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➊ 미아동 정비사업 민낯
민민 갈등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특례법 적용해 절차 간소화 꾀했지만
추진 과정서 주민 의견 모으기 어려워
설립 인가 후 사업 되돌리기기도 난항
신속함에 눈 멀어 도시 난개발 부채질

도시를 부수고 다시 짓는 재개발ㆍ재건축 현장에선 원주민과 개발세력 간 분쟁이 다반사였다. 의지와 무관하게 이주와 철거를 당하는 이들이 있었고, 개발이익 혜택을 어떻게 나누느냐로 다투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엔 ‘미니 재건축’이라 불리는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잡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대규모 정비사업의 고질병을 없애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한 이 사업에선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걸까.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지난해 9월 28일 오후, 강북구청에선 큰 소란이 벌어졌다. 고성이 오갔고 경찰이 출동했다. 현장에선 미아동 767-51번지 일대 주민 20여명과 강북구청 주택과 공무원이 갈등을 빚고 있었다. 사실 다툼을 벌일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강북구청이 주민을 불러 모아 만든 ‘일종의 간담회’였기 때문이다. 그럼 소동이 일어난 이유는 뭘까. 

관점을 당시 현장으로 돌려보자. 그 무렵, 미아동 767-51번지 일대에선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인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일부 주민이 이 사업에 불만을 표시했다. 사업 주체가 정비조합 구성원이 납부해야 할 분담금의 근거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은 조합설립 인가 처분을 보류해 달라는 취지의 민원을 수차례 제기했다. 민원이 쏟아지자 강북구청 측이 민원 주민을 대상으로 약식으로 설명회를 열었는데, 이때가 바로 소란이 벌어진 날이었다. 

주민들은 강북구청의 자세한 계획을 듣고 싶어 한자리에 모였지만,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다. 강북구청 관계자가 “이미 이틀 전에 조합 설립 인가를 냈고,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대규모 정비사업과 달리 소규모주택 정비는 ‘조합설립 인가’만 떨어지면, 여러 행정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르면 3년 내로 사업을 끝마치는 게 가능하다. 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강북구청을 상대로 ‘조합설립 인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2022년 10월).

동네 한쪽에선 조합설립 인가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다른 쪽에선 사업을 반대하는 현수막으로 맞불을 놨다. 9489㎡(약 2870평)의 작은 골목이 주민 간 싸움판으로 돌변한 셈이었다. 


먼저 소규모주택 정비사업부터 풀어보자. ‘소규모’란 타이틀에서 보듯,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취지는 도심 내 노후한 주택의 주거환경을 개선해 주거생활의 질을 끌어올리는 거다. 이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함’이다. 10년을 훌쩍 넘기는 재건축ㆍ재개발 정비사업과 달리, 3~4년이면 입주 절차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 사업 추진 절차가 기존 정비사업보다 간단하고, 의견을 모을 주민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사진=뉴시스]

이런 이유로 전국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인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대규모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으로 1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고, 당선 뒤엔 ‘8ㆍ16 공급대책’을 통해 “금융지원과 절차 간소화를 통해 사업기간을 단축하고, 사업성을 높여 활성화를 더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한 갈래인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서울에서만 165개 지역(2022년 11월 기준)에서 추진되고 있다. [※참고 :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가로街路구역(폭 6m도로로 둘러싸인 구역) 내 노후ㆍ저층 주거지를 소규모로 정비하는 사업을 뜻한다.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여러 종류 중 하나다.]

문제는 그중 일부가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인은 다양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장점인 ‘신속함’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적지 않다. 

