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에 CBAM까지 무역 장벽
美, 전기차 보조금 요건 강화
탄소국경세 부과한다는 EU
중고차 시장엔 대기업 진출
2023년 키워드 ‘위기 통제’

2023년이 밝았다. 코로나 3년차가 끝나는 시기인 만큼, 그동안의 답답하고 암울했던 시기를 딛고 활기찬 글로벌 시대가 다시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시장의 변화도 눈에 띄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달라지는 시장환경에 우리는 잘 대처하고 있는 걸까. 아울러 예견된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2023년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2023년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지난 1월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열렸다. 이번 CES에서 자동차 업계의 화두는 단연 SDV(Soft ware-Defined Vehicle)였다. 

SDV란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관리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어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설치하느냐에 따라 자동차의 주행ㆍ안전ㆍ편의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성능과 정체성을 결정짓는 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순수전기차(BEVㆍBattery Electric Vehicle)가 CES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시장의 변화가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변화가 혁신과 함께 때론 위기를 불러오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은 생존을 위협받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은 시장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지금 완수해야 하는 과업을 설정해 철저히 이행해 나가야 한다. 필자가 2023년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진단하고 향후 필요한 처방을 내려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 변화➊ 전기차와 IRA = 2022년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전기차 시장의 기세는 2023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주행거리, 충전인프라 등이 개선되면서 글로벌 판매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서다. 

실제 국내 통계를 살펴봐도 전기차 성능이 좋아지고 충전인프라가 늘어날수록 전기차 판매량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히 따져보자. 2017년 300~400㎞에 머물렀던 전기차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2022년 평균 400~500㎞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2017년 1만3676대에 불과했던 전국의 전기차 충전기 대수는 2022년 10월 기준 14만대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만3303대(2017년)에서 10만7783대(2022년 10월)로 5년 새 452.8% 급증했다.   

무역 장벽 어떻게 넘어설까

그렇다고 전기차 시장에 꽃길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다.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 가능성 등 업황을 위협하는 변수도 숱하다. 무엇보다 전기차 시장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이란 커다란 장벽이 세워진 상태다.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정식 발효한 이 법안에는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의 전기차 보조금 수급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핵심 광물이 북미산이어야 하고, 부품 제조부터 최종 완성차 조립까지 모두 북미에서 이뤄져야 해서 다수의 완성차기업이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즉시 빠졌다. 

우리나라 현대차ㆍ기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정부와 기업의 공식적ㆍ비공식적 협상으로 렌트나 리스, 승차공유 등 상업적 목적의 전기차를 판매할 땐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근본 문제는 남아있다. 

현대차ㆍ기아의 미국 시장 판매량에서 상업용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 남짓에 불과하다. 두 회사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나머지 95%에 해당하는 전기승용차 부문의 규제 완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사진 | IAA 제공,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IAA 제공, 자료 | 더스쿠프]

미국 정부는 올 3월까지 각국 정부의 의견을 수렴해 IRA의 세부규정(가이던스)을 확정할 계획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은 IRA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법 개정 혹은 적용 유예안을 밀어붙이고, 기업은 미국 현지 공장 건립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2개월간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중국ㆍ유럽 등에서도 ‘자국 우선주의’를 명분으로 또다른 장벽을 세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변화➋ 친환경 시대와 탄소세 = 유럽은 이미 IRA에 대응한 ‘맞불 전략’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ㆍCarbon Border Adjust ment Mechanism)를 추진하고 있다. EU 역외국가에서 만든 제품이 역내로 수입될 경우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따라 추가관세(일명 탄소국경세ㆍ이하 탄소세)를 부과한다는 것이 CBAM의 골자다.    

