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와 아들 코모두스라는 2명의 황제를 보여준다. 철학가 뺨치는 지혜를 뽐냈던 아우렐리우스가 ‘정치가(statesman)’라면,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전형적인 ‘정치인(politician)’이다. 그럼 정치가와 정치인의 차이는 뭘까.정치인은 정치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의 통로로 사용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즐긴다. 반면 정치가는 공동체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희생을 통해 그 비전을 실현한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크기만
막시무스에게 코모두스는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가 아버지처럼 모신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목졸라 죽이고, 막시무스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까지 불태워 죽인다. 막시무스는 하루아침에 로마 최고의 장군에서 노예검투사로 전락한다. 코모두스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사내의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된다.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볼 때 한가지 짚어볼 게 있다. 막시무스의 불행은 모두 코모두스 때문이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직접적 원인은 코모두스가 제공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간접 원인들은 따로 있다. ‘간접 원인’이 없었으면 ‘
코모두스 황제와 노예검투사 막시무스는 AD 180년 어느날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 한복판에 서서 수만명의 군중 앞에서 칼을 뽑아 들고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결국 두 사람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어쩌다가’ 두 사람이 그날 그곳에서 그렇게 맞서고 그렇게 죽게 됐을까. 누구 탓일까.대중예술에서 극작가와 감독의 시선은 주인공 편향적이고 선악善惡 대결구도에 맞춰져야 한다. 영웅은 절대선이어야 하고, 빌런은 절대악이어야 한다. 막시무스는 강직하고 사심 없고 당당하다. 반면 코모두스는 무능하고 욕심 많고 사악하기 짝이 없다. 막시무스뿐만
죽음에서 살아 돌아와 로마의 심장 콜로세움에 노예검투사로 등장한 막시무스는 한순간에 코모두스 황제를 정치적 곤경에 빠트린다. 코모두스는 황제의 권능으로 노예검투사 하나쯤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만 그것이 간단치 않다.권력이란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와 같은 것이다. 뒤집어지는 바다에서는 항공모함도 견딜 수 없다. 죽은 줄만 알았던 막시무스가 등장하자 잔잔하던 바다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권력을 받치고 있는 원로원에도 거친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코모두스가 못마땅했던 로마시민들과 원로원 의원들, 그리고 루실라 공주의 마음
막시무스의 등장으로 촉발된 코모두스 황제의 정치적 위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 좋은 책사 팔코 의원의 계략에 따라 로마 북부군과 원로원, 누이 루실라까지 가담한 쿠데타 음모를 겨우 막아내지만, 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파도는 계속 밀려올 수밖에 없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 이제 어느 파도에 그의 배가 뒤집힐지 알 수 없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고, 바람은 곧 민심이다. 콜로세움에 모인 군중들의 목소리가 민심을 대변한다면 민심이라는 바람은 이미 그에게서 돌아선 것이 분명하다. 세상 돌아가는 모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죽이고 ‘셀프 황제’ 자리에 올라 돌아온 코모두스를 맞은 로마의 ‘민심民心’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라는데, 민심이 그리도 변덕스러운 것이라면 천심도 그렇게 변덕스러운 것인가 보다. 로마로 입성하는 코모두스를 시민들은 침묵 속에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못마땅한 얼굴로 맞는다. 찬바람이 싸하다. 그랬던 로마 시민들은 코모두스 황제가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폐지해버렸던 콜로세움 검투경기를 부활시켜 신나는 ‘즐길거리’를 제공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펴고 환호한다.손을 흔들며 콜로세움 경기장에
코모두스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목졸라 죽이는 ‘궁중 정변’을 저질러 새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최악의 쿠데타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둘러싼 부자관계는 항상 아슬아슬하다. 부자지간에도 공유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그만큼 권력은 살벌하고 무서운 거다. 아무리 부자지간에 벌어진 일이라 해도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는 황제의 막사에서 황태자가 황제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는 건 불가능할 듯하다. 권력자의 주변 인물들은 사건의 전말을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모두 침묵한다.황태자인 코모두스가 결국 새 황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침묵하
영화 ‘글래디에이터’ 최고의 빌런은 분명 코모두스인데, 다른 영화들의 ‘빌런’들과는 달리 괜히 짠한 느낌이 든다. 코모두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의 느낌 자체가 왠지 쓸쓸하고 슬퍼보여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코모두스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강 헤아려 보아도 다섯번의 ‘배신’에 놀라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좌절하고 분노한다. 세상의 이치라는 게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또 다른 원인이 되는 것이라면 코모두스는 ‘빌런’이기 때문에 배신당하고, 배신당해서 더욱 ‘빌런’이 되는 듯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코모두스는 ‘안습형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막시무스와 함께 음산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게르만과의 전투를 지휘해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황태자 코모두스는 전투가 끝난 뒤에야 전선에 도착해 설친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코모두스에게 “황제 자리를 막시무스에게 물려준다”고 통보한다. 분노한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다.아버지와 막시무스가 이뤄낸 승리의 영광을 모두 가로챈 코모두스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 꽃을 뿌리며 로마로 개선한다. 그러나 길에 늘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냉랭하다. 몇몇은 난생처음 보는 불쾌
