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0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해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SPC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터졌다. SPC가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하면서 ‘재발 방지 대책’을 쏟아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SPC가 과연 사고를 막기 위해 ‘진심’을 다했는지는 살펴볼 일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사고 직후 안전대책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SPC 오너 일가는 지난해 수백억원대 배당금을 버젓이 챙겨갔다. # 사법 절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경찰과 고용노
꽃다운 나이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70여일이 지났다.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회사는 안전대책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문제는 불거졌다. 고용노동부 감독관의 감독계획서를 직원이 불법 촬영해 회사 메신저에 공유했다. 회장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과 회사가 내놓은 대책의 ‘진정성’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국내 제빵업계 1위 SPC의 이야기다. 사고 발생 70여일, SPC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지난 10월 15일 20대 젊은 노동자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SPC그룹(이하 SPC) 계열의 SPL 평
웹소설 시장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경 100억~200억으로 추산되었던 웹소설 시장은, 작년 2021년에는 6,000억원 규모로, 최대 60배로 성장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20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웹소설 플랫폼의 연 평균 증가율은 25%에서 최대 40%에 달한다.웹소설 시장의 성장세에는, 누구나 웹소설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특성이 뒷받침한다.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웹소설 독자들의 수는 1000만을 넘어섰으며, 웹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들은 20
지난 10일 성수펙토리 D동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디지털 책캐스트 ‘웹소설 독자는 누구인가?’ 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열렸다. 본 행사에는 정무늬 작가, 김준현 작가,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김휘빈 작가, 장르연구가가 참가하였으며 이 날 사회에는 노태훈 문학평론가가 함께했다.현재 웹소설 시장은 접근성과 휴대성에 강점을 두고 있다. 문피아와 카카오페이지 등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여 손 안의 휴대폰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소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소설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장르이다. 따라서 웹소설의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몹쓸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의 온기溫氣가 사라진 무대. 그 위에 61명의 학생이 차례로 섰다. 화려한 드레스와 연미복을 입은 이들의 목소리가 객석을 아름답게 울렸다. 인생 2막을 모색하는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들의 특별한 무대에선 ‘진심’의 소리가 굽이쳤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들의 이색 스토리를 들어봤다.고요한 무대. 피아노 선율이 조용히 흐른다. 멋진 드레스를 걸친 중년의 성악가가 걸어나와 노래를 부른다. 가곡 ‘님이 오시는지’의 노랫말이 아름답게 퍼진다. 그냥 노래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가락’이다. 11월 20
러시아 모스크바와 대한민국 서울에 각각 피아노 한대씩을 놓는다. 한쪽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다른쪽 건반이 똑같이 움직인다. 누르는 무게, 음량, 음색까지 그대로 되살려낸다. 6시간 시차에도 0.25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서울사이버대 피아노과 학생들이 모스크바의 명문 음대 교수진의 생생한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시공간을 초월한 특별한 강의를 더스쿠프(The SCOOP)가 들여다봤다.피아노 귀신이 따로 없었다. 손을 대지 않았는데 건반이 저절로 눌렸고, 다리도 없는데 페달이 내려갔다. 강북구 미아동 서울사이버대 A동 5층
학자에서 CEO로 변신한 이가 있다. 양병무 JEI재능교육 대표다. 2010년 5월 재능교육 대표에 오른 그는 직원과의 소통을 위한 ‘행복경영편지’, 전국 지사를 누비는 ‘현장경영’을 통해 회사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5년8개월 동안 지속된 노사갈등의 고리도 풀어냈다. 10월 1일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에서 양병무 대표를 만났다. 170여통의 ‘행복경영
조선에는 학식이 뛰어난 군주가 여럿 있다. 학문군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손시절부터 공부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인물은 정조(22대)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그는 일부로 한두 자 틀리게 암송하고 신하들이 지적하지 못하면 나무랐다. 신하의 학문을 시험할 요량이었던 것이다.정조시대, 조선 팔도에서 학문으로 첫손가락에 꼽힌 이는 홍대용이다.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