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효과의 허상➊
기업형 슈퍼마켓 진출 14년
대형마트 성장세 둔화하자
골목 파고든 유통 대기업
골목의 선진화 논리 펼쳐
현실은 동네슈퍼의 붕괴
메기효과 없었던 골목 현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급증하면서 골목상권에선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사진=뉴시스]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급증하면서 골목상권에선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사진=뉴시스]

대형마트보다 작지만 동네슈퍼보단 크고 물건도 다양한 ‘기업형 슈퍼마켓(SSM)’. SSM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건 2009년 무렵이다. 대형마트 출점이 한계에 다다르자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골목상권을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진출로 골목상권이 선진화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비쳤다. SSM의 등장이 ‘메기효과’를 불러올 거란 얘기다. 그렇다면 그후 14년이 지난 지금 골목은 어떨까.

2000년대 중반 골목마다 대기업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네슈퍼’의 터전이던 골목상권에 대기업이 파고든 건데,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이들이 주력했던 ‘대형마트’ 사업의 성장세가 둔화하자 새로운 먹거리로 골목상권을 택한 셈이었다. 

실제로 1993년 ‘이마트’ 1호점이 개점한 이후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출점 경쟁을 벌였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당초 삼성경제연구소 등 전문가들이 제시한 국내 적정 대형마트 수가 270~280개(인구 15만명 당 1곳)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출점 경쟁이 빚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대기업 유통업체가 SSM이라는 새로운 업태로 골목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한곳에서 수년~수십년 간 운영해온 동네슈퍼들엔 당연히 위협적이었다. 동네슈퍼들의 비명 소리가 본격적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한 건 2009년부터다.

롯데쇼핑·GS리테일·홈플러스·이마트 등이 SSM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점포 수가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SSM의 고속성장은 그 전 5년 새(2005년 대비 2009년) 동네슈퍼 2만여곳이 폐점한 것과 맞물리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에선 “대기업이 전체 소매시장의 5%밖에 되지 않는 동네슈퍼 시장까지 잠식해야겠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푼돈까지 긁어모으는 이른바 ‘페니(penny) 전략’은 대기업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200조원대에 달하는 전체 소매시장에서 동네슈퍼가 차지하는 비중은 5%(약 10조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SSM을 론칭한 대기업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은 되레 “대기업의 유통·물류망을 활용해 동네상권이 선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긍정적인 전망을 쏟아냈다.

2009년 이마트 계열의 SSM 확대 계획을 밝히면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대기업의 논리를 대변해준다. “신세계가 (골목상권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상공인이 살아남는 건 아니다. 소상공인 스스로가 어떻게 고객을 위해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일종의 ‘메기효과’를 주장한 셈이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23년 우리의 골목은 어떨까. 대기업의 논리대로 골목은 선진화했고, SSM의 메기효과로 골목상권도 함께 성장했을까. 그렇지 않다. 골목은 대기업 유통업체들만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SSM의 과도한 출점은 ‘지역상권 붕괴→자영업자 폐업→실업자 양산’이라는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은 현실이 됐다. 

소상공인의 곡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SSM에 일부 규제(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유통산업발전법 개정·2011년)가 적용되긴 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SSM 점포 수는 규제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가파른 증가세를 유지했다.

SSM뿐만이 아니다. 대기업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편의점도 골목을 파고들었다. 2006년 1만개에 불과하던 편의점 점포 수는 4만5975개(상위 3개사 GS25·CU·세븐일레븐)에 달한다. 


‘메기(대기업 유통업체)’의 등장에 그나마 살아남은 건 식자재마트 등 중대형 슈퍼마켓뿐이었다. 작고 오래된 동네슈퍼들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6년 9만6922개에 달했던 동네슈퍼 수는 현재 4만8468개(2019년)로 줄었다. 같은 기간 동네슈퍼 종사자 수도 절반(16만3477명→8만9335명)으로 감소했다. 

8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건데, 이는 그동안 동네슈퍼가 대기업 유통업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한 고용창출 역할을 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직원 수(정규직 기준)는 2021년 각각 2만4599명, 2만1042명이었다. 실핏줄처럼 깔려 있던 동네슈퍼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소비자는 SSM이나 편의점이 주는 ‘편익’을 더 선호할 수 있다. 깔끔한 매장에서 각종 할인 혜택을 받으면서 제품을 구매하고, 여차하면 편리하게 배달을 시킬 수도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14년간 소비자도 달라졌고 트렌드도 달라졌다.

2009년 당시 리얼미터의 ‘SSM 규제’ 관련 설문조사(성인남녀 1000명 대상) 결과, “SSM 허가제를 도입해 골목상권 진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73.0%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동네슈퍼를 보호해야 한다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시장엔 ‘다양한 플레이어’가 넘쳐나야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대형마트든 SSM이든 편의점이든 모두 대기업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일부 업체가 장악한 시장에선 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편익이 나빠질 수 있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는 “시대가 변화하고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면서 유통산업도 변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소비자는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상품 구색, 감정적 가치 등 다양한 니즈를 추구하고,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선 다양한 채널이 공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성훈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과 소상공인(동네슈퍼)엔 각각의 강점이 있다. 소상공인은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섬세하고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를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출점 행위 등에는 각종 인·허가권을 지닌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 골목상권에 필요한 건 ‘메기효과’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상생노력’이란 얘기다.

 

[사진|뉴시스, 참고 
[사진|뉴시스, 참고|산업통상자원부]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일관된 기조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형마트 규제를 일부 풀어준 건 대표적인 예다. 기존 일요일이나 공휴일로 지정해야 했던 의무휴업일을 지자체가 평일로 조정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꿨다. 이후 대구시 등에선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했고 소상공인들은 “최소한의 보호책마저 없애려 한다”며 우려하고 있다.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동네슈퍼에 과연 희망은 있을까. 영등포구에서 20여년간 슈퍼를 운영해온 A씨는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하고 있다. 주위에 편의점이 하나둘 늘면서 매출이 30%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식들이 고생 그만하고 장사를 접으라는데 평생 해온 일이라 그럴 수가 없다”면서 “그래도 단골들이 찾아주고 있으니 버틸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지 않겠나”고 말했다. 메기들이 판을 치는 작은 골목에서 동네슈퍼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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