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총론] 밀월은 끝났다, 과제가 남았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에 이르기까지 단 67일 만에 말이다. 폐쇄적 인사 후폭풍으로 첫째 총리후보자가 낙마했고,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앞으로 5년 동안에는 더 많은 일이 발생할 거다. 취임준비 기간이었던 67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화려하지만 짧았던 대통령 취임식이 끝났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67일, 시간으로 세분하면 1608시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이후 취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루에도 수십•수백건의 사건이 발생한다. 박 대통령의 주변에서도 다양한 일이 있었다. 인수위 구성 단계부터 인사문제가 터졌다. ‘과거 행적을 밟아보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박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취임준비 기간 67일.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부운영의 방향이 보일지 모른다. The Scoop는 ‘박근혜의 67일’을 짚어봤다.


Point 1 | 대통령 박근혜

첫걸음은 민생

지난해 12월 24일. 박 대통령은 생활보호 대상자의 집에 도시락을 직접 배달했다. ‘민생을 가장 먼저 챙기겠다’는 의지를 첫걸음에 실었다. 실제로 취임준비기간 중 박 대통령의 행보는 ‘민생경제 살리기를 위한 발판 다지기’로 압축된다.

크리스마스 직후인 12월 26일, 박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전경련이 아닌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찾았다. “중소기업을 경제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는 중소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이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인하하거나 중소기업 영역을 무분별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철저하게 근절하겠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날선 말을 날린 박 대통령은 곧장 전경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도 친대기업적 발언은 하지 않았다. 당선 이후 전경련을 방문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언급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되레 ‘고통분담을 하자’ ‘골목상권까지 파고들어 소상공인의 터전을 침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고 당부했다.

첫걸음은 민생, 둘째 걸음은 중소기업

사실 중소기업 살리기는 박 대통령이 선거 이전부터 관심을 놓지 않았던 주제다. 그러나 중소기업 육성•보호책이 아직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청의 장관급 부처 격상’이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1월 15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중소기업청은 17청 중 하나로 머물렀다.

격상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최복희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중소기업 관련 대책이 힘을 받으려면 중소기업청이 힘 있는 기관으로 올라서야 한다”며 “그런데 청 단위는 유지한 채 기능만 강화하는 쪽으로 정부조직개편안이 확정되면서 중소기업청의 격상은 힘들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지하자금을 양성화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세금을 늘리지 않아도 세수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국내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30%인 200조~370조원으로 추산된다. 지하자금만 제대로 양성화해도 적지 않은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박 대통령의 계산으로 보인다.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다. 지금까지 지하경제 양성화를 고민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시중유동성이 마르고, 다른 지하자금이 조성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면서 유야무야됐다. 경제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지하자금 양성화에 성공하려면 서두르지 말고, 조용히,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임준비기간 박 대통령은 정책안건을 철통보안 속에서 발표했다. 박 대통령과 인수위 측은 “정보가 언론에 새어 나갈 경우 불필요한 혼선을 빚을 수 있어 그런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과의 소통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었다.


Point 2 | 인사 후 폭풍

인사로 시작해 인사로 끝난 인수위

▲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0일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27일. 박 대통령은 뜻밖의 인물을 인수위원장에 임명했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었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은 부위원장에 앉혔다. 깜짝 인사로 출발한 인수위는 ‘인사에서 시작해 인사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주요 정책이 인사이슈에 묻히는 아쉬움도 컸다. 박 대통령은 ‘대탕평론’을 의식한 듯 한광옥 새누리당 고문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동서화합의 제스처를 취한 거다.

박칼린 음악감독, 윤상규 네오위즈게임즈 대표도 인수위원으로 파격적으로 임명했다. 인수위는 “국민대통합과 전문성을 살린 인사”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불통 콘셉트 때문인지 상징적인 인물에 불과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폐쇄적인 박근혜식 인사 스타일은 취임준비기간 내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2월 24일 첫 번째 인사 때부터 삐걱댔다. 선거기간 당시 야당 정치인들을 ‘정치적 창녀’라고 공격해 구설에 올랐던 윤창중씨가 수석대변인으로 기용됐기 때문이다. 윤 대변인의 등장은 야당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고, 혼란을 야기했다.

