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을 뛰어내리는 용기

#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프로모드를 자주 사용합니다. 셔터스피드와 화이트밸런스, 초점 등을 입맛대로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연사가 안 된다는 거죠. 자동 모드에선 빠른 연사가 가능합니다. 움직이는 물체를 찍을 때 연속으로 촬영해 원하는 장면을 찍기 좋습니다. 프로모드에선 연사 모드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한 장씩 찍어야 하기에 더 신중해야 합니다. 

# 옥상에서 까치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도 올라오는구나…’ 신기합니다. 푸드덕거리며 엘리베이터실 구조물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날아갈까 싶어 서둘러 스마트폰 자동 모드로 몇 장 찍습니다. 재빨리 프로모드로 바꿉니다. 화면 안에 까치와 구조물, 그리고 뒤에 보이는 아파트를 배치합니다. 노출은 어둡게 조절합니다. 까치는 실루엣이 됩니다. 오후 하늘빛은 더욱 노랗게 보입니다. 

# 노출, 초점, 구도, 모든 게 끝났습니다. 이제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웁니다. ‘날아가라, 날아올라라, 너의 퍼덕거리는 날갯짓을 찍어주마.’ 또 기다립니다. 주문도 다시 외워봅니다. 까치는 요지부동입니다. 

# 셔터 버튼 위에 올려놓은 손이 떨립니다. 프로모드에선 연사가 되지 않으니 긴장감은 점점 고조됩니다. 언제 날아갈지 몰라 까치의 작은 움직임에도 헛셔터를 눌러댑니다. 날아가는 순간은 찰나, 기회는 딱 한 번입니다. 카메라를 내릴 수도 없습니다. 동상처럼 가만히 스마트폰을 까치에 겨눈 채 눈치작전을 펼칩니다. 

#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요? 까치의 발이 옴질옴질 움직입니다. 뒷날개도 옴찔옴찔합니다. ‘곧 날아가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까치가 휙 아래로 뛰어내려 버렸습니다. 찰칵,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셔터는 눌렀습니다. 잘 나왔나 떨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봅니다. 거기엔 수직으로 낙하하는 까치가 찍혔습니다. 

# 날아오를 것이란 예상을 깨고 수직 낙하라니요. 떨어지다 날개를 폈으려니 상상해보지만, 저 높은 곳에서 과감히 뛰어내리는 모습은 멋져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작은 까치의 몸짓에 괜히 용기가 듭니다. 떨어질 수 있는 용기를 까치에게 배운 듯합니다. 가끔 주저할 때면 이제 까치 모습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악동뮤지션의 노랫말 한 자락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눈 딱 감고 낙하- 하-
믿어 날 눈 딱 감고 낙하
셋 하면 뛰어 낙하- 하-
핫 둘 셋 숨 딱 참고 낙하

악동뮤지션의 낙하 中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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