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직면한 노동시간 개편안
이해관계 조율 없이 강행한 탓
尹 입에 따라 정책도 오락가락
文 탈원전 논란 전철 밟을까
땜질식 정책 사회적 비용 늘려
정책 발표 전 숙의 절차 거쳐야

#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게 정부의 당초 취지라지만, 몰아서 일하는 것과 달리 몰아서 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반발이 적지 않아서다.

# 그러자 대통령이 “60시간 이상은 어렵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가 하면 정부가 소규모 사업장에 근무시간을 체크할 공공앱을 개발하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를테면 정책을 툭 던져놓고 땜질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책 결정은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그 전례다. 

정부가 ‘주 69시간’을 골자로 하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풍이 만만찮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주 69시간’을 골자로 하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풍이 만만찮다.[사진=뉴시스]

후배 : “뭐 69시간 일하고, 그다음 주에 쉴 수 있으면 우리한테 이득 아닌가요?”
선배 : “대기업이라면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해요. 그런데 여긴 중소기업이라 안 돼요.”
후배 : “아니 왜요?”
선배 : “일할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연차 내면 제 업무 할 수 있어요?”
후배 : “그건 좀 곤란한데….”


콩트 형식으로 꾸민 한 유튜브 영상 속 직장 선후배의 대화다. 후배는 ‘주 69시간 근무도 할 만한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선배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들면서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반박한다. 결국 콩트 속 주인공은 쉴 시간도 없이 ‘공짜 야근’을 한다.

이 영상은 지난 3월 24일 업로드된 지 하루 만에 조회수 100만회를 넘겼고, 28일 현재 188만회를 기록 중이다. 그만큼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거다. 윤석열 정부(고용노동부)가 3월 6일 입법예고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국민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오해가 있다”면서 이렇게 반박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연장근무 시간 총량은 오히려 줄어든다. 69시간 근무를 연속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주 단위로 된 연장근로시간을 월ㆍ분기ㆍ반기ㆍ연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개편안에 따르면 연장근무는 4주 평균 주당 64시간을 넘길 수 없고, 기간별(월ㆍ분기ㆍ반기ㆍ연 단위) 연장근무 총량을 지켜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일이 많아도 ‘주당 최대 69시간’ 근무를 연속해서 적용할 수 없다.

이렇게 일을 몰아서 하면 특정 시기엔 연장근무가 아예 불가능한데, 이때 연차를 쓰면 몰아서 쉴 수 있다. 물론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을 때의 얘기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우려만 가득한 尹의 노동시간 개편안

하지만 유튜브 속 대화처럼 중소기업에선 인력 부족으로 인해 있는 연차도 제대로 사용하기 힘들다. ‘한가한 시기’라는 것도 없다. 중소기업에서 ‘몰아서 일하기’는 아주 쉽게 현실이 되지만, ‘몰아서 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게다가 국민 대다수는 중소기업 노동자다.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의 80.7%(2021년 기준)를 중소기업이 담당한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두고 직장인의 불만과 우려가 터져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실제로 직장인들, 특히 젊은 세대의 반발이 적지 않다. ‘MZ세대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3월 9일 정부 개편안에 반대 성명을 내놨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공휴일이 많은데도 평균 노동시간이 긴 이유는 연장근무 상한이 높고 연장근무를 자주 하기 때문”이라면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는 근로조건 최저기준을 상향해온 국제사회의 노력과 역사적 발전에 역행하는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개편안이 반발에 부딪히고 나서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MZ세대 노조를 만났다.[사진=뉴시스]
노동시간 개편안이 반발에 부딪히고 나서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MZ세대 노조를 만났다.[사진=뉴시스]

그러자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강하게 밀어붙이려던 정부 방침에도 제동이 걸렸다. 3월 14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한 윤석열 대통령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16일에는 안상훈 사회수석이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입법예고된 정부안에서 적절한 상한 캡(제한)을 씌우지 않은 것을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자, 고용노동부와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의견 수렴을 통해 60시간보다 더 나올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를 통해 “최근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두고 다소 논란이 있다”면서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최대 노동시간을 ‘주 60시간’으로 못 박은 셈이다.

이후 정부는 사용자가 최대 노동시간을 어기지 않도록 감시하고, 노동자에게 쉬는 시간을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정부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앱을 개발해 30~50인 규모의 사업장에 보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애초에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던 주장이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대안 마련에 나선 거다. 하지만 이 대안 역시 정부가 민간기업에 앱 사용을 강제할 수 없고, 한편으로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감시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찮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정책은 오락가락하고 있다. ‘주 69시간 노동’을 내세웠다가 반발에 부딪혀 ‘주 60시간’으로 바꿨고, ‘주 60시간’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보완할 대책을 찾는 중이다. 땜질식 처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득보다 실 많았던 文의 탈원전

문제는 이런 정책 결정 과정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사례 하나를 보자.[※참고: 여기서 살펴보려는 건 정책 자체의 취지나 방향성이 아니다. 오로지 정책 결정 과정의 타당성과 합리성이다.] 