시작부터 삐걱댄 인사

1월 3일 지명된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 대통령의 인사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이동흡 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택한 사람이지만, 지명 당시 박 대통령과 협의한 사실이 밝혀져 비난이 일었다. 이동흡 후보는 41일 만에 사퇴했다.

인사논란은 1월 24일 김용준 전 인수위원장을 총리후보로 지명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애초 인수위 측은 “인수위원은 새 정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김 전 위원장의 총리지명은 불과 며칠사이에 이 원칙을 깨트리는 인사였다. 책임총리라기보다는 ‘의전형 총리’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아들 병역기피, 수도권 땅 집중매입 등 각종 의혹까지 쏟아졌다. 김 전 위원장은 1월 29일 자진사퇴했다.
이런 인사논란은 2월 8일 비교적 온건한 인물로 평가되는 정홍원 전 새누리당 공천추천위원회 위원장이 총리로 지명되면서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5일 후인 2월 13일 법무부 황교안, 국방부 김병관 등 6개 부처 장관이 지명되면서 논란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땅 투기의혹,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병역기피문제가 불거졌다. 게다가 정홍원 총리후보까지 위장전입문제에 시달리면서 인사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인사 논란 끝까지 이어져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도입된 경제부총리에 현오석 KDI원장을 지명한 것도 갑론을박을 일으켰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성향이 복지보단 성장과 규제완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의지를 꺾은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불렀다. ‘중소기업 살리기’의 대전제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삼수 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박근혜 정부는 중소기업과 복지위주의 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는데, 현오석 내정자는 알려진 대로 성장우선주의자에 규제완화론자”라며 “성장과 규제완화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신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인사는 ‘성시경’으로 압축된다. 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이 다수 포진한 점을 꼬집는 신조어다. 내각과 청와대 주요 인사 30명 가운데 성균관대 출신은 7명에 달한다. 고시를 패스한 관료 출신은 16명, 경기고 출신은 7명이다. 인수위 출신 정부 참여자는 전체의 40%가 넘는다.


Point 3 | 국제 정세

경기 봄바람과 북한 핵바람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 글로벌 경제에 봄바람이 불었다. 미국 재정절벽이 일시적으로 해소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꿈틀댔다. 유로존 재정위기도 조금씩 해소될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봄바람은 이내 핵바람으로 바뀌었다.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상황이 뒤엉키고 말았다. 이는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기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북정책기조를 유지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들이면 남북간 신뢰가 쌓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비해 융통성 있는 남북관계를 지향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는 벌써 수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박 대통령의 행보도 조금은 달라졌다. 대화와 신뢰보다는 강경론을 꺼내들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안보’와 ‘대북억제’를 유독 주장하고 있어서다. 최근 나온 “소련이 핵이 없어서 망했나”는 발언은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철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참조: The Scoop 통권 31호 20~21쪽]

남북관계는 한국경제 성장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다. 북한 3차 핵실험 직후에도 증시가 흔들리지 않고 외국인 매도세가 강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긴장의 고삐가 더 조여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욱 심해지면 환율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출기업의 입지가 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의 어깨에는 하루라도 빨리 남북관계의 긴장을 풀 만한 솔루션을 찾아야 할 의무가 얹혀졌다.

박 대통령에게 악재만 있었던 건 아니다. 1월 30일 나로호 발사가 성공한 것은 그마나 기쁜 소식이다. 나로호 발사 성공 이후 박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국가정책의 중심에 놓아 국민행복을 구현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2월 25일 박 대통령은 ‘국가지도자’ 자리에 공식적으로 올랐다. 수많은 사람이 박 대통령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축제가 끝난 자리는 ‘과제’가 메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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