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늘어난 DC형 가입자 
증시 침체기 DC형 전환 괜찮을까
마이너스로 돌아선 퇴직연금 수익률 
DC형 퇴직연금 늘어나는 진짜 이유

코로나19 영향으로 폭락했던 증시가 살아났던 2020년 이후, 퇴직연금을 확정급여(DB)형에서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한 노동자가 부쩍 늘어났다. DB는 퇴직금이 정해져 있고,  DC는 투자 수익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문제는 고금리 기조와 경기침체 우려로 지난해부터 증시가 급격하게 하락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 DC형으로 전환한 노동자는 손실을 봤을 게 분명하다. 더스쿠프가 DC형 퇴직연금에 숨은 문제점을 짚어봤다. 

​DB형 퇴직연금을 DC형으로 전환하는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사진=뉴시스]
​DB형 퇴직연금을 DC형으로 전환하는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사진=뉴시스]

직장인에게 퇴직연금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 퇴직 이후의 삶을 책임질 핵심 노후대책 중 하나여서다. 머지않아 국민연금의 재정이 고갈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유일한 노후준비 수단일 수도 있다. 

퇴직연금의 운용방식은 ‘확정급여형(DBㆍ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ㆍDefi ned Contribution)’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참고: 개인퇴직연금(IRPㆍ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제도도 있지만 이는 노동자가 금액을 전부 부담하는 제도라 제외했다.] 

DB형은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근속연수’라는 정해진 법정퇴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회사가 부담한다. 회사명으로 노동자의 퇴직금을 운용해 수익이 발생하면 회사가 갖고, 노동자에겐 정해진 퇴직금만 지급하면 된다. 받아야 할 퇴직금이 정해져 있어 안정적이다. 

DC형은 회사가 매년 임금의 12분의 1 이상을 노동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이체해주면 끝이다. 퇴직연금의 운용 방식은 노동자가 직접 관리한다.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퇴직급여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투자를 잘하면 퇴직금이 늘지만 그렇지 않으면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대부분의 퇴직연금 적립금액은 DB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295조원의 퇴직연금 적립금액 중 57.9%에 달하는 171조원이 DB형으로 운용되고 있다. 25.4%(75조원)는 DC형이었고, 나머지 16.7%는 IRP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구조에 최근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DB형 가입자는 305만3230명으로 DC형 가입자 286만6991명보다 18만6239명 많았다. 하지만 2019년 DC형 가입자(311만6730명)가 DB형(307만6076명) 가입자를 따라잡았다. 2021년엔 DC형 가입자가 352만8934명으로 DB형(312만7550명)보다 40만1384명 많아졌다.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는 또 있다.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DB형 퇴직연금을 DC형으로 전환한 건수는 2019년 5만197건에서 2020년 13만7248건으로 급증했다.

2021년엔 11만9636건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9월 기준 8만2697건이 DB형에서 DC형 퇴직연금으로 갈아탔다. 안정적인 DB형에서 DC형으로 변경하는 가입자가 적지 않다는 거다. 그 결과,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하는 DC형 퇴직연금 적립액은 2018년 7조8160억원에서 2021년 15조7083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조경만 엉클조 아카데미 대표는 DC형 전환율이 높아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퇴직연금 대부분이 원금보장형 상품에 방치돼 있다. 소득과 임금 상승률이 낮고, 이직이 잦은 노동자는 DB형으로는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노후를 위해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하다면 DC형이 유리한 방식이다.”

관건은 전환 시점이다.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영향으로 폭락했던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세를 타던 시기다. 이 시기에 DC형으로 전환한 가입자는 그나마 다행이다. 2020년 3월 19일 1457.64포인트로 떨어졌던 코스피지수가 연말 2873.47포인트로 상승했으니 수익을 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21년과 지난해 DC형으로 전환한 가입자는 사정이 다를 수 있다. 2021년 6월 25일 3302.84포인트를 기록했던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말 2236.40포인트로 32.2 %나 하락했기 때문이다. 주가 부진의 영향으로 DC형 가입자의 수익률도 큰 타격을 입었을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2023년이다. 세계은행(WB)은 올해 전세계 경제성장률을 기존 3.0%에서 1.7%로 대폭 하향했다. 경기침체를 기정사실화했다는 거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1.6%로 제시할 만큼 침체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경기와 기업의 실적에 영향을 받는 증시와 펀드의 투자 실적도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려는 벌써 현실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2.58%, 2021년 2.00%를 기록했던 퇴직연금 수익률은 지난해 상반기 -0.3%로 돌아섰다. 2021년과 지난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각각 2.5%, 5.1%였다는 걸 감안하면 2020년을 빼곤 사실상 손실을 봤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DC형 전환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DC형으로 운영하는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은 매우 낮다. 지난해 1분기 DC형 퇴직연금 상품(원리금 비보장)을 운용하는 40개 국내 금융회사(증권사ㆍ은행ㆍ생명보험ㆍ손해보험) 중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4곳에 불과했다. 

서혁노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퇴직연금은 가장 중요한 노후수단”이라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DC형 전환율이 상승한 걸 마냥 반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DC형 퇴직연금은 개인이 운용의 책임을 모두 져야 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다”며 “개인의 소득과 근속연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전성 측면에서는 DB형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DC형 전환이 노동자의 뜻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은 “DC형은 노동자보다는 회사가 선호하는 퇴직연금 제도”라며 말을 이었다. “DB형은 회사에 운용 책임이 있고, 노동자가 퇴직할 때 큰 비용이 발생한다. 운용 수익이 마이너스라도 노동자에겐 정해진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DC형은 그렇지 않다. 매년 한달치 월급만 노동자에게 이체하면 끝이다. 운용 결과를 신경 쓸 일도 없다. DC형 가입자가 증가하는 것이 기업이 DC형을 선호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듯 DC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2018년 22만2851개였던 DC형 도입 기업은 2021년 27만7088개로 5만4237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은 37만8430개에서 42만4950개로 4만6520개 늘어났고, DB형을 도입한 기업은 10만2985개에서 9만2327개로 감소했다. DC형을 선호하는 기업이 크게 늘어났다는 거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더스쿠프]

이처럼 퇴직연금 체계는 복잡하다. DB형이냐 DC형이냐에 따라 노동자가 받는 퇴직금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DC형은 더 심하다. 어떤 상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노동자의 노후가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는 거다. 퇴직연금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대표는 “다층적 노후보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의 안정성과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며 “퇴직연금 상품을 운용하는 금융사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퇴직연금이 사적 영역이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인 만큼 공적연금에 준準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퇴직연금 운용기관에 국민연금공단을 포함하는 퍼블릭 옵션을 도입하거나 더 나가 퇴직연금 공단을 세우는 게 퇴직연금의 위상과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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