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든 치약을 보며

# 치약이 떨어졌습니다. 며칠 전부터 ‘갖다 놔야지’라는 생각만 하다가 늦었습니다. 쥐어짜고 비틀어 짜도 더는 무리인 듯싶습니다. 1층에 가면 바로 살 수 있는 것을 기어코 내려가지 않고 책상을 뒤적거려 봅니다.

# 찾았습니다. 출장 때 묵었던 숙소에서 챙긴 ‘미니치약’입니다. 숙소에선 한두 번 사용한 게 전부입니다. 버리기 아까워 주머니에 챙겨왔던 기억이 스칩니다. 

# 급한 대로 이걸 쓰고 내일은 꼭 챙겨와야겠다고 맘먹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사람 마음 참 간사합니다. 있다고 생각하니 또 안 챙깁니다. 작은 치약을 다시 쥐어짭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결국 일주일 넘게 썼습니다. 지독히도 짜냈습니다. 

# 새끼손가락만 하게 작았지만 그래도 통통했던 몸이었습니다. 이젠 종잇장처럼 얇아졌습니다. 뚜껑만 처음 모습 그대로입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치약을 봅니다. 예전에 봤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

하상욱 시인의 ‘다 쓴 치약’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 사실을 작은 치약이 몸소 보여줍니다. 그 대단한 치약을 책상 한편에 놔둡니다. 쓰레기통에 버리기 미안해집니다. 살다 보니 치약을 보면서도 반성하는 날이 옵니다. ‘다 쓴 치약’이 남긴 단상입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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