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잉여금 분석해보니…
41조원 쟁여놓은 지자체들
중앙정부는 30조원 나랏빚
재정 효율 위해서 세수추계 잘해야

중앙정부는 매년 거둔 세금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배부한다. 자체 재정수입이 적은 지자체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돈이 모자라서 지원하는 것인 만큼 해당 지자체는 예산을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지자체는 써야 할 예산을 다 쓰지 않고 쟁여놓는다. 중앙정부가 적자재정까지 펼치면서 지원한 세금이 지자체의 ‘금고’에 잠자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실제로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적자재정을 폈지만, 지자체엔 돈이 남아돌았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적자재정을 폈지만, 지자체엔 돈이 남아돌았다.[사진=뉴시스]

“지방자치단체는 그 재정을 수지균형의 원칙에 따라 건전하게 운영해야 한다.” 지방자치법 제137조에 명시된 지자체의 재정운영 기본원칙이다. 수지균형의 원칙이란 지자체가 예산을 세우고 집행할 때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여전히 돈을 쟁여놓고 제대로 쓰지 않는다. 

나라살림연구소가 243개 지자체의 2021년도 결산서를 분석해보니 전국 지자체의 잉여금 총액은 68조5000억원이었다. 2019년엔 66조5000억원, 2020년엔 65조4000억원이었다. 2020년에 잠깐 잉여금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다시 늘어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광역지자체 잉여금은 19조8000억원으로 2019년(15조9000억원)과 2020년(18조7000억원)보다 늘었다. 기초지자체 잉여금은 48조7000억원이었는데, 2019년(50조5000억원)보다는 줄었지만 2020년(46조7000억원)보다는 늘었다.[※참고: 잉여금이란 그해 세입에서 세출을 뺀 돈이다. 다음해로 넘어가는 이월금, 보조금 집행잔액, 초과세입, 불용액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초과세입과 불용액을 따로 빼낸 게 순세계잉여금이다.]

물론 잉여금에는 다음 해로 이월되는 금액과 보조금 집행잔액 등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이월금 등을 빼낸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의 규모에는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순세계잉여금은 사용처가 없어진, 그래서 다음 해에도 사용되지 않는 돈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자체가 향후 예산으로 반영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2021년 전국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 총액은 31조4000억원이었다. 2019년에는 31조7000억원, 2020년에는 32조1000억원이었다. 

3년 연속 30조원이 넘는 잉여금을 남겼다는 건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 돈을 쟁여놓고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얼핏 보면 순세계잉여금이 줄어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자체들은 순세계잉여금의 일부를 ‘재정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 적립하는’ 재정안정화기금에 넣었기 때문이다.

2021년 서울시의 여유재원은 6조2860억원이었다. 그만큼을 쓰지 않고 쟁여놨다는 얘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021년 서울시의 여유재원은 6조2860억원이었다. 그만큼을 쓰지 않고 쟁여놨다는 얘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정안정화기금은 사실상 순세계잉여금의 ‘저금통’ 역할을 한다는 건데, 2021년 전국 지자체의 재정안정화기금 총액은 9조7000억원이었다. 2019년엔 5조5000억원, 2020년엔 7조6000억원이었다. 결국 순세계잉여금과 재정안정화기금을 합하면 진짜 여유재원 규모가 나온다. 이렇게 보면 2021년 전국 지자체의 여유재원 총액은 41조1000억원으로 2019년(37조2000억원)과 2020년(39조7000억원)보다 더 늘었다. 

그럼 지자체들이 여유재원을 쌓아두는 게 왜 문제인 걸까. 먼저 국가 경제 전체로 볼 때 좋은 일이 아니다. 정부의 재정정책은 국가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 지출이 늘면 그만큼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데, 써야 할 예산을 쓰지 않았다는 건 그 액수만큼 경기를 부양하지 못했다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2021년 지자체 총 세출(결산 기준) 433조5000억원의 8.2%에 해당하는 여유재원 41조1000억원은 내수 경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액수다.

행정 효율 따져봐야 할 때

또한 여유재원이 많이 발생했다는 건 행정의 효율성이 그만큼 형편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자체가 사용하지 않은 돈의 액수만큼 주민이 받아야 할 행정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의 여유재원은 일반회계에서 발생한다. 일반회계는 일반행정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처리하는 회계로, 가장 기본적인 살림살이다. 일반회계에서 수지균형의 원칙이 더욱 잘 지켜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막대한 여유재원이 생겼다는 건 지자체들이 기본적인 살림살이조차 못했다는 뜻이다. 

지자체의 여유재원이 늘면 중앙정부의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질 수도 있다. 지방세와 세외수입이 부족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중앙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나 조정교부금을 배부받는다. 이런 지자체들이 잉여금이나 순세계잉여금을 늘리면 중앙정부가 불필요한 재원을 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재정자립도가 10%도 안 되는 지자체들 가운데 여유재원을 과도하게 쌓아놓는 곳은 한두곳이 아니다. 실례를 들어보면, 경북 청도군은 재정자립도가 8.8%에 불과하지만 세출 대비 여유재원을 33.2%나 쌓아두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경북, 경남, 전북, 전남, 충남, 강원 등 여러 지자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자체에 여유재원(41조1000억원)이 넘쳐남에도 2021년 중앙정부가 30조5000억원의 재정적자를 감당하면서까지 지출을 늘리는 비효율이 발생한 건 이런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지자체의 여윳돈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지자체들이 세입예산을 과소 추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21년 지자체가 추계한 세입예산은 365조7000억원, 세입결산은 502조원이다. 무려 136조3000억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오차율은 37.4%에 달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지자체 여유재원 규모 추계다. 과소 추계의 원인은 이월금이 많고, 전년도 순세계잉여금을 본예산에 충실히 반영하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지자체의 여윳돈 쟁여놓기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본예산을 수립할 때 세입 추계를 좀 더 정확하게 하는 거다. 그래야 수지균형의 원칙에 따라 적극적인 지출을 할 수 있다. 세입 추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추계 과정에서의 투명성 확보와 부처간 소통 등이 필수다. 그래야 추계 모형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둘째, 추경을 할 때 지출하지 못할 사업이 있다면 적극적인 감액추경을 해야 한다. 본예산에서 계획된 사업이라 해도 사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면 굳이 재원을 배분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불용액만 늘어날 뿐이다.
 
세입 추계부터 정확해야

셋째, 전년도 순세계잉여금을 다음 해 본예산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그래도 다 반영하지 못하면 최소한 1차 추경까지는 전액을 반영해야 한다. 지자체가 전년도 순세계잉여금의 본예산 반영 액수를 임의로 조절하는 건 이중장부를 작성하는 분식회계나 다름없다. 

넷째, 재정안정화기금의 설치ㆍ운용ㆍ지출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정안정화기금은 순세계잉여금의 ‘저금통’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저금통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적립 한도액도 없이 운용돼선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수지균형은 재정운용의 기본원칙이다. 지자체들이 본예산을 짤 때, 세입과 세출 액수를 똑같이 맞춰 놓는 것도 그래서다. 결산에서 매년 이 수치가 맞지 않고, 오차도 크다면 지자체들이 매년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이 거짓말 때문에 국가 경제가 악영향을 입을 수도 있다. 지자체들이 수지균형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smtax@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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