후보 시절부터 ‘탈원전’ 공약을 강조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8일 후인 27일 정부는 공사 중이던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공사를 계속할지 여부는 3개월의 공론화 작업을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46억원의 공론화 예산을 책정해 신고리5ㆍ6호기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한 다음 10월 13일부터 2박 3일간 토론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10월 20일 투표에서 시민참여단은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건설 재개를 선택했고, 이후 건설은 재개됐다. 

문재인 정부가 섣부르게 신고리 원전 5ㆍ6호기의 공사 중단을 선택한 후 탈원전 정책은 동력을 잃었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섣부르게 신고리 원전 5ㆍ6호기의 공사 중단을 선택한 후 탈원전 정책은 동력을 잃었다.[사진=뉴시스]

사실 정책 결정 과정 자체는 민주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은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원전은 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인데 최종 결정을 시민들에게 맡겼다는 점 ▲장기적 탈원전 정책에는 동의하더라도 건설 중인 원전의 공사를 중단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뒤따를 것이라는 지적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점 ▲공사 중단을 결정할 때를 고려한 대비책이 미흡했다는 점 등이다.

공사를 중단하고 대대적인 공론화를 하기 이전에 정책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본 후에 정책을 결정하거나 향후 계획된 원전만을 대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면 어땠겠냐는 지적도 많다. 요약하면 너무 성급하게 정책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거다.  

문재인 정부가 성급하고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인 대가는 꽤 컸다. 공론화 예산 46억원이 낭비됐고, 신고리 원전 5ㆍ6호기의 공사를 일시 중단하면서 1000억원대의 매몰 비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직간접적으론 원전 수출이 타격을 입었고, 사회적 갈등도 격해졌다. 집권 초기 70%대에 달하던 지지율로 좀 더 발전적인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탈원전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놓친 기회비용까지 포함하면 손실은 더 크다.

성급한 정책은 사회적 비용으로

“원전은 아직 필요하되 줄여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박종운 동국대(에너지ㆍ전기공학) 교수는 2021년 3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무리가 있다. 재생에너지를 늘려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봐 가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원전부터 없애려 하니 진영 간 세력싸움이 됐다.”

정부가 정책을 진행할 때, 특히 이해당사자 간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정책을 추진하려 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갈등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비판해온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 전 대통령이 원전 건설 중단을 밀어붙이다 실패했듯, 윤 대통령 역시 노동시간 제도 개편을 밀어붙이다가 좌충우돌하고 있어서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미리 정해둔 목적을 달성하겠다면서 귀를 닫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사회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는 이미 답을 정해 놓고, 그 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문가를 동원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로사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주 52시간 이상 근무도 과로사 기준에 해당하고, 노동시간 유연화가 글로벌 트렌드도 아니다”면서 “정책의 기반이 되는 기준도 없고, 논리도 틀렸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연구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보건전문가는 단 한명이었는데, 그는 연구회가 권고안을 발표하기 직전에 “이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사의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정책 결정 과정에서부터 오류가 있었다는 거다. 

文 전철 밟지 않으려면…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는 노동도, 노동자도, 사회적 대화도 없다”면서 이렇게 비판했다.

“전문가(미래노동시장연구회)들을 모아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만들었다지만, 그들은 사측 입장만 대변하는 성향이었다. 노조 조직률이 14.2%(고용노동부ㆍ2021년 기준)에 불과해 양대 노총(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노동자들의 이해를 다 대변하지도 못한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양대 노총과의 대화는 노동자 입장을 듣는 최소한의 조치일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그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대화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에 부합하는 노동정책이 나올 리 있겠는가.”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주 52시간’ 노동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주 69시간’이나 ‘주 60시간’이 가능하겠는가. 그냥 밀어붙이려다가는 계속해서 새로운 벽에 부딪힐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공약을 백지화하는 수밖에 없다.” 

반대 논리에 귀를 닫고 추진한 정책은 결국 숱한 논란과 비용만 낳고 폐기되기 마련이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무작정 중단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역시 그랬다. 다만 얼마나 빨리 잘못된 정책을 중단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비용은 줄이고, 기회비용은 키울 수 있다. 윤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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