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벤처 단비기업❼
유기훈 청개구리협동조합 이사
보호 벗어난 가정밖 청소년
그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카페
수익금으로 안전한 자립 지원

학교나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 탓에 스스로 ‘집밖’을 선택한 아이들. 그 아이들은 어둠이 깔린 거리에서 갈 곳을 잃고, 쉽게 범죄에 노출된다. 부천역 앞엔 그 아이들에게 “밥 먹었니”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밥 한끼 제공하는 ‘청개구리 식당’이 있다. 그 청개구리 식당이 이번엔 카페를 만들어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기로 했다. 유기훈(40) 청개구리협동조합 이사를 만나 그 얘기를 들어봤다.

유기훈 청개구리협동조합 이사는 카페 수익금으로 아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사진=천막사진관]
유기훈 청개구리협동조합 이사는 카페 수익금으로 아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사진=천막사진관]

선교사를 꿈꾸며 종교단체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던 유기훈씨는 2015년 어느날,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다. 일주일에 두번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청개구리 식당’을 다룬 다큐였다. “저길 가봐야겠다.” 다큐를 보는 내내 강한 이끌림을 느낀 유씨는 얼마 후 경기도 부천의 청개구리 식당에 찾아갔다.

다큐에서 보던 대로 천막으로 지은 식당이 그 자리에 있었다. 불쑥 그 안으로 들어가 “여기서 아이들과 활동해도 될까요?”라는 말에 청개구리 식당의 이정아 대표는 “그럼요”라며 웃는 얼굴로 그를 반겼다. 그날 이후 유씨는 청개구리 식당의 활동가로 변신해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아이들과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청개구리 식당은 1년 후 천막을 걷고, 건물을 빌려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일주일에 두번 문을 열던 식당에선 매일 밥을 지었다.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명씩 그곳 문턱을 드나들며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배고픈 가정 밖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청개구리 식당에서는 먹을 거 훔치지 않아도 되고, 남을 때리지 않아도 됩니다. 활동가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도 달랠 수 있죠.”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활동가가 청개구리 식당에 손을 보탰다. 곳곳에서 따뜻한 손길도 이어졌다. 그럴수록 청개구리 식당의 구성원들은 고민이 깊어졌다. “과연 후원만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싹텄던 거다. “비영리 임의단체로 청개구리 식당을 운영해왔습니다. 후원으로 끌고 왔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죠. 재정적인 독립이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 공감했고,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청개구리협동조합이 모든 재정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었다. 협동조합에서 ‘이사’를 맡은 유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으로 돈을 벌어야 할까.” 쉽지 않은 자문自問이었다. 여기엔 절대 없앨 수 없는 ‘전제’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수익모델을 찾되,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

고민 끝에 청개구리협동조합은 ‘카페’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청소년을 채용해 그저 서비스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카페를 운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청개구리 식당을 운영하고, 나아가 청소년들의 자립을 지원할 만한 수익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카페는 ‘착한 수익모델’이 될 수 있을 듯했다. 

“학교와 가정 울타리 밖에 있는 청소년들이어서 기반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보호막 없이 성인이 되니까 자립을 해도 여러 어려움이 따르곤 합니다. 그 아이들에게 카페란 공간을 통해 일의 경험을 제공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같이 일하면 삶의 규칙을 스스로 습득하고, 돈을 모으는 습관도 기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지향하는 카페는 한마디로 지속 가능한 청소년들의 자립 공간입니다.” 

청개구리협동조합은 이 모델로 지난해 6월 부천시사회적경제센터가 운영하는 단비기업에 선정됐다. 두달 후인 8월 협동조합의 인가를 받은 데 이어 12월엔 청개구리 카페 영업을 시작했다. 카페 한쪽엔 제로웨이스트숍도 만들었다. “청개구리 식당에서 성장한 친구가 이제는 활동가로 제로웨이스트숍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 친구가 사실상 청개구리협동조합의 정체성입니다. 우린 이렇게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들로 자라나는 걸 곁에서 보고 싶습니다.”

카페를 열면서 유씨의 자격증도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막연하게 ‘카페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2020년 국제 허벌리스트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그 덕에 카페 메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정성스럽게 시럽을 만들어 판매하고, 그걸 활용해 음료도 만든다. 올해는 이걸로 본격적으로 매출을 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카페의 수익금으론 아이들 성장·자립 프로그램도 추진할 생각이다. 사회적응을 위한 4대(금연·성인지·인권·경제) 필수교육을 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위한 기술 교육을 전개할 계획도 세웠다. 아직은 먼 얘기지만 주거 지원 유관기관과 연계해 청소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까지 하겠다는 게 청개구리협동조합의 그림이다.

유씨는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립하려면 주거문제까지 해결돼야 한다”면서 “우리가 직접 주거시설을 마련해줄 순 없지만 그런 정보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연계해주는 것까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거문제까지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청개구리협동조합엔 하루하루 아이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아이들이 자립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편집자 주-

☞ 단비기업은 “가장 절실한 순간 가장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모토로 시작한 부천형 소셜벤처 브랜드입니다. 딱 한장만 내면 되는 ‘One page 사업계획서’ 시스템으로 문턱을 낮췄고, 2017~2022년 총 54개팀을 발굴했습니다. 이번 소셜기록제작소에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단비기업 6기 중 8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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