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벤처 단비기업❷
류성준 가전리싸이클링센터㈜ 대표
폐가전 부품 폐기 않고 재활용
경제적ㆍ환경적 소득 충분
폐가전 부품 DB화도 계획

폐차는 ‘마지막’까지 부품을 남긴다. 하물며 폐차 시트까지 재활용하는 시대이니 더 말할 필요 없다. 그런데 폐가전은 다르다. 그 속에 양질의 부품이 숨어 있더라도 그냥 버려지기 일쑤다. 그럼 폐가전 속 부품을 재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류성준(60) 가전리싸이클링센터㈜ 대표는 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류성준 가전리싸이클링센터㈜ 대표는 버려질 폐가전 부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겠단 계획이다.[사진=천막사진관]
류성준 가전리싸이클링센터㈜ 대표는 버려질 폐가전 부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겠단 계획이다.[사진=천막사진관]

청소업체 대표이자 가전제품 수리기사인 류성준 대표는 몇 해 전, 출장을 나갔다가 실수로 부품 하나를 고장 냈다. 출시된 지 오래된 모델이라 필요한 부품을 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곳저곳 발품을 팔던 중, 한 고물상에서 원하는 부품을 겨우 찾았다.

가까스로 사고를 수습했지만, 이날 폐가전 속 부품이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걸 마주한 류 대표는 한가지 의문을 품었다. “사장님, 이 부품들 다 버리시나요?” 고물상 사장은 별걸 다 묻는다는 투로 “우린 고철 말곤 다 필요 없다”며 답을 튕겼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뭔가 번쩍였다. “혹시 부품이 필요하면 (저에게) 주실 수 있나요?” 

그날 저녁, 류 대표는 에어컨 청소기사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고물상 사장으로부터 ‘미리 얘기하면 챙겨 놓겠다’는 답을 들은 후였다. “구할 수 없는 부품을 구해드립니다. 필요하면 연락주세요.” 순식간에 37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들이 필요하다는 부품 목록을 정리해 고물상 사장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돌연 그가 얼굴을 바꿨다. “한두개도 아니고, 바빠서 그렇게 많은 건 못 해줘요.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부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폐가전 부품을 공수해주려던 그의 선의善意는 그렇게 꺾였지만 소득도 있었다. 류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폐가전 부품의 쓰임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폐가전 두대를 뜯으면 괜찮은 중고 가전 한대는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류 대표는 충분히 더 쓸 수 있는데도 함부로 버려지는 부품이 아까웠다. 그걸 어떻게든 재활용하면 경제적이든 환경적이든 소득이 있을 듯했다.

“폐차장에 차가 입고되면 전문기술자가 점검해 상태에 따라 ‘수리’ ‘부품화’ ‘고철 처리’로 분류합니다. 가전도 공간과 시스템만 갖추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환경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63만1432톤(t)이던 폐기 전기ㆍ전자제품은 올해 74만5014t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 사용 가능한 부품을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한다면 이를 처리하기 위한 사회ㆍ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량도 감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낡은 가전을 새 가전으로 교체하는 데 쓸 비용을 최소 2~3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류 대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건 사업자금이었다. 류 대표는 틈날 때마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부천사회적경제센터의 단비기업 공고를 접했다. “뜻이 있으니 길이 열리더라고요. 우연찮게 접한 단비기업 공고를 보고 동료를 다시 설득했어요. 그제야 몇몇 동료가 뜻을 함께하기로 했죠.”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지난해 6월 류 대표와 동료들이 의기투합한 ‘가전리싸이클링센터㈜’는 단비기업에 선정됐다. 류 대표는 “폐가전 부품을 사업모델로 삼은 곳은 우리만은 아닐 것”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폐가전의 부품을 아까워했을 테고 그걸 재사용할 방법을 연구해 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지,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방법을 몰랐던 거겠죠. 이제야 출발점에 섰을 뿐이에요.” 

그의 말대로 더 힘든 일들이 류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가전을 수거하고, 부품을 분류하고, 그걸 다시 조립해 유통하려면 작업장과 판매 루트가 필요한데, 그런 기틀을 마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자금력으론 꿈도 꾸지 못할 플랜이기도 했다.

그래서 류 대표가 생각해 낸 게 폐가전 속 양질의 부품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과 기술력을 가진 전문기술자를 양성하는 교육 사업이다. 거기서 일단 수익을 창출한 다음 원래의 사업모델을 실행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저는 이 사업이 잘될 거란 확신이 있어요. 부품을 교체하지 않으면 그냥 폐기되고 말 가전이지만, 부품 하나만 바꾸면 다시 생명력이 살아나니까요. 전국에 그런 폐가전이 어디 한둘이겠어요. 어마어마하겠죠. 저는 그 부품만 따로 모아 DB화하는 것까지 사업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매년 쏟아지는 폐기물을 줄이고, 탄소배출량도 감축할 수 있고요.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죠. 다음 스텝을 밟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수년 동안 품어온 그의 아이디어는 과연 알찬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편집자 주-

☞ 단비기업은 “가장 절실한 순간 가장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모토로 시작한 부천형 소셜벤처 브랜드입니다. 딱 한장만 내면 되는 ‘One page 사업계획서’ 시스템으로 문턱을 낮췄고, 2017~2022년 총 54개팀을 발굴했습니다. 이번 소셜기록제작소에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단비기업 6기 중 8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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