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벤처단비기업➌
최수진 세연제협동조합 이사장
연극 참여로 행동화 교육
인지 교육에선 상징화 작업
실종·유괴·학폭·성범죄 예방

실종ㆍ유괴, 아동학대, 아동 성범죄, 학교 폭력….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만큼 범죄 예방 교육도 전국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건 사고가 줄지 않는다. 혹시 그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닐까. 세연제협동조합 이사장 최수진(46)씨는 “단방향적인 교육의 한계”라고 지적하며 기존의 틀을 깬 안전교육을 제시했다.

최수진 세연제협동조합 이사장은 기존의 틀을 깬 안전교육을 제시했다.[사진=천막사진관]
최수진 세연제협동조합 이사장은 기존의 틀을 깬 안전교육을 제시했다.[사진=천막사진관]

#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아요.”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신고 전화가 한 해 수만건 걸려온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2만1379건의 아동(18세 미만)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하루 평균 59건의 전화가 경찰서에 걸려온 셈이다. 대부분의 아이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그중 아직까지 소식을 알 수 없는 아이들도 있다.

# 학교 폭력 관련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학교 폭력으로 상처받은 한 여성의 치밀한 복수극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전세계적으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했을 이 문제에 공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찍이 연기를 해온 최수진씨는 연극을 통해 아이들의 심리 상담ㆍ치료를 하는 활동을 개인적으로 이어왔다. 연극 치료로 아이들이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꼈고 자긍심도 컸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것도 사실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의 치료보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단 걸 시시때때로 뼈저리게 느껴서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일까요? 실종아동이나 학교 폭력 등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앞단계부터 손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최씨는 강의ㆍ교육 방향의 중심축을 치료에서 예방으로 옮겼다.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거다. 물론 이런 교육은 이미 숱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부터 ‘생활안전교육’ ‘교통안전교육’ 등 여러 범죄 예방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실에서 수업하듯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로는 교육 효과가 떨어집니다. 막상 위험 상황에 닥치면 몸이 얼어버리잖아요. 머리로 인지하는 것과 몸으로 대처하는 건 분명 다른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몸으로 움직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걸 ‘행동화’라고 하는데, 현재의 안전교육에선 이 과정이 많이 빠져 있어요.”

행동화 교육을 위해 최씨가 선택한 건 ‘역순逆順’이다. 인지 교육을 실시한 후 상황극을 관람하는 기존의 연극교육 프로그램의 순서를 바꾼 거다. 그다음 여기에 ‘참여’를 더했다. “학교 폭력 예방 연극, 흡연 예방 연극 등 연극교육도 무척 많아요. 하지만 공연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존 틀을 깬 새로운 방식의 연극교육을 만들어냈지만, 프리랜서인 최씨 혼자 이를 실행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커리큘럼을 만들고, 배우를 섭외하고, 회계문제를 처리하는 것까지 오롯이 혼자 감당했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기획을 할 땐 팀을 꾸려 일을 처리하기도 했지만, 끝나고 나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는 게 영 못 할 일이더라고요. 무엇보다 본업에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최씨는 그때부터 ‘사업화’를 꿈꿨다. 체계적인 구조를 갖춰 일을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뜻이 맞는 이들과 의기투합해 부천시 소셜벤처 프로그램인 단비기업의 문을 두드렸고, ‘세상을 바꾸는 연극 퍼포먼스 제작소’라는 의미를 담은 ‘세연제협동조합(세연제)’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협동조합’이라는 구조를 택한 건 누구와든 함께 걷고 싶어서다. “사람마다 능력치가 달라서 누군가는 냉정한 경쟁 시장에 나가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가치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같이 하면 다 같이 좋아질 수 있다고 믿어요.” 프리랜서 최씨 혼자 감당하던 일도 이제는 기획, 행정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맡아서 담당한다. 최씨는 대표를 맡아 세연제를 총괄하고 있다. 

세연제는 단비기업으로 선정된 후 본격적으로 커리큘럼을 다듬었다. 이 커리큘럼의 핵심은 당연히 ‘역순’이다. 연극을 통해 위험 상황을 먼저 보여줘 범죄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공연이 끝난 다음엔 ‘너도 한번 해볼래?’라며 아이들을 연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가상으로 구성한 범죄 상황에 아이들을 참여시켜 범죄 대응 매뉴얼을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거다. 이른바 행동화 교육이다. 마지막 단계는 범죄 예방 ‘키트매뉴얼’을 활용한 인지 교육이다. 

“일종의 상징화 작업입니다. 가해자, 피해자, 동조자, 방관자 등 인물 스티커를 배치하며 상황을 재인식하게 하는 거죠. 연극을 보고 행동화 교육이 이뤄진 상태라 인지 교육의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납니다. 이 과정에서 미처 표출하지 않은 공격성이 나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럴 땐 아이들을 상담센터에 연계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최씨는 이런 방식으로 유아동 대상의 실종ㆍ유괴 예방 교육은 물론 초ㆍ중ㆍ고교생 학교 폭력ㆍ성범죄 예방 교육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은 차이지만 그 작은 차이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꿀 세연제의 첫 막은 그렇게 올랐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편집자 주-


☞ 단비기업은 “가장 절실한 순간 가장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모토로 시작한 부천형 소셜벤처 브랜드입니다. 딱 한장만 내면 되는 ‘One page 사업계획서’ 시스템으로 문턱을 낮췄고, 2017~2022년 총 54개팀을 발굴했습니다. 이번 소셜기록제작소에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단비기업 6기 중 8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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