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대정전 우려하는 산자부
태양광발전 공급과잉 탓이라지만
전문가들은 사태 예견하고 조언
“태양광 공급 조절 장치 달아야”
文정부, 尹정부 전문가 조언 무시
태양광발전 사업자들만 뒤통수
수요 분산과 요금제 개편이 해법

“남아도는 태양광발전 설비 탓에 대정전(블랙아웃)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대정전 우려는 송ㆍ배전망에 문제가 생기거나 전력공급이 모자라는 여름이나 겨울에 나타난다. 그런데 봄에, 그것도 태양광발전 설비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이런 우려가 나온다. 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역대 정부의 실기가 봄철 대정전 사태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역대 정부의 실기가 봄철 대정전 사태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지난 3월 2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봄철 전력수급 특별대책’을 내놨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여름이나 겨울이 아닌 ‘봄철 대책’이라니 이례적이다. 산자부가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이렇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전력수급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지난해까지는 전력수요에 따라 신속한 출력 조정이 가능한 석탄ㆍLNG 발전을 적절히 이용해 전력수급 균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동안 태양광발전 설비의 보급이 늘고, 봄철 전력수요도 줄어 전력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호남과 경남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된 태양광발전 설비는 전력계통에도 부담을 준다. 전력계통이 고장 나면 ‘지속운전성능 미개선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들이 계통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

그러면서 산자부는 “4월 1일부터 매일의 기상 상황과 전력수요를 감안해 호남ㆍ경남지역의 ‘지속운전성능 미개선 태양광발전 설비’를 대상으로, 설비용량 기준 최대 1.05GW까지 출력제어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봄에는 전력수요가 없는데, 좋은 날씨 탓에 태양광발전 설비는 너무 많은 전력을 생산하니 때때로 ‘특정한 발전 설비(지속운전성능 미개선 설비)’의 출력을 의도적으로 막겠다는 얘기다.[※참고: ‘지속운전성능(LVRTㆍLow Voltage Ride Through)’은 전압이나 주파수의 변동성이 발생해도 일정 시간 출력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장치다. 뒤에서 다시 설명했다.] 

일반 국민은 도무지 알기 어려운 산자부의 발표를 이해하려면 사전지식이 좀 필요하다. 흔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송전망을 이용해 여기저기 공급하기 위해선 전압이나 주파수 등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예컨대 전압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과부하가 일어날 수 있고,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송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전류는 고압에서 저압으로 흐르기 때문다. 이런 전압이나 주파수를 일정한 수준으로 잘 유지하는 게 바로 ‘전력수급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이는 발전 설비가 충분하고 전력을 일정하게 생산할 수만 있으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이용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원자력이나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처럼 일정하게 전력을 생산하지 못한다. 햇빛이나 바람은 사람이 조절할 수 없어서다. 그런 면에서 태양광발전은 까다롭다. 전력이 넘칠 때나 모자랄 때, 대응력이 빠른 석탄발전소나 LNG발전소 등을 활용해서 ‘전력수급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력수급의 균형’을 맞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태양광발전 설비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태양광발전 설비가 지난 몇년 새 꽤 많이 늘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태양광발전의 누적 보급용량은 450만㎾에서 2120만㎾로, 연간 발전량은 512만㎿h에서 2472만㎿h로 4배 이상 늘었다. 관리가 필요한 태양광 발전 설비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공급 과잉 문제가 발생했던 거다. 

역대 정부는 태양광발전 설비 공급에만 신경썼지,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사진=뉴시스]
역대 정부는 태양광발전 설비 공급에만 신경썼지,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사진=뉴시스]

만약 전압이나 주파수를 일정 수준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전압이나 주파수의 변동성이 커지면 태양광발전 설비들은 이를 ‘정상적이지 않은 신호’로 인식한다. 그러면 설비를 보호하기 위해 출력을 하지 않는다. 출력이 줄면 전압과 주파수가 더 떨어지고, 그때는 정전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에서 “태양광발전 설비 탓에 대정전(블랙아웃) 우려가 커졌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자부의 ‘봄철 전력수급 특별대책’ 발표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대정전 우려의 원인이 태양광발전 설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애초부터 태양광발전 설비는 ‘손이 많이 가는 발전원’이다. 당연히 태양광발전 보급을 늘리기로 결정한 시점부터는 정부의 관리 대책이 뒤따라야 했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들은 10여년 전부터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 ‘지속운전성능(LVRT)’을 갖춘 인버터(직류전력을 교류전력으로 바꿔주는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버터는 전압이나 주파수의 변동성이 발생해도 일정 시간 출력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장치다. 사실상 태양광발전 설비의 이탈을 막아 대정전을 대비해주는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 장치를 의무화한 건 지난해 9월이다. 그것도 신규 발전소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기존 태양광발전 설비엔 LVRT 인버터를 장착할 의무가 없다. 그런데 산자부는 대정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어 느닷없이 “LVRT 인버터를 설치하지 않은 태양광발전 설비의 출력을 제한하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봄철 블랙아웃 우려는 ‘단순히 태양광발전 설비가 늘어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존재하던 위험성 관리를 정부가 소홀히 한 탓’이란 얘기다. 

이유수 선임연구위원은 “태양광발전 설비가 많지 않을 때는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해도 별 상관이 없었겠지만, 설비가 늘면서 문제가 점차 심각해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린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LVRT 설치가 법으로 규정된 것도 아니고, 비용 문제도 있어서 기존 사업자들에게 강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정부가 임의대로 출력을 제한한다고 하고선 LVRT 설치비 지원이나 출력제한에 따른 보상은 안 하겠다는 건 이상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과학기술정책학 박사)은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한 채 최근에야 관련 조치를 취하고 있으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들에게 새로운 의무를 지우는 건 합당하지 않다”면서 “대정전 우려를 만든 건 결국 정부”라고 주장했다. 석 전문위원은 “무작정 출력제어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게 아니라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풀어서라도 인버터 교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 태양광발전과 연계된 대정전 우려는 인버터만 교체하면 끝나는 걸까. 아니다. 석광훈 전문위원과 이유수 선임연구위원은 “출력을 억지로 제한하고, 송전선로를 더 만들고, 에너지저장장치를 확보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입을 모았다.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등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수요부터 분산해야 한다. 강제로 전력수요를 배분하라는 게 아니다. 송전혼잡도와 지역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도록 요금체계를 바꾸면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요금을 따라 분산된다.”

이처럼 대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선 전기요금 체계를 바꾸고, 전력수요를 분산하는 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외면한다면 대정전 우려는 현실이 될지 모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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