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보다 빨랐던 폐업
천천히 찾아온 인구 감소
초·중학교는 아직 있지만
점점 줄어들 학령 인구
남은 숙제는 늘어난 통학 거리

도봉고등학교 주변에서 문방구·서점 등이 사라진 지 오래다.
도봉고등학교 주변에서 문방구·서점 등이 사라진 지 오래다.

2004년 개교했던 도봉고등학교(서울 도봉구 도봉동)는 20년 만인 2024년 문을 닫을 예정이다. 한때는 신입생만 300명이 넘었지만 수년 전부터 교육부의 통폐합 권고 기준인 전교생 300명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문제는 폐교 하나로 달라지는 게 골목상권만이 아니란 점이다. 남은 학생들의 공간과 삶도 바뀔 수밖에 없다. 더스쿠프가 내년 봄 폐교하는 도봉고등학교를 가봤다.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출발한 142번 버스가 김근태도서관ㆍ도봉고등학교 정류장에 멈춰 섰다. 정류장에 내리자 넓은 길(도봉산로)은 비교적 조용했다. 도봉산에 오르려는 등산객들만 삼삼오오 모여 위로 향하고 있었다. 

도봉고등학교는 정류장 반대편 도봉산길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절기가 한번 더 돌아 봄이 다시 올 때면 이 정류장은 더 이상 ‘도봉고등학교’라 불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학교는 지금 3학년이 졸업하는 2024년에 폐교될 예정이다.

근거는 2016년 교육부가 강화한 ‘적정규모 학교 육성 권고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도시 지역에서 중등학교 전체 학생이 300명 이하일 때 통폐합이 권고된다. 2022년 전교생이 197명에 머무른 도봉고등학교는 그렇게 폐교 선상에 올랐다. 

■ 비어가는 학생들의 흔적 = 도봉산길에서 서울가든아파트를 앞두고 골목길로 발을 돌렸다. 3월 13일 오전, 학교 인근은 적막했다. 학교 가까이에 있을 법한 문구점이나 문제집 서점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찾을 법한 떡볶이집 같은 분식점도 없었다.

대신 주거 지역이라는 걸 알려주듯 부동산과 편의점만이 도봉고등학교에 이웃해 있었다. 지역 주민은 폐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서울 시내에서 최초로 고등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놀랐지만 정작 지역 주민의 반응은 차분했다. 학교 앞을 오랫동안 지킨 듯한 미용실의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생들이 줄어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에요. 예전부터 감지됐던 일이죠. 학교 아래쪽에 있던 문구점도 문을 닫은 지 한참 됐어요.”

[사진=더스쿠프 포토]
[사진=더스쿠프 포토]

자! 미용실을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골목을 따라 아래쪽으로 걸었다. 수년 전 문을 닫았다던 문방구의 흔적은 간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로 방향으로 높이 매달린 간판에는 ‘문구완구’라고 적혀 있었지만, 지금은 반찬가게였다.

가게로 들어가 언제부터 영업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우리는 여기 온 지 1년쯤 됐어요. 문방구는 아주 예전에 있었고요. 사실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문방구가 아니었어요. 치킨집이 있었어요.”

그럼 문방구는 언제 사라졌을까. 문방구가 사라진 시점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포털사이트 로드맵을 확인했다. 2015년까지 문을 열었던 문방구는 2016년 폐업했다. 도봉고등학교 전교생이 교육부의 통폐합 권고 기준인 300명 밑으로 떨어졌던 해(2019년)보다 3년이나 빨리 문을 닫았다. 

■ 사라지는 공간 = 이처럼 학생 수가 줄어들면 골목상권은 빠르게 위기감을 느낀다. 도봉고등학교의 폐교는 2022년 결정됐지만, 문방구는 그보다 6년 전에 문을 닫은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폐교가 골목상권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그 속에 사는 주민과 학생의 ‘삶’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대표적인 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통학 거리’다. 

자세하게 살펴보자. 도봉동 인근엔 도봉고등학교만 있는 건 아니다. 도봉고등학교에서 반경 1㎞ 내엔 북서울중학교, 도봉초등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400명 이상으로 통폐합 권고 기준보단 많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조금 흐른 시간, 도봉초등학교 학생들이 보호자와 함께 하교하거나 태권도 학원으로 가는 승합차에 올라탔다. 아직은 학생들이 적지 않은 만큼 주변 상권도 학교 주변답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 독서실 대신 새로운 공부 장소로 떠오른 ‘스카(스터디카페ㆍStudy Cafe)’ 등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손을 놓고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서울 전역에서 청소년의 수는 점차 줄고 있다. 만 15~19세 서울 청소년은 2020년 40만8101명에서 2022년 38만5373명으로 5.6% 감소했다. 더 어린 나이대인 만 10~14세 어린이와 청소년은 2022년 36만1546명, 만 5~9세 어린이는 31만7214명, 만 0~4세 유아는 22만7566명으로 그 수가 더 적다. 

이런 통계를 감안하면 도봉고등학교처럼 문을 닫는 학교는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교육 공간을 잃는 학생들이다. 도봉초등학교와 북서울중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도봉고등학교가 사라지면 더 멀리 있는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한다. 청소년은 혼자 이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장거리 통학은 정해진 수순이다.

문방구와 문제집 서점이 문을 닫는 건 도봉고등학교 골목길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다. 저출산 시대가 심화하면 학교가 줄어 학생들의 삶도 변화를 요구받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건 뭘까. 

이 때문에 모든 폐교의 1차적 사용권한을 가진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육부는 폐교 건물을 교육부 사업에 활용하거나 대여 혹은 매각하는데 골목상권의 운명,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 등이 이 과정에서 결정된다. 

교육부는 도봉고등학교의 향후 활용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다. 이들은 과연 어떤 대안을 제시할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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