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윤호 변호사의 記錄
더 글로리 흥행 속 씁쓸한 현실
제2,제3의 문동은 없으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방어자 돼 줘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고등학생 시절 학교폭력을 당했던 주인공이 펼치는 복수극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관객들도 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태국에선 ‘더 글로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SNS상에 학교폭력을 고발하는 ‘타이 더 글로리(Thai The Gloly)’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방증이다. 드라마 속 학교폭력, 거기서 우린 뭘 깨달아야 할까.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20여년 전 학교폭력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이와 다르지 않다.[사진=뉴시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20여년 전 학교폭력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이와 다르지 않다.[사진=뉴시스]

‘학교폭력(이하 학폭)’을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인기가 뜨겁다. ‘더 글로리’는 고등학생 시절 학폭을 당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20여년간 준비 끝에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드라마든 영화든 복수극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더 글로리’가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학폭이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학폭 제도는 전무했다. 학폭이라는 단어조차 흔치 않았다. 학폭을 예방하고 피해학생을 보호할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도 2004년에야 실효성을 가졌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학폭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릴적 당했던 혹은 목격했던 사건이 학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성인이 된 후에야 자신이 당한 것이 학폭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사례도 늘었다. 문제는 학폭의 피해자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더라도, ‘응당한 조치’를 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폭의 공소시효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형법상 폭행죄(5년)나 상해죄(7년), 강제추행(10년)의 공소시효를 준용한다.

최근 연예인들의 과거 학폭 가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me too)’가 쏟아져 나온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사회적 책임이라도 묻겠다는 피해자들이 줄을 이은 셈이다. 이처럼 가해자가 연예인이라면 미투를 통해서라도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해자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사람들이 ‘더 글로리’란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듯하다. 과거 학폭 가해자에게 법적·사회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피해자의 시선이 돼, 주인공의 ‘사적 복수’에 쾌감을 느낀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더 글로리’는 학폭, 나아가 모든 폭력의 가해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장과도 같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언젠가 그에 따른 책임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실제로 드라마 속 가해자 ‘박연진(임지연)’은 두려움에 떨며 이렇게 말한다. “…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결국 예솔이(자신의 어린 딸)도,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 예솔이가 커서 다 알게 되면… 그게 너무 무서워….”

그는 감추고 싶은 과거를 딸이 알아챌까봐 전전긍긍해 한다. 자신이 근무하는 방송국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학폭 고발글이 올라오지는 않는지 검색하며 불안해한다. 피해자 문동은에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딸과 대중에겐 들키고 싶지 않다. 자신이 저지른 학폭이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안다는 얘기다. 

 

문득 학폭 가해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죄책감을 갖거나 피해자에게 미안함을 느끼긴 할까. 아마도 “난 (드라마만큼) 저 정도로 괴롭히진 않았으니까”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이들도 많을 게다. 현실과 맞물려 돌아가는 드라마 속 가해자들도 마찬가지다. 문동은을 괴롭힌 이들은 “우리가 동은이에게 뭘 했지? 심했나? 기억이 안 나네”라며 뻔뻔한 모습을 모인다. 

하지만 사소한 장난이라도 피해자가 ‘폭력’이라고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가해자가 폭력의 경중을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거다. 피해자가 상처를 입었다면 가해자는 기꺼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 드라마가 현실과 판박이인 이유는 또 있다. 드라마에선 학폭이 벌어지는 동안 주변 학생 중 누구도 나서서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는다. 이는 지금 학폭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은 가해자나 피해자보단 ‘목격자’다. 많은 학생이 학폭을 눈앞에서 목격하지만 본체만체한다. ‘나만 아니면 돼’ ‘나랑 상관없으니까’ ‘괜히 나섰다가 연루되면 어떡하지’ 등 이유는 여러가지다. 더욱 안타까운 건 학부모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필자는 교내에 학폭 사건이 발생하면 목격 학생들의 진술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목격 학생들의 학부모가 반발하곤 한다. “왜 부모 동의 없이 아이를 불러다가 진술서를 쓰게 하냐”며 학교에 항의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에게 “공부에 방해되는데 왜 남 일에 참견하냐”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마라” “불똥 튈지 모른다”면서 증언을 만류하기도 한다. 

필자는 묻고 싶다. 현재진행형인 학폭이 나와 내 자녀에게 무관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주인공 문동은은 이렇게 독백한다. “소희(드라마 속 또다른 학폭 피해자)가 당할 때 전 방관자였어요. 그러다 제가 피해자가 됐고, 이제 저는 가해자가 되려고 합니다. 늦었지만 방관하지 않으려고요.” 자신에 앞서 가해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윤소희(이소이)’를 외면했음을 고백하는 거다. 

[자료|교육부,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교육부,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폭력이 만연한 교실에선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나도, 내 자녀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가해자들은 학폭을 묵인하고 방관하는 주변 친구들의 모습에서 되레 힘을 얻는다. 더 과감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반대로 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관자가 아닌 ‘방어자’가 돼주는 것이다. 서로 목격자가 돼주고, 증언자가 돼주는 것이다. 또 가해자에게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고 지적하고, 그가 민망해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몇가지 방법만 실천해도 학폭을 예방할 수 있다. 당연히 어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방관자가 아닌 목격자가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방어자’가 돼줘야 한다. 제2, 제3의 문동은, 박연진이 생겨나지 않도록 말이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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