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편의적인 에너지바우처
지원일 하루 늦어 사용 못 해
환불 안 되고 4월 말에 소멸
환불 가능 규정도 행정 편의적
추가 에너지바우처 효과 있나

행정기관의 서비스는 국민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행정기관의 편의를 먼저 살피면 정작 수혜를 봐야 할 국민은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적ㆍ경제적 취약계층을 향한 행정 서비스는 친절함을 담보해야 한다. 여기 행정 편의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바우처 시스템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른 이가 있다. 금액이 작긴 하지만 우리나라 행정 서비스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함의가 크다. 

에너지바우처 제도가 과연 수급자 편의에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사진=뉴시스]
에너지바우처 제도가 과연 수급자 편의에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사진=뉴시스]

부산 연제구에 사는 심지연(가명ㆍ43)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다. 노부모와 함께 다섯 식구가 산다. 집이 낡은 데다 식구도 많아 겨울이면 난방비 걱정이 많다. 아무리 아껴 쓰더라도 소득 대비 비용 부담이 크다.

가스요금이 폭등한 이번 겨울은 더했다. 지난 2월 청구된 1월치 가스요금은 17만7000원. 심씨는 “도시가스 가격이 올라서 그런지 전보다 8만~9만원 더 나온 것 같다”면서 “뉴스에서 나오는 ‘난방비 폭탄’을 제대로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가 내놓은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 대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해 끌어올린 가스요금(연초 대비 38.7% 인상ㆍ서울 기준) 탓에 12월부터 난방비 폭탄 고지서를 받았다는 불만이 속출하자, 정부는 1월 26일 에너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난방비 지원 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에너지바우처 지원 금액을 두배로 늘리는 것이었다. 

에너지바우처란 에너지 취약계층이 전기나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LPG, 연탄 등을 구입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쿠폰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소득과 세대원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세대원 수에 따라 지원액(매월 지원이 아닌 총액 지원)이 다르다.

동절기의 경우 ▲1인 세대 12만4100원, ▲2인 세대 16만7400원, ▲3인 세대 22만2700원, ▲4인 이상 세대 29만1800원을 지원한다. 이번에 정부는 이 금액만큼 한번 더 지원하기로 했던 거다. 

이런 기준을 근거로 29만1800원의 에너지바우처 혜택을 받고 있던 심씨(5인 세대)는 2월 8일 “정부 방침에 따라 29만1800원의 에너지바우처를 추가로 지원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총 58만3600원이 지원된 셈이다. 심씨는 “에너지바우처를 거의 소진해 2월 가스요금이 부담스럽던 차에 ‘추가 지원을 해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는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2월 24일 심씨는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2월에 청구된 가스요금 17만7000원 가운데 에너지바우처에서 차감된 액수는 1만3000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16만4000원은 자동이체로 빠져나갔다.[※참고: 에너지바우처는 정부가 에너지 공급업체에 재원을 주고 수급자의 요금에서 차감하는 방식과 수급자가 전용카드를 이용해 직접 에너지 요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심씨는 차감 방식으로 지원을 받고 있었다.] 

심씨가 지역 도시가스 공급업체, 에너지바우처 콜센터, 한국에너지공단(에너지바우처 담당 기관) 콜센터 등에 문의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가스요금 청구서가 추가 에너지바우처를 받기 전날인 7일에 발행돼 기존의 잔여 에너지바우처만 차감되고, 추가된 에너지바우처는 전혀 차감되지 않았다.”

심씨는 환불을 요청했지만 에너지바우처 콜센터 직원은 “이미 요금이 결제됐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면서 “남은 에너지바우처는 3월에 청구되는 요금에서 차감된다”고 설명했다. 

심씨는 “실제 요금이 결제된 날짜는 고지서가 나오고 20여일이 지난 후였는데, 고작 하루 늦게 에너지바우처가 지급됐다는 이유로 환불이 안 된다는 건 수급자 편의가 아닌 행정 편의만을 고려한 처사”라면서 “난방비가 가장 많이 나오는 달에 에너지바우처를 사용할 수 없으면 실질적인 혜택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 지점에서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2월에서 이월된 셈이니 3월 이후에 에너지바우처를 사용하면 괜찮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심씨가 ‘실질적 혜택’을 운운하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스사용량(난방용 도시가스 기준)이 가장 많은 달은 11월부터 3월까지 넉달간이다. 이 기간에 전체 난방 가스의 76.3%를 사용한다. 그런데 에너지바우처는 4월 30일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심씨로선 ‘행정 편의’를 꼬집고도 남을 일임이 분명하다. 

물론 환불의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에너지공단 지역에너지복지실 관계자는 “고지서 발행일(2월 7일) 당시에 기존의 에너지바우처 잔액이 제대로 적용됐고, 추가 지원(2월 8일)된 에너지바우처는 4월 말까지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환불이 안 된다”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전산시스템 오류나 행정 착오 등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사용하지 못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지원금을 환불해주는 규정(환급형 에너지바우처)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직전에 고지서가 발행돼 에너지바우처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했다는 민원이 많았다. 그런 민원이 받아들여져 이번 경우를 ‘행정 착오’로 볼 수 있다면 환불이 가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심씨의 사례를 행정 착오로 볼 수 있느냐다. 지역에너지복지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전산시스템 오류나 행정 착오’는 사실 수급 대상자가 에너지바우처 자체를 지원받지 못한 상황을 의미한다.

반면 심씨는 에너지바우처를 정상적으로 받았고, 이후에도 일정 기간 에너지바우처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콜센터 등에서 심씨의 상황을 듣고 ‘환불 불가’라는 얘기를 반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정 착오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초수급자인 심씨가 곧바로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 착오 등에 따른 에너지바우처 환불은 수급자가 민원을 넣으면 해당 지자체가 심사를 거쳐 판단한다. 이에 따르면 심씨가 직접 민원을 제기해야 한다. 설사 민원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환불받는 데까진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 

심씨와 같은 불합리함을 겪는 이들이 한두명뿐이라면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역에너지복지실 관계자의 설명처럼 에너지공단 측에 비슷한 문의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실제 불편을 겪은 이들은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바우처 수급 대상자는 기초수급자이면서 세대원 중에 노인ㆍ영유아ㆍ장애인ㆍ임산부ㆍ중증질환자ㆍ한부모가정ㆍ소년소녀가장이 있는 가구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기초수급자(235만9672명) 가운데 67만9756명(28.9%)이 70세 이상 노인들이다. 장애인이나 중증질환자가 있는 가구, 한부모가정이나 소년소녀가장 가구가 과연 이런 민원을 제기할 겨를이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얼마나 많은 민원이 있어야 지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날짜와 고지서 발행날짜가 달라 에너지바우처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민원’을 통해 과연 불합리함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정책은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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