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여기에 입주해 있던 카카오 서버 전원이 차단되면서 사태가 벌어졌다. 카카오는 화재 발생 후 수일이 지난 후에도 일부 서비스를 정상화하지 못했다. 카카오는 먹통 사태에 따른 서비스 장애 기간을 127시간 30분으로 공식화했다. 

카카오 측은 2022년 12월 비상대책위원회를 내세워 서비스 안정성 부족을 인정하는 반성문을 냈다. 이 회사는 사태의 원인을 “데이터센터 및 시스템 운영 관리 도구의 이중화가 미흡했고, 공동체를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카카오의 서비스 안정화가 최우선 과제이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을 명심하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카카오는 재발 방지 대책의 핵심으로 ‘시스템 전체 이중화 추진’을 꼽았다. 특히 재난복구 시스템은 데이터센터 3개가 연동되는 삼중화 이상의 환경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IT엔지니어 조직의 확대 편성 ▲재해복구위원회 신설 ▲향후 5년간 데이터센터 건립 등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를 이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아울러 서비스 장애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 현금을 보상하는 지원책도 마련했다.  올해 들어선 ‘2023년 카카오팀의 다짐’이란 보고서를 발간하고 “지난 두달여의 시간 동안 사용자분이 전해주신 마음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봤다”면서 “이번 서비스 장애를 통해 카카오가 전 국민의 일상을 지키고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뼈 아프게 깨달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기업의 약속이나 다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곤란하다. 비용절감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을 고려하면, 비슷한 사고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사고가 벌어지고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을 때만 경영진이나 책임자가 고개를 숙이는 것도 어쩌면 습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 국민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회는 같은 사태를 방지할 ‘카카오 먹통 방지법’을 2022년 12월 통과시켰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ㆍ전기통신사업법ㆍ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일부 개정안 등이다. 몇몇의 기권표를 제외하곤 반대표 없이 만장일치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법안의 골자를 살펴보자. 개정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르면 카카오ㆍ네이버 같은 대형 플랫폼 사업자(부가통신사업자)는 앞으로 재난을 수습ㆍ복구하기 위한 방송통신 재난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현재 재난관리 계획에는 이통3사를 비롯한 기간통신사업자와 지상파방송, 종편ㆍ보도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등만 포함돼 있다.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은 이들 대형 플랫폼 사업자가 트래픽 현황과 구체적인 이용자 수를 과기부 장관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개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은 데이터센터 임차 사업자가 재난으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이 중단될 경우, 현황과 조치 내용을 과기부 장관에 보고하도록 했다. 앞으로 대형 플랫폼 사업자가 정부의 관리와 감시를 더 꼼꼼하게 받게 된다는 얘기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하지만 이 법의 통과를 두고 “잘했다”고 박수 치는 건 민망한 일이다.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서다. 애초에 카카오 먹통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2020년 5월 당시 박선숙 민생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을 통해서였다. 

이 법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카카오 먹통 방지법과 내용이 유사했다. 데이터센터를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수립ㆍ시행하는 대상으로 포함하는 게 골자였다.

박 의원은 2018년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사건을 교훈 삼았다. 당시 사고도 심각한 피해를 불러일으켰다. KT의 인터넷ㆍ스마트폰ㆍIPTVㆍ카드결제 단말기 등이 무더기로 마비됐다. 특히 카드결제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소상공인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피해액만 수백억원에 달했다. 

박 의원은 “방송통신재난으로 데이터센터가 작동하지 않아 데이터가 소실될 경우 기업과 소비자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면서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 대상에 서버ㆍ저장장치ㆍ네트워크 등을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법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박선숙 의원안’을 반대했다. 데이터센터가 이미 ‘정보통신기반보호법’에 따라 관리받고 있는 만큼 이중규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통해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김종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관련 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입법 시) 산업 발전을 저해할 요소가 있다”면서 “중복규제로 과잉금지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점식 의원(미래통합당)은 “데이터센터를 규제할 경우 기업의 영업기밀이나 소비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면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법이 통과하면 중복규제, 과잉규제가 문제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진행된 상임위 회의에선 이 우려가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문제란 점이 드러났다. 당시 손금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렇게 발언했다. “데이터센터와 관련해선 기존 정통망법 46조와 시행령이 재난에 대비한 보호조치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법인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상에 재난에 대한 추가 조치를 규정하면 중복 규제의 우려가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있다. 과연 중복 규제의 가능성을 완화할 수 있는 어떤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자 최기영 전 과기정통부 장관이 중복 규제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제시했다. 최 전 장관은 “정보통신망법과 중복 문제가 조금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시행령으로 충분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사항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시행령을 잘 만들어서 그런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 부처에서 시행령으로 중복 규제 가능성을 완화할 방안이 있다고 강조했는데도, 이 법은 20대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폐기됐다.

사실 이 법안의 통과를 반대한 국회의원들의 논리는 기업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읊은 것이다. 국내 여러 빅테크가 모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박선숙 의원안을 두고 “민간 기업의 재산권 침해 논란과 해외 기업 대비 경쟁력 약화할 수 있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기업들이 규제를 반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경영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카카오와 같은 거대 플랫폼은 공공성을 띠고 있다. 이들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면 국민들에게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은 예전부터 지적돼왔다. 우리 사회는 이미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등 온라인 플랫폼이 없다면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가 됐다. 국민 일상을 위협하는 사고가 벌어진 이후에만 규제 목소리를 내는 건 너무 늦다.

과도한 규제로 기업 혁신의 발목을 잡는 것도 문제지만, 독과점의 폐해를 간과해선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과 규제를 수립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중요한 건 시기다.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 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또 있다. 국회의원들은 늘 사고만 터지면 ‘법안’들을 줄줄이 내놓는다. 하지만 정작 국회에서 이를 활발하게 논의하는 의원은 극소수다. 자신들이 폐기한 법안의 공백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이도 없다. 카카오 먹통 사태를 일으킨 플랫폼 업체도 문제지만, 민의의 정당 국회도 문제다. 이들을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까. 카카오 먹통 사태에 숨은 중대한 과제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박주현 동아대(정치외교학) 학생
qkrwngus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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