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체질이 변하고 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던 중후장대重厚長大 관련주의 힘이 빠지고, IT·반도체와 같은 기술주가 급부상 중이다. 네이버·카카오 등 IT 관련주의 성장세가 가팔라지면서 국내 증시가 미국 벤처기업의 요람인 ‘나스닥’처럼 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연 그럴까. 더스쿠프(The SCOOP)가 2000년과 2010년, 그리고 2020년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변화를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코로나19 사태로 폭락했던 코스피지수의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3일 2147.0포인트로 2100포인트대를
‘포스코 최정우호號’가 7월 27일 출항했다. 50년 포스코의 제9대 선장자리에 오른 최정우(61) 신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With POSCO’를 새 비전으로 제시했다. 일자리 만들기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힘쓰겠다는 뜻인데, 초반부터 작금의 사회적 요구에 무척 신경 쓰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가 시민단체의 검찰 고발, 정치권의 공격 등을 극복하고 뉴 리더십ㆍ뉴 포스코 구축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최정우 회장의 과제를 살펴봤다. “포스코 회장 후보로 선정돼 영광스러우면서도 어깨가 무겁다. 선배들 업
주식의 ‘주’자도 모르던 20세 청년은 무작정 시장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본전도 못 건졌지만 손실만 있던 건 아니었다. 시장의 법칙을 알게 됐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지금 이 청년은 ‘슈퍼 개미’로 통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주영(35) IP경제교육원 대표를 만나, 주식 시장의 민낯을 물었다. 그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없어 고민 중”이라고 꼬집었다.✚ 이른 나이에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가 스무살이었어요. 선친이 남긴 유산으로 시작했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죠. 주식시장을 아예
한국은 인구구조만 늙는 게 아니라 기업 생태계도 늙어가는 구조다. 인구 고령화의 원인이 저출산과 평균수명 연장이라면 기업 생태계 고령화의 배경은 유망 신생기업의 탄생이 더딘 대신 늙은 기업들이 그렁저렁 연명하는 데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전한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한 전문가 제언집’을 보면 미국 10대 기업(시가총액 기준)의 나
“설마 외환위기 때보다 심하겠어?” 지독한 불황, 그래도 우리가 위안을 삼아왔던 말이다. 하지만 이 말도 이젠 위안이 되지 않는다. 2016년 한국경제의 주요 지표가 ‘불안한 시그널’을 울리고 있어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16년 한국경제, 발가락까지 닮아가고 있다. 1997년.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불리는 외환위기를 겪었다. 대기
해마다 5월 셋째주는 중소기업 주간이다. 이러저런 행사와 이벤트가 열린다. 하이라이트는 청와대 초청 행사다. 2009년부터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것으로 관례화됐다. 이름하여 ‘중소기업인대회’. 올해도 지난 20일 점심을 함께 하는 형식으로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낸 중소기업인 모두가 자랑스러운 애국
한국 경제를 둘러싼 사방四方이 절벽이다. 수출이 역대 최장인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수출이 부진하면 내수가 받쳐줘야 할 텐데, 1월 소매판매가 줄고 소비자심리지수도 지난해 메르스 사태 수준으로 위축됐다. 1월 산업생산과 투자가 감소했고,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기업경기실사지수도 7년 만에 최저치다. 실물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 전반이 마이너스 증가
구조조정 바람이 지나가면 매각 이야기가 나올 거다. 지금껏 위기에 처한 기업의 수순이 그랬다. 잘 가다듬으면 보석이 될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이야기다. 이 기업, 과연 누구에게 인수돼야 침체의 늪을 탈출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 중 해외 바이어에게 자부심을 갖고 현장소개를 해줄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이다. 넓은
대우조선해양이 또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부실을 은닉해 실적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대우조선은 위기때마다 정부의 힘으로 뱃고동을 다시 울렸다. ‘주인 없는 회사’ 대우조선, 변화가 필요하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국영 기업인 대한조선공사를 떠안은 남궁련씨는 거제도 옥포에 당시로선 최대 규모인 조선소를 건설했다. 그러나 무리한 건설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