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이탈」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책무 지킨 유가족의 분투기

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는 107명이 사망하고 562명이 부상한 대참사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는 107명이 사망하고 562명이 부상한 대참사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한목소리로 희생자 추모와 원인 규명, 재발 방지를 외친다. 하지만 이런 다짐이 무색하게 비극은 또다시 반복하고, 그때마다 유가족은 지난한 싸움을 되풀이한다.

2005년 4월 25일,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107명이 사망하고 562명이 부상한 대참사였다. 아사노 야사카즈는 이 사고로 아내와 여동생을 잃고 둘째 딸은 중상을 입었다. 유가족이 된 그는 10여년에 걸친 분투를 시작했다. 

「궤도 이탈」은 당시 고베신문 기자였던 마쓰모토 하지무가 아사노 야사카즈라는 유가족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유가족 개인과 ‘JR 서일본철도(이하 JR)’란 가해기업을 오가며 사고를 파고드는 한편, 효고현 남부와 일본 현대사를 통해 사고의 배경을 파헤친다. 

이 사건은 원인과 대응과정을 놓고 볼 때 사회적 참사라 하기에 충분했다. 사고 직후 건널목 사고라는 ‘오보’가 난 것, 사고 후 유가족들이 한참 동안 ‘정보의 진공 상태’에 놓인 것, 사고 한달 뒤 가해기업 사장이 추모식에서 유가족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조사弔詞만 읽었던 점 등이다. 

또한 사고 원인을 조직의 문제보다 운전사 개인의 실수(사고 때 사망)로 돌렸다는 점, 탈선 사고조사위원이 가해기업 JR에 사전 정보를 유출했단 의혹이 있던 점, “보상금 받을 거잖아. 불만 있어?”라며 일부 시민이 유가족에게 2차 가해를 가한 점 등도 참사의 전형을 띠고 있다. 

도시계획 컨설턴트였던 아사노는 기술자로서 면모를 발휘해 탈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사고의 재발을 막는 시스템의 개선을 요청했다. ▲징벌적인 일근日勤 교육 ▲여유 없는 철도 시간표 편성 ▲ATS-P(자동 열차 정지 장치의 새 버전) 미설치 ▲회사 전체의 안전 관리 체계 미비 등 ‘사고 원인 4항목’을 골자로, JR과 대치하며 조직적·구조적 요인을 밝히라고 따져 물었다. 

아사노는 가족을 잃은 슬픔, 가해 기업을 향한 분노,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 면에선 여느 유가족과 같았지만, 감정에만 휩싸이진 않았다. 그는 애통한 심정은 미뤄둔 채 가해기업 사장에게 “이건 과학기술 논쟁이다. 감정론이 아니다. 감정론만 얘기하다 보면 안전으로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며 사고 원인을 공동으로 검증하자고 제안했다. 

아사노는 유가족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힘줘 말한다. “사고를 교훈 삼아 JR은 자신들이 일으킨 사고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원인을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것을 요구하는 게 유가족들의 사명,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고의 사회화’도 강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것을 파헤쳐야만 사고를 사회화할 수 있다. 사고의 사회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가족으로서의 내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철도의 나라’ 일본의 또다른 초상이기도 하다. 민영화 이후 효율성만을 추구하느라 안전성을 간과한 JR의 조직 문화, 부하 직원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무오류주의’ 등이 사고를 불렀다. 10년에 걸친 그의 분투는 “유가족으로서 재난 참사를 사회화하는 게 우리의 책무다”라는 인식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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