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복지 예산 살펴보니…
취약층 늘었는데 예산은 감소
에너지바우처 사업의 한계
기후위기 대응에도 역행
근본적인 개선 방안 내놔야

봄바람이 곳곳에서 일렁이지만, 저소득층 가구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난방비까지 치솟아 마지막 추위를 걱정하는 에너지 빈곤층이 적지 않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취약계층을 돕겠다면서 에너지바우처 지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지원 사업이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덴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스쿠프가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연탄’을 빗대 에너지복지 예산의 허점을 짚어봤다. 

정부가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해 에너지바우처 지원을 늘렸지만 근본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해 에너지바우처 지원을 늘렸지만 근본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422명. 2022년 12월 1일부터 올해 2월 14일까지 발생한 한랭질환(저체온증ㆍ동상ㆍ동창 등)을 앓은 사람 수다. 지난해 같은 기간(267명)보다 58.1%나 늘었다. 한랭질환으로 사망한 사람도 9명에서 12명으로 33.3% 증가했다.

지난번 겨울보다 이번 겨울 추위로 고생한 국민이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겨울철 평균 기온이 좀 더 낮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치솟은 요금 탓에 제대로 난방을 하지 못했던 탓도 있는 듯하다. 

서민들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시의성 논란은 있었지만, 정부는 에너지 취약계층(이하 취약계층)을 위해 난방비 지원금이나 난방요금 할인액을 대폭 늘리는 대책을 내놨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추가 지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중요한 건 정부 정책이 취약계층의 ‘에너지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기보단 단기적 미봉책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심지어 지구를 보호하는 데 맞춰진 국가 에너지 정책의 장기적인 방향성과도 부합하지 않았다. 윤 정부의 이른바 ‘에너지복지 예산’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 문제➊ 예산 = 우선 예산 책정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다. 공교롭게도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복지 예산이 줄었다. 올해 정부의 에너지 관련 예산은 총 4조9000억원이다. 지난해 추경 기준 예산(5조1000억원)보다 1500억원(2.9%) 감소했다.

이 가운데 에너지복지 관련 사업에 편성된 예산은 본예산 기준으로 3165억원인데, 이 역시 지난해 추경 기준(3499억원)보다 334억원(9.5%) 줄었다. 취약계층의 범주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산이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지난 5년(2018~2022년)간 165만명에서 236만명으로 43.0%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복지 관련 예산이 줄어든 건 납득하기 힘들다. 

■ 문제➋ 사업 = 예산을 투입한 에너지복지 관련 세부사업의 비중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복지 관련 세부사업을 본예산 규모별로 분류하면, 크게 ‘에너지바우처’ 사업과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으로 구분된다.

에너지바우처는 취약계층이 전기ㆍ도시가스ㆍ지역난방ㆍ등유ㆍLPGㆍ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바우처(일종의 쿠폰)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은 저소득층 가구나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 단열ㆍ창호 공사나 냉ㆍ난방기기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눈여겨볼 점은 두 사업의 예산 비중이 크게 다르다는 거다. 두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전체 에너지복지 관련 사업 예산(3165억원)의 89.1%를 차지한다. 그중 에너지바우처 사업 예산(1910억원)은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사업 예산(910억원)보다 두배 이상 많다.

연탄 가격이 싼 이유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석탄사업자와 연탄공장을 지원하고 있어서다.[사진=뉴시스]
연탄 가격이 싼 이유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석탄사업자와 연탄공장을 지원하고 있어서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이렇게 예산을 배분하면 취약계층의 에너지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정부의 에너지복지 사업의 뿌리는 2007년에 시작된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이다. 그러다 2015년 이후 복지의 체감 효과가 직접적인 에너지바우처 사업을 중심으로 예산을 배분해 왔다.

물론 에너지바우처 사업은 취약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단기적으로 에너지 빈곤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바람이 새는 곳을 막지 않고, 쿠폰만 지급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란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또한 에너지 구입을 직접 지원하기 때문에 취약계층의 에너지효율 개선을 위한 투자를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 에너지바우처 제도의 한계는 또 있다. 이 제도의 전제는 ‘신청’이어서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2017~2021년 전기요금 체납으로 단전을 경험한 가구 중 에너지바우처를 이용한 가구가 10곳 중 1곳에 불과했다는 통계(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문제➌ 방향성 = 에너지바우처 사업은 기후위기 대응에도 역행한다. 취약계층은 바우처를 이용해 에너지를 골라서 쓸 수 있는데, 이 경우 가장 값싼 에너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ㆍ가스ㆍ기름ㆍ연탄 중 현재 가장 값싼 난방 에너지원은 연탄이다.

실제로 연탄보일러 연료비는 등유보일러 연료비의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최근 도시가스비가 인상되자 단독주택 등을 중심으로 다시금 연탄보일러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래서다. 여기엔 ‘연탄’의 역설적 문제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연탄=취약계층용 연료’란 등식에 따라 연탄산업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석탄산업 지원 사업 관련 예산은 3739억원이고, 이중엔 ‘탄가안정 보조’ 사업 예산이 들어가 있다. 이 사업의 골자는 석탄 수급의 안정과 연탄의 저렴한 공급을 위해서 석탄광업자와 연탄공장을 지원하는 건데, 예산은 616억원이다. 석탄사업자에 307억원, 연탄사업자에 228억원 등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생산감축에 따른 지원과 수송비 지원은 별도다. 

이에 따르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연탄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취약계층의 연탄 접근성을 높이고 있는 셈이 된다. 연탄 사용이 환경유해물질 배출이나 안전사고 위험성 측면에서 결코 장려할 만한 정책이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연탄 정책은 국가의 장기적인 에너지 비전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저소득층 에너지효율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취약계층 가구의 단열을 보강하거나 창호를 교체해줌으로써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어서다. 게다가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진행은 더뎌도 비용 대비 효과는 훨씬 높다. 

난방비가 폭등하자 정부는 에너지바우처 인상에만 집중했다. 이슈만 터지면 늘 큰 그림을 보지 못했던 정부는 이번에도 에너지 지출구조를 조정하거나 에너지복지 정책의 근본적인 개선 논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기후위기로 인해 고온과 한파는 일상이 됐고, 에너지비용은 더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취약계층의 에너지 접근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사실 에너지기본권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기반으로 에너지복지 정책의 기준과 목표를 체계적으로 수립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법제화는 단 한번도 이뤄내지 못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분담하는 시스템도, 이를 조정할 에너지복지 정책 전담기구도 아직 없다. 심지어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에너지 취약계층의 실태조사도 미뤄지고 있다. 에너지복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손봐야 하는 까닭은 이처럼 차고 넘친다. 에너지바우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과제도 많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smtax@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