당초 지지부진했던 CBAM 논의는 미국의 IRA 발효 이후 급물살을 탔고, 지난해 12월 본격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EU는 CBAM의 적용 대상으로 6개 품목(철강ㆍ시멘트ㆍ비료ㆍ알루미늄ㆍ전력ㆍ수소)을 정하고 오는 10월부터 제도를 시범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26년부터 CBAM을 정식으로 시행하기 시작해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탄소세 부과 기준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철강ㆍ알루미늄ㆍ전력 등을 활용하는 전기차 업계 역시 CBAM의 칼날을 피해갈 순 없다. 각국 정부와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은 CBAM의 시범 운영을 시작하는 10월 전까지 9개월간 EU의 탄소배출량 산정 방식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도록 전략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IRA에 이어 CBA M이란 또다른 숙제가 주어진 셈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IRA를 경험하면서 글로벌 규제에 맞서는 우리 정부의 대응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이다. 

EU가 CBAM의 도입을 밀어붙이자 국내에선 유관 부처(▲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 등)가 모여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통상교섭본부를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아웃리치(고위급 실무자의 현장 방문 및 교섭 활동)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정부는 부처별 CBAM 대응현황을 점검하면서 EU 측과 지속적인 협의를 해나가고 있다. 한국의 전기차 수출량이 세계 4위 수준(2021년 기준ㆍ한국무역협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 한해 정부와 기업은 IRA와 CBAM란 이중고에서 ‘빈틈’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덮쳐오는 ‘자국 우선주의’란 회오리에서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자동차 시장에 IRA와 CBAM 등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반영한 무역 장벽이 생겨나고 있다. 사진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자동차 시장에 IRA와 CBAM 등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반영한 무역 장벽이 생겨나고 있다. 사진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변화➌ 국내 시장의 과제 = 이렇듯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곳곳엔 험난한 난관들이 놓여있다. 그렇다고 정부든 기업이든 국내 시장을 방치한 채 해외 시장에만 목을 맬 순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에는 대기업(현대차ㆍ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란 커다란 변화가 예고돼 있다.

시장의 변화는 경제주체들의 혼란을 야기하게 마련이다. 중고차 시장의 경우 대기업이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지난해 완성차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하면서 시장점유율을 제한(현대차 2.9%ㆍ기아 2.1%)하고, 차량 매입 한도에도 일정한 조건(5년ㆍ10만㎞ 미만을 충족하는 자사 차량)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당시 업계 이해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이하 자동차매매조합)는 “대기업의 시장 진출 자체가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어쨌거나 중기부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황에선 기존 중고차 업계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경쟁력을 높이는 대응책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자동차매매조합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은 중고차의 매입부터 진단ㆍ판매ㆍ보증ㆍ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동차매매공제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에는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다. 자동차매매조합에서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새로운 논쟁의 도화선으로 떠올랐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는 ▲부당한 표시ㆍ광고 유형 구체화 ▲중고차 인터넷 표시ㆍ광고 모니터링 제도의 도입 ▲자동차 안전ㆍ하자 심의위원회 휘하 분과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중고차 시장의 서비스 품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선 ‘갈등’의 소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자동차관리법이란 큰 틀이 있다 해도 ▲부당한 광고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 ▲대기업의 광고에 일정한 제재를 가해야 할지 ▲안전ㆍ하자 심의위원회 분과위원회를 구성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가 충분해서다.

논란이 발생하면 대기업이든 기존 중고차 사업자든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 내려 할 것이다. 당연히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관건은 ‘예견된 다툼’ 속에서 어떻게 합의점을 이끌어내고, 추후 분쟁의 씨앗을 남기지 않느냐는 거다. 

이를 위해선 시장의 관리자이자 중재자인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자동차관리법 전반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는 시행령 등의 하위 규정을 통해 불합리한 기존의 룰을 개선ㆍ보완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쟁을 조정하는 중기부는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시장의 질서를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기업의 진출을 근간으로 한 중고차 시장의 질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자동차 시장의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난제가 자동차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야기한 글로벌 복합위기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는 어떤 분야에서든 눈앞에 닥쳐오는 각종 위기를 제대로 헤쳐 나가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정부는 과연 ‘조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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