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➌ 미아3구역 가보니…
가로주택정비사업 속 갈등
조합 인가 후 반대하는 주민 부른 구청
사업 성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조합
법적 소송까지 결심한 반대 주민들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큰마을’에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큰마을’에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진행하면 3~4년 만에 재건축이 가능하다. 사업 설명회 등의 절차를 대폭 생략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합설립 인가만 떨어지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적지 않다. 이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현장이 강북 미아3구역이다. 더스쿠프가 그곳에서 새어나오는 잡음을 들어봤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미아리 고개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미아동에도 널찍한 평지가 있다. 지하철 4호선 미아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가면 그 평지가 보인다. 500m가량의 편도 1차로 도로를 쭉 따라 걷다 보면 휘어져 들어가는 골목길에 닿는다.

차 한 대가 천천히 다닐 만한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2층, 3층짜리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좁은 도로는 오토바이만 다닐 수 있는 더 좁은 골목으로 가지 뻗듯 나간다. 지도에도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만들어진 2층짜리 다가구주택과 단독주택이 골목에 가득했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1970년에 만들어져 이제 반백년을 넘긴 단독주택도 흔했다.

그러다 길의 끝에 다다랐다. ‘큰마을’이라는 걸 알려주는 비석이 넓은 공원 앞에 서 있었다. 예전 이름은 ‘큰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이름하여, ‘미아3구역 가로街路주택정비사업구역’이다. 그런데 이곳에선 최근 크고 작은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가로주택정비, 바로 그 사업 때문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말 그대로 도로를 그대로 살리며 재건축하도록 만드는 사업이다. 일반적인 재개발ㆍ재건축 사업보다는 규모가 작고, 과정도 짧다. 가령, 1만㎡(약 3025평) 이하인 데다 전체 주택의 3분의 2 이상이 30년이 넘은 노후 주택이라면 그게 어디에 있든 가로주택정비사업 후보지가 될 수 있다.

‘큰마을’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큰마을’에선 왜 잡음이 새어나오는 걸까. ‘큰마을’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은 과거의 일부터 소환했다. 2021년 5월, 골목길에는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을 만들기 위해 동의서를 모으는 일을 대신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주민들은 용역직원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동의서를 받았어요. 휴지를 사들고 들어와서는 ‘어르신들이 한채 주시면 두채를 가져갈 수 있다’는 사탕발림을 늘어놨죠.”

용역업체의 전략은 통했다. 어르신들은 그들의 그럴듯한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동의서가 모였고, 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기준인 ‘토지 면적의 3분의 2’와 ‘소유주의 80%’를 넘겼다. 조합 설립의 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사진 | 더스쿠프 포토]
[사진 | 더스쿠프 포토]

하지만 2022년 8월을 기점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했다. 사업을 믿지 않았던 주민에 부동산 가격 하락에 부담을 느낀 주민이 합쳐졌고, ‘가로주택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 주민의 말을 들어보자.

“가로주택사업과 같은 소규모주택사업에선 ‘조합설립’만 하면 인가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합 설립을 막자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주민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가 전체 사업 면적의 3분의 1을 넘는다고 말했다. 몇몇 주민은 강북구청 측에 ‘조합설립’을 반대하는 민원도 제기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2022년 9월 28일 강북구청이 주민들을 모았다. 주민들은 ‘이견을 조율하고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이날 “이틀 전에 이미 조합 설립 인가가 통과됐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주민들은 분노를 표출했지만, 현재로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몇몇 주민은 ‘사업 설명을 제대로 들은 적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이것만으로 조합설립 인가를 되돌릴 순 없다. 현행법상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시작할 땐 사업 설명회 등을 필수적으로 열 필요가 없어서다. 정비면허가 없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동의서를 대신해서 받아온 것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업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조합을 해산시키거나 강북구청이 인가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다. 시간도 들고 돈도 드는 일이다. 주민들은 이미 강북구청을 상대로 서울 행정법원에 (조합)인가설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언젠가는 재개발이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면서 “조합 총회에서 나온 사업성 계산 방식을 서울주택공사(SH)에 다시 문의하니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꼬집었다. 전재산을 어떻게 걸겠냐는 거다. 

정부가 가로주택정비사업 같은 소규모 재건축 사업의 규제를 완화한 건 주택 공급에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여전히 100%가 아닌 시점에서도 서울 아파트값은 떨어지고 있다. 공급이 모든 걸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란 얘기다.

미아3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 구역의 경계를 따라 걸으면 500m도 채 되지 않는다. 걸어서 6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500m를 훌쩍 넘는 듯했다. ‘큰마을’ 혹은 미아3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 속 주민들은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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