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없는 전기차 충전기 3편 
전기차 충전기 설치하려면
일정한 조건 갖춘 면허 필요
시장에는 ‘무자격 시공자’ 넘쳐
면허 등록 업체서 불법 명의 대여
소비자 안전·서비스 보장 못 받아
당국 “모니터링 어렵다” 수수방관

“2022년 1975억원이었던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예산을 2023년 2925억원으로 대폭 확충하겠다”. 전기차 보급 및 충전 인프라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의 야심 찬 포부다. 하지만 여기엔 커다란 구멍이 있다. 물량 공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안전을 위한 대책은 빠져 있는 거다. 일명 ‘무자격 시공자’가 판을 치고 있는 전기차 충전 시장이 ‘안전 없는’ 정책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전기차 충전 시장이 무자격 시공자로 들끓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기차 충전 시장이 무자격 시공자로 들끓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품질이 따라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국내 전기차 충전 시장이다. 이 시장의 성장세부터 살펴보자.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충전기 사업 시장의 규모는 3000억원 수준이었다. 2030년에는 이 시장이 2조50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 만큼 실제 성적도 우수하다. 2021년까지 10만7295기였던 전국 충전기(완속ㆍ급속) 보급 대수는 2022년 20만5205기로 늘어났다. 1년 새 91.3%나 증가한 셈인데, 그만큼 전기차 충전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전기차 충전 시장의 질적 성장이 신통치 않다는 점이다. 원인은 명확하다. 일명 ‘무자격 시공자’가 난립하고 있어서다.

무자격 시공자란 면허를 등록하지 않은 기술자를 말한다. 전기공사업을 영위하려면 지자체 관청에 ‘업체 등록’ 신청을 해야 한다(전기공사업법 제4조 1항). 자본금 1억5000만원에 3인 이상의 기술자와 사무실을 보유해야만 전기공사업체로 등록할 수 있다.     

반면 면허를 등록한 공인 업체에 속하지 않은 무자격 시공자는 일용직 형태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충전기 설치 공사를 한다. 당연히 불법이다. 전기공사업법 제3조 1항에 따르면 전기공사는 정식으로 등록된 공사업자가 아니면 도급을 받거나 시공을 할 수 없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업체의 대표 A씨는 “충전 시장에 뛰어든 기술자의 90%가 무자격 시공자”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설치업체의 대표 B씨도 “정식 등록을 하지 않은 무자격 시공자들은 세금 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두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시장에 무자격 시공자가 넘쳐나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둘째, 무자격 시공자가 설치한 전기차 충전기는 안전하느냐는 원초적인 물음이다. 

첫번째 질문부터 풀어보자. 언급했듯 충전기 시공자는 전기공사업법상 면허를 등록한 업체 소속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력설비 시공의 허가 및 관리ㆍ감독을 담당하는 한국전기안전공사(이하 안전공사)의 검사를 통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무자격 시공자들은 정식 면허 등록을 마친 업체로부터 ‘돈을 주고’ 면허를 빌린다. 그러면서 마치 공인 업체 소속인 양 행동한다. 이 역시 명백한 불법이다. 전기공사업법 제10조는 ‘공사업자는 타인에게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게 하여 전기공사를 수급 또는 시공하게 하거나, 등록증 또는 등록수첩을 빌려줘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법 면허 대여가 만연한 건 관계 기관에서 이를 적발하기 쉽지 않아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자격 시공자들은 전국 일대에 점조직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공사 의뢰자가 신고하지 않는 이상 담당 기관에서 이들을 사전에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안전공사 관계자 역시 “무자격 시공자를 일일이 파악하고 모니터링 하기가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번엔 둘째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무자격 시공자가 진행한 공사는 안전성은 물론 사후서비스(AS)도 담보할 수 없다.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때 시공자는 충전기가 용도에 맞게 설계됐는지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다음 전기안전관리법 제12조에 따라 충전기 공사 전 안전공사의 ‘전력 사용 허가’를 받는다. 이를 위해선 ‘전기설비기술기준’과 ‘한국전기설비규정(KEC)’이란 두가지 표준 규격에 따라 충전기 설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세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시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남의 면허’를 빌린 무자격 시공자들도 설치 관련 ‘룰’은 지키긴 한다. 

무자격 시공자, 안전 
‘나몰라라’

여기까지만 보면 이상한 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무자격 시공자들은 규칙의 빈틈을 파고 든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업체 대표 A씨는 “원자재 비용을 아끼려고 누전차단기 용량을 줄이거나 규격보다 가는 굵기의 전선을 쓰는 무자격 시공자가 더러 있다”면서 “이는 소비자들의 안전사고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무자격 시공자는 ‘눈속임’으로 안전공사의 관리 기준을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이로 인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무자격 시공자가 사고 위험을 알고도 ‘공사 원가’를 낮추는 원인은 명확하다. 정식 면허를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고 마진을 남기기 위해선 값이 싼 재료를 쓸 수밖에 없어서다.  

소비자의 안전과 권익을 위협하는 무자격 시공의 문제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사후서비스다. 일단 소비자는 충전기 설치업자가 공인 업체 소속인지, 자격 없는 시공자인지 알 수 없다. 면허 등록은 안전공사의 시험대를 통과하기 위한 기본 요건일 뿐 소비자들에게 이를 고지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자격 시공자에게 작업을 맡긴 소비자들은 향후 충전기에 문제가 생겨도 하자보수나 피해보상을 요구할 길이 없다. 이번엔 B씨의 말을 들어보자. “면허를 대여해준 공인 업체에 항의해봤자 ‘해당 시공자는 우리 업체 소속이 아니다’고 하면 그만이다. 설치업자에게 전화를 한다 해도 ‘지금 다른 작업 현장에 있어서 당장 갈 수 없다’며 둘러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다 보면 무상 수리 기간인 1년을 넘기기 일쑤다.”

결국 어떤 안전사고가 일어나도 정작 책임을 질 사람은 없고, 피해를 보는 사람만 있는 셈이다.

관리·감독 기관은 무자격 시공자를 일일이 모니터링하는 게 여의치 않다며 수수방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관리·감독 기관은 무자격 시공자를 일일이 모니터링하는 게 여의치 않다며 수수방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업계 관계자는 “충전기 설치 시장에서 공공연히 불법 행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현재로선 이를 방지하거나 단속할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 관리 기간인 안전공사마저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방관한다면, 무자격 시공의 폐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게 뻔하다. 관리자도, 소비자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 오늘도 무자격 시공은 계속되고 있다. 나날이 커지는 전기차 충전 시장의 폐단을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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