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허제량 법무법인 윤강 변호사
소규모주택정비법 절차 줄였지만
기존 정비법과 정리 안 된 조항 많아
조합 설립 이후 출구 만들기 쉽지 않아
설립 동의서 서명 전에 꼼꼼히 살펴야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각종 행정절차를 간소화했는데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각종 행정절차를 간소화했는데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니 재건축’으로 불리는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기존 대규모 정비사업과 달리 특례법을 적용받고 있는 탓에 다양한 행정절차가 생략돼 있어서다. 속도감 있는 사업 진행이 강점이지만, 지나치게 빨라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정비사업 갈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허제량 변호사(법무법인 윤강)에게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문제점과 해법을 물었다.

✚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을 둘러싼 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문제가 사건으로 접수되나요.
“규모가 작더라도 주택을 정비하는 사업이잖아요.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분쟁이 불가피합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돈 문제와 얽힌 시공사 공사도급계약 해지나 손해배상청구 사건이 많습니다. 조합 내부다툼 때문에 벌어지는 임원 해임 총회나 총회 효력정지 가처분, 결의무효 확인소송도 적지 않고요.”

✚ 사업 규모가 크지 않고 조합원의 숫자가 많지 않은데도 갈등이 벌어지는군요.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한 갈래인 가로주택 정비사업의 경우, 3~4년이면 완료됩니다. 조합원 개개인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하는 게 쉽진 않을 겁니다.”

✚ 조합 설립 단계에서부터 갈등을 빚는 구역도 많습니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엔 사업구역 지정 절차가 생략돼 있습니다. 관할관청에서 승인을 받지 않아도 조합 설립 추진위를 만들 수 있고요. 토지소유자 80%의 동의를 받아 조합을 만들고, 총회를 열어 설립 인가를 받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의견을 모으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많지 않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나 설명회를 열어야 하진 않나요.
“기존 대규모 정비사업의 근거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과 달리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은 주민 설명회나 공청회를 여는 걸 강제하지 않습니다.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법이니까요.”

✚ 이 때문인지 자세한 사업 설명을 생략한 채 조합 설립 동의서를 받는 현장도 있다고 합니다. 
“동의서를 얻을 때 기망이나 착오를 일으킬 만한 방법을 사용한 경우, 법적으로는 무효입니다. 이 문제로 동의율 부족을 주장해 조합설립 인가를 취소한 현장이 있긴 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기망ㆍ착오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동의서를 요청하는 현장을 일일이 증거로 남겨놓진 않을 테니까요.”

✚ 정비사업의 위험성을 뒤늦게 알아차린 주민이 동의서를 회수할 순 없나요.
“있습니다. 단, 제출하고 30일이 지난 경우라면 동의서 철회가 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조합이 설립 총회를 마무리 짓고 이미 설립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합니다(소규모정비법 시행령 23조,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33조). ”

✚ 동의서 철회기간이 지난 상황에서 사업을 되돌릴 방법은요.
“조합원 과반수 동의로 조합 해산을 요청하면 관할청은 조합설립 인가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 정비 구역에 건물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애먼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은 사업에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건물이 구역에 포함되면 조합원이 되는 ‘강제가입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조합 측에 자신의 건물을 정비구역에서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순 있습니다. 다만, 건물이 빠졌을 때 사업성이 악화한다면 조합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이럴 땐 현금청산을 통해 건물을 팔고 조합원 지위를 내려놓는 방법 외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 조합 설립 동의서부터 꼼꼼하게 따져봐야겠군요.
“정비사업은 어느 정도 공공성을 띱니다. 그럼에도 본질적으론 투자 행위죠. 재산(부동산)을 걸고 정비사업에 투자하는 겁니다. 사법부는 토지 소유주의 의사결정 권한 행사 여부를 판단할 때, 동의서를 중요한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명하기 전에 꼭 제대로 확인해야 합니다.”

✚ 규모가 크지 않은 정비사업인데도 문제가 적지 않군요.
“사실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갈등의 본질적인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투입한 노력에 비해 수익이 적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체나 설계사, 시공사, 법률 전문가 등 기존에 정비사업 시행을 위해 꼭 필요한 플레이어들이 발을 들여놓길 꺼립니다. 사업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치밀한 전개가 어렵게 되면서 갈등과 분쟁으로 이어지는 거죠.”

✚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한 상황입니다.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미래 사업성을 우려해 주민 간 갈등이 더 커질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필요한 일입니다. 투기가 아닌 주거 목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일부 개발세력에만 폭리를 안겨주는 대규모 재건축ㆍ재개발보단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어찌 됐든 사업의 취지가 낡은 골목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이니까요. 단순히 수익률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닙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사업성을 끌어올릴 만한 다양한 유인책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겁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을 근거로 진행된다.[사진=뉴시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을 근거로 진행된다.[사진=뉴시스]

✚ 그래도 지금처럼 사업의 신속성만 강조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특례법이 현장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은 토지주를 조합원으로 강제 가입시키는 조항이 특히 그렇죠. 도시정비법을 모법으로 두고 있다 보니 법체계가 완전하게 정리되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점은 앞으로 개선이 필요합니다.” 

✚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 주민들이 유념해야 할 건 뭐가 있을까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과연 정비사업을 진행해도 괜찮은 것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은 정비사업이 강행되는 구조입니다. 법률에서 정해놓은 토지 소유자의 동의 의사만 확인되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공청회나 설명회 같은 원주민에게 친절한 절차가 없으니, 꼭 주체적으로 사업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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