콜로세움에 모인 로마 시민은 ‘찝찝한’ 새 황제 코모두스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기획한 ‘자마 전투’의 재연에서 ‘한니발의 야만군대’를 이끌고 스키피오의 로마군단을 쳐부순 우두머리가 다름 아닌 로마의 위대한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마 시민은 막시무스에게 열광한다. 스키피오 로마군단의 전멸이라는 ‘라이브 콘서트’의 ‘공연 참사’에도 아랑곳 않는다.그날로부터 로마에 ‘막시무스 열풍’이 몰아친다. 노예검투사 막시무스가 검투경기에서 그들의 황제 코모두스를 조롱하고 무참하게 죽여버리는 꼭두각시 놀음까지 거리에서 벌어진
로마의 전쟁 영웅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계략에 빠져 처형당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다. 어깨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가족이 있는 스페인 고향집까지 말을 몰아 달려간다. 지금으로 치면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스페인까지 말 타고 달려간 셈이니 대단하기는 하다. 하지만 고향집은 막시무스를 절망에 빠뜨린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내와 어린 아들은 이미 코모두스가 보낸 군인들에게 살해됐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코모두스는 선을 넘었다. 이제는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게 됐다.아내와 아들을 묻고 정처 없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글래디에이터’는 재미와 흥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서 상당 부분 일탈해 있다. 하지만 ‘미장센(mise-en-scene)’ 역시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왜곡이라기보다는 보정補正에 가깝다.‘글래디에이터’를 제작할 때 자문역으로 참여했던 로마사를 전공한 다수의 역사학자는 ‘미장센’ 문제 때문에 중간에 자문역을 내던지거나, ‘엔딩 크레딧’에 본인 이름이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게 아니었다는 건 흥미롭다.로마사 전공 역사학자들은 코모두스 황제가 아
코모두스는 게르만족과 대치 중인 전선의 군막軍幕에서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교살하고 황제 자리에 올라 로마에 입성한다. 아버지를 죽인 코모두스의 로마 입성 행진은 화려하고 장엄하기 그지없다. 유럽정복에 나선 히틀러가 베를린 개선행진 행사의 모델로 사용했다는 그 유명한 장면을 천재 감독 리들리 스콧이 재현해준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로마에 장엄하게 들어온다. 그 장엄함은 아버지를 죽이고 돌아온 코모두스가 지구 끝까지 정복하고 돌아온 개선행진인 줄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로마
황제이자 아버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한 코모두스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 막시무스는 황야에서 정신을 잃는다. 노예상인이 막시무스를 ‘주워’ 북아프리카 검투사 에이전시에 넘긴다. 로마 최고의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에게 시골 검투경기 정도는 ‘껌’이다. 훈련이나 연습경기도 건너뛰고 곧바로 프로 데뷔한다.막시무스는 지금의 모로코나 알제리 어디쯤으로 보이는 사막의 장터에 흙으로 지어진 조악한 원형경기장에서 데뷔한다. 노예상인들이 주워오거나 사오거나 사냥해온 노예 검투사들이 서로를 아무 이유 없이 죽고 죽이는 살육극을 기대
재능 있는 스토리텔러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조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토리’를 잘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명장名匠 리들리 스콧이 제작한 ‘글래디에이터’가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글래디에이터’는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었지만, ‘사실史實’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스콧이 영화를 만들었기에 다행이지, ‘유튜버’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오늘은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유튜버 전성시대를 꼬집어보려 합니다.
명장名匠 리들리 스콧이 만든 ‘글래디에이터(Gladidatorㆍ2000)’는 명장의 작품다운 명품이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을 휩쓸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뛰어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듯하게 버무리는 재주를 지녔다. 사기꾼의 자질이기도 하다.분명히 이어붙였는데 그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로
미래차 핵심은 ‘무게’경량화 연구하는 완성차 업계전기차가 빠르게 일상에 보급되면서 관련 기술들이 적극 개발되고 있다. 특히 차를 가볍게 만드는 경량화 기술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엔진 대신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200㎏ 이상 무거워 차 경량화 기술이 긴요하다.아울러 이 기술은 환경보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차량 무게가 10% 감소하면 연비가 3.8% 증가하는 반면 각종 배기가스 배출량은 최대 8.8%까지 줄어든다.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도 차 경량화를 위한 소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
픽업트럭이 험한 길에서 일반 도로로 내려왔다. 짐차 취급을 받는 건 옛말이다. 차박(차 안에서 숙박)이 편리한 다재다능한 차종으로 꼽히면서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 수입 모델들도 도전장을 내밀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픽업트럭 불모지’로 꼽히던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반전 스토리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픽업트럭의 입지가 단단해지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한국은 픽업트럭의 불모지로 불릴 정도로 인식이 형편없었다. 어떤 픽업트럭이든 승차감이 나쁘고 연비도 효율적이지 않은 ‘화물차’ 취급을 받았다. 투박한 디자인과
전기차 충전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줄 초고속 충전설비가 나왔다. 현대차와 전기차 충전 전문업체 대영채비㈜가 공동개발한 ‘하이차저(Hi- Charger)’다. 국내 최고 수준의 350㎾h급 고출력ㆍ고효율 충전기술을 적용해 800V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20분만에 80%가량 충전할 수 있다. 또다른 장점은 편의성이다. 누구나 쉽게 충전 커넥터를 연결할 수 있도록 부분 자동화 방식으로 설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차는 사용자 편의를 위해 하이차저와 연동되는 전용 앱(애플리케이션)도 제공할 예정이다.사용자들은 해당 앱을 통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의 두 주인공은 CIA 중동지역 책임자 에드 호프만(러셀 크로우)과 호프만 직속의 현장 요원 로저 페리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둘은 같은 기관 소속에 이슬람 테러 정보수집과 테러 방지라는 뚜렷한 목표를 공유했다. 일사불란해야 마땅한데 왠지 삐그덕거린다. 드러내놓고 의견이 충돌하고 언쟁 하고 책상을 뒤엎고 관계가 파탄나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