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근 표류기 2023 : 새, 카트, 기후
5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
독일서 자주 본 장면 작품화
이방인의 생경한 경험 떠올려
이질적 삶, 회화 언어로 표현

더 완벽하게 해 피하기, 1190×841㎜,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2023.[사진=오에이오에이갤러리 제공]
더 완벽하게 해 피하기, 1190×841㎜,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2023.[사진=오에이오에이갤러리 제공]

작품을 준비하는 작가는 통상 ‘사진’을 찍는다.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이는 호상근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영감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다만, 방법이 다르다. 그는 영감이 떠오르면 종종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든다. 사소한 찰나부터 의미 있는 순간까지 섬세하게 담기 위해서다.

그만큼 그에게 ‘그림’은 세상과 통하는 문이다. 호 작가는 그림이란 ‘회화적 언어’를 동원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호 작가의 작품이 유별난 건 이런 성향 때문일 거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제목은 ‘호상근 표류기 2023 : 새, 카트, 기후’다. 2019년 네덜란드 엔스헤데에서 잠깐 체류할 때 보고 들은 것을 모아 엮은 책 「호상근 표류기」에서 파생했다. 다만, 작품의 배경은 그해에 정착한 독일이다. 

길 위에 누워있는 카트, 594×420㎜,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2023.[사진=오에이오에이갤러리 제공]
길 위에 누워있는 카트, 594×420㎜,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2023.[사진=오에이오에이갤러리 제공]

이번 개인전의 분위기는 이전 전시회와 사뭇 다르다. ‘A0 사이즈’의 대형 색연필 작품 4점은 호 작가로선 첫 도전이다. 그가 독일 베를린에서 자주 본 장면을 다양한 화면 안에 정교하게 그려 넣은 작품 역시 신선하다. 

한국의 문화적 이해를 밑바탕에 깔고 그림을 그리던 호 작가 입장에선 파격적 변신이다. 아마도 독일에 거주하면서 겪은 이방인으로서 생경한 경험을 표현하려 한 듯하다. 개인전의 제목에 ‘표류’란 단어를 넣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이질적인 삶의 순간을 회화적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을 호 작가는 ‘표류’라고 인식한 것 같다.


이번 개인전이 독특한 이유는 또 있다. 호 작가는 다른 작가들처럼 ‘관찰한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을 외부와 소통하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간다. 그에게 작품은 ‘응답’이고, ‘소통’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유니크’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가시돋힌 CCTV와 얇은 줄_420×297㎜,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2023.[사진=오에이오에이갤러리 제공]
가시돋힌 CCTV와 얇은 줄_420×297㎜,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2023.[사진=오에이오에이갤러리 제공]

침체, 고물가, 부채, 붕괴, 전쟁…. 복합위기는 일상을 초라하면서도 어둡게 만들었다. 독특한 건 사라진 지 오래고, 뻔한 위험함과 더 뻔한 무료함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럴 때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호 작가의 전시를 추천한다. 전시명처럼 표류하는 당신의 미래를 알려줄지 모르니 말이다. 올해 12월 23일까지 오에이오에이갤러리에서 열린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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