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 빈티지 문화의 불편한 진실

▲ 도시 양극화로 사람들의 감성도 둘로 나뉘고 있다.
낡은 동네를 찾은 사람들은 감상에 사로잡힌다. 노스탤지어를 느끼면서 ‘빈貧 진선미’를 찾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탈출욕구’가 강하다. 하루빨리 돈을 벌어 지긋지긋한 ‘빈’의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 도시 양극화. 사람의 감성까지 쪼개고 있다.

한 여행자가 낡은 판자촌을 들렀다. 남루한 곳을 방문하는 ‘빈티지 여행’의 일환이었다. 아파트 한 채가 보였다. 7층 난간에 시들한 꽃이 피어 있는 화분이 보였다. 여행자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름다움의 극치’라면서 말이다. 조금 후 화분 주인을 우연히 만난 그는 “어찌 저렇게 아름답게 배치해놨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시큰둥하게 이렇게 답했다. “죽은 거다.” 가진 자가 보는 세상과 없는 자가 보는 세상은 이렇게 다르다. 관광觀光은 빛을 보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떠난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낡고 황폐한 곳을 보러 가는 빈티지 여행은 관광의 참뜻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다. 빛이 아니라 어둠을 보는 것이라서다.

그럼 빈티지 여행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한국사회는 1970년대 이후 오늘까지 이름과 장소만 달라졌을 뿐 다양한 형태의 재개발이 이뤄졌다. 이런 현상은 서울에서 도드라지는데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뉴타운 특별법)에 의해 진행 중인 재개발 역시 1970년대 강남 신시가지 개발, 1980년대 신도시 개발의 연장선에 있다. 낙후지역의 균형발전, 고품격 주거 환경 조성, 강남에 대한 강북의 경쟁력 강화 등이 서울시가 밝힌 재개발의 목적이다.

1970~1980년대의 신도시개발 정책 목표 역시 ‘국토 및 지역개발 목적의 신도시개발’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영세민의 삶이 더 팍팍해졌다는 것이다. 재개발의 바람에 떠밀린 일부 빈곤층은 달동네나 쪽방촌•판자촌으로 밀려났다. 나쁜 곳에서 더 나쁜 곳으로 삶의 공간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소를 구경삼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달동네에서 사진을 찍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어느 서양건축가는 달동네 골목을 보고 이런 말까지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달동네 골목에서 팍팍한 삶을 버티고 있는 이들에겐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일부 여행전문가는 이런 시각에 반론을 제시한다.

종로 피맛골처럼 뒷골목은 ‘억압적 일상으로부터의 탈주’가 가능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 추억과 진정한 삶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건 ‘자유와 정서’를 허락하는 골목길의 상징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골목에는 ‘탈주’가 아니라 ‘탈출’ 개념이 더 강하게 흐른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애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한 책에 실린 빈티지 여행자가 쓴 글을 보자. “한국의 낡은 골목은 정겹다. 시멘트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벽이나 쇠창살로 모양을 낸 창문은 한때 골목에서 흔히 보았던 것들이다. 이런 골목은 왠지 사람들을 푸근하게 만든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골목을 거닐면서 푸근함을 느낄까. 도시 양극화는 사람의 감성까지 쪼개고 있다.
이기현 기자 lk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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