먼저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부터 따져보자. 이 사업의 법적 근거는 2017년 제정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이다.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을 적용받는 일반 재개발ㆍ재건축 사업과 절차가 조금 다르다.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을 따르는 사업의 종류는 여러 개다. ‘가로주택정비사업’ ‘자율주택정비사업’ ‘소규모재건축사업’ ‘소규모재개발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초 발표한 ‘모아타운ㆍ모아주택’ 사업 역시 이 특례법의 적용을 받는다. 정비 대상과 내용,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큰 골자는 같다. 작은 골목에 있는 기존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겠다는 거다.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을 재건축ㆍ재개발 사업과 견줘보면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지가 쉽게 드러난다.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은 준비 단계부터 촘촘하다. 정비기본계획 수립, 안전진단, 정비구역 지정 등 행정적 절차를 밟은 뒤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설립해야 사업이 사실상 ‘출발선’에 선다. 그 뒤에 추진위가 조합설립 인가를 득해야만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다. 업계에선 이때까지 길게는 2년 안팎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특례법에 따라 복잡한 과정이 생략된다. 대표적으론 정비구역 지정이나 추진위원회 설립 절차가 없다. 주민이나 토지주의 동의를 일정 비율로 얻으면 지자체로부터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다. 

후속 절차도 간단하다. 건축심의를 통해 사업시행 인가와 관리처분 인가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조합원 수가 적어 이견이 나올 가능성도 낮다. 가령,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경우 면적이 1만㎡ 미만으로 단독주택은 10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20세대 이상이 모이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이 쉽지 않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인지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이 주목받고 있다”며 “특히 일반 재건축으로는 사업성이 안 나오는 작은 단지는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으로 재빠르게 선회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사업에 따라 조경기준, 건폐율, 건축물 높이제한, 주차장 설치기준 등의 규제 완화 혜택도 볼 수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부담금의 부담도 없다. 사업의 ‘첫 단추’만 잘 끼우면 순조롭게 골목을 정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속도전 속 허점들 = 문제는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여러 현장에서 잡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개발과 반대, 양측으로 갈려 반목하고 있는 현장이 적지 않다.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전문가인 민경호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주임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규모가 작다 보니 문제점이 공론화하는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사업이 지연되는 구역은 숱하다. 소규모 건설업자가 주민들을 현혹해 조합설립 인가를 받는 현장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실한 사업계획서를 들고 용역을 동원해 조합설립 동의를 얻으러 다니는 식이다. 새 아파트를 지어 준다고 하니 상황을 잘 모르는 주민들은 사업의 위험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조합설립에 동의하고 만다.”

그럼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주변에서 잡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공교롭게도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가장 큰 장점인 ‘속도’가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관할청으로부터 ‘조합 설립’ 인가만 받으면 이후론 일사천리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사진 | 뉴시스. 자료 | 국토교통부,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자료 | 국토교통부, 더스쿠프]

■ 간소화에 숨은 덫 = 조합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조합 설립 동의서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의 경우, 정비 구역 토지 소유자의 80%(면적 3분의 2 이상의 토지소유자)로부터 동의서를 받으면 조합 설립 총회를 열 수 있고, 조합을 만들면 관할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설립 동의를 얻는 과정이 너무 쉽다는 점이다. 정비 구역이 넓지 않다 보니 동의서를 받아야 할 토지소유자의 숫자가 많지 않다. 전국 가로주택 정비사업 조합의 평균 조합원 수는 81명(2021년 기준)이었다. 수백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재건축 사업과 비교하면 발품을 덜 팔아도 된다.

정비 사업의 방향을 두고 치열한 논의나 논쟁이 벌어져야 할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대규모 재건축ㆍ재개발 사업과 달리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은 주민설명회나 공청회를 강제하지 않고 있다. 허황된 미래 시나리오로 주민으로부터 조합 설립 동의서를 얻어내는 상황도 일어날 만한 개연성이 충분한 셈이다. 

그렇다고 인가가 떨어진 뒤에 사업을 쉽게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합원 과반수 동의로 조합 해산을 요청해야 조합 설립 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 사업의 반대 의견이 절반에 못 미치면 정비 사업을 멈추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문제로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전개 중인 미아동 일대가 큰 혼란에 빠져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미니 재건축의 비명’ 두번째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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