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④

청년은 그 주인 재상의 멱살을 움켜잡고 이렇게 꾸짖었다. “네 문객인지 하인 겸종인지 되는 야우라 하는 놈이 한강진 선중에서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할 짐승 같은 짓을 감행하니 이는 당신의 권세를 빙자하고 그러함이라 내 그놈의 목을 베어왔노라.” 
 

▲ 서애 유성룡은 순신의 용력과 의기에 반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모 재상가의 힘을 믿고 설치는 야우란 녀석을 보고 선중 행인들 가운데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대단한 의협지사가 아니라도 그저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죽은 사람이 아닌 이상 어찌 보고만 있단 말인가. 그런데 하물며 청년시대의 의기남아로서 같이 한 배에 실렸다가 이 광경을 당하고 참을 수 있을쏘냐.
그러나 야우의 용력이 맹호와 같음을 무서워하여 먼저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야우는 더욱 그 용력을 자랑하는 듯 배를 탄 사람들의 기운을 누르며 모욕하는 듯하였다.

이런 때에 20세가량 되는 약관청년이 사람들 중에서 뛰어나온다. 그 청년은 키가 7~8척이나 되고 몸이 호리호리하고 옷은 청창의를 입었고 갓은 양립凉笠을 쓰고 신은 당혜唐鞋를 신었다. 얼굴은 범의 머리에 제비의 턱이요 몸은 잔나비 팔에 곰의 허리였다. 참으로 준수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대번에 그 야우란 자의 뺨을 쳤다. 야우는 반항하였다. 야우의 주먹은 정말 무서웠다. 황해도 대적大賊 임꺽정林巨正과도 갑을을 겨누던 권법이다. 임꺽정이 죽은 뒤로는 제 스스로 천하무적이라는 놈이었다. 그 놈이 주먹을 겨누어 청년을 후려친다. 배 안의 사람들과 유성룡은 그 청년이 행여나 능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동정심은 그 청년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 청년은 야우의 주먹을 교묘하게 피하더니 홀연히 공세를 취하여 발로 야우의 가슴을 차서 야우는 용력을 쓰지 못하고 뱃바닥에 자빠졌다. 그 청년은 나는 듯이 두번째 발질을 차서 야우는 벌써 반생반사가 되었다가 결국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야우는 무쌍한 역사力士로 살인 겁간을 하다가 금일에 이르러 그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 배에는 일대문제가 발생하였다. 야우가 저지른 범행의 선악은 고사하고 ‘살인자는 사형’이라는 국법을 무서워하여 사람들은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참으로 뛰어난 용사였다. 아까는 마치 매가 참새를 취함과 같았다. 그 청년이 야우의 죄상을 이렇게 꾸짖었다. “경향을 물론하고 살인범간한 중범인데 이런 놈을 관리하지 못한 건 그의 주인인 재상의 권세 때문이다. 이제 그같은 만행을 백주에 감행하니 이것이 모두 그 재상이 버릇을 잘못 키워준 탓이다.” 청년은 이 말을 내뱉은 직후 옷고름에 찬 장도를 빼어 들고 그 놈의 목을 베어 하체는 강물에 밀어 넣고 수급만을 뱃전에 걸터앉아 피가 빠져 없어지도록 흔들어 씻는다.

피가 없어진 뒤에는 수건을 내어 그 수급을 싸가지고 조용히 천연한 태도로 사람들 사이로 은신하여 버렸다. 선중의 사람들 중 일부는 통쾌하게 여겼지만 일부는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법을 생각하고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애, 선중 싸움서 순신 만나다”

이 광경을 본 유성룡도 야우를 두둔하는 모 재상의 혁혁한 세도와 그 간흉한 수단을 염려하여 앞으로 무슨 후환이나 있지 않을까라고 근심한다. 그러던 중 배가 강 끝에 다다르자 그 청년이 먼저 배에서 뛰어내린다. 주도면밀한 성격의 유성룡은 그 청년의 이상스러운 행동을 끝까지 봐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서동에게 뒤에 오라고 하고 자기는 걸음을 재촉하여 곧 그 청년을 따라갔다. 그 청년의 걸음은 달리는 말과 같았다. 유성룡이 간신히 뒤쫓아 가는데 어느새 종로를 지나고 북촌에 들어가 야우의 주인 되는 모 대가에 도달하였다. 그 대문간은 별배(벼슬아치 집에서 사사로이 부리던 사람)와 겸종이며 행랑 하인들이 지키고 있어 권문세가의 본색이 완연하였다.

그 청년은 별배에게 “너의 댁 대감이 지금 계시냐” 물었다. 별배는 “네, 사랑방에 계십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 청년은 두번 묻지 아니하고 바로 들어가 마루에 올라 방 안으로 들어간다. 유성룡은 같이 온 사람 모양으로 역시 마루까지 올라가 거동을 엿봤다. 일종의 호기적 의협심에 끌려 여기까지 온 것이다.

청년은 그 주인 재상의 멱살을 움켜잡고 이렇게 꾸짖었다. “네 문객인지 하인 겸종인지 되는 야우라 하는 놈이 한강진 선중에서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할 짐승 같은 짓을 감행하니 이는 당신의 권세를 빙자하고 그러함이라 내 그놈의 목을 베어왔노라.” 이후 청년은 한손으로 허리에 찼던 수건을 펴고 야우의 수급을 내어들고 그 재상의 가슴팍을 쳤다. 그 재상은 사생간 경황망조하였다. 경황한 중에도 “야우는 천하장사인데도 그 목이 떨어졌을 때에는 하물며 나 정도야…” 하고 생각함에 혼이 몸에 붙지를 아니하였다

그 청년이 다시 “네 아랫사람이 이렇게 횡포함은 모두 너의 권세를 빙자함이니 네 책임이 아닐 수 없고, 국척이면서 재상이라는 신분을 그릇 행사하여 흉험하고 탐욕스러워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독이 적지 않으니 너를 살려둘 수 없다”며 한손으로 장도를 빼어들고 그 재상의 목을 겨눈다. 그 대감은 황겁하여 미처 하인을 부를 사이도 없었던 것이다. 생명은 경각간에 달렸다. 힘으로 다투다가는 무익한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고 그만 애걸하였다. 이것이 소인의 상태였다. “일이 잘못되었소. 한번 용서함을 바라오.”
 

▲ 이순신은 무인이지만 문에도 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청년은 그제야 대감의 멱살을 놓고 “내 어찌 하루에 인명을 둘이나 살해하리오. 한번 용서하는 것이니 이런 일이 또 있게 하지 말라”고 말하며 나간다. 유성룡은 다시 뒤를 쫓아 청년을 모처에서 만났다. 그 청년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백암 이순신이었다. 유성룡은 그 충천한 의기, 절세의 용력, 흔들리지 않는 행동과 담량이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것이라 하여 일생에 지기가 되었고 사모하는 정이 각별하였다. 나이는 서애가 세살 위였다. 그럼 그때 그 재상은 누구일꼬. 윤원형尹元衡일까 심통원沈通源일까.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간신일 것이다. 그 누구인지 명백히 드러내지는 아니하나 이순신에게 혼을 잃고 난 뒤에는 풀이 죽어서 감히 야우의 사건을 발설하지 못하고 덮어두었다. 그 청년은 정말 무서웠다. 꿈에라도 그 청년 용사를 만날까 겁이 나서 전율하였다.

순인이 文 대신 武를 추구한 이유

이 일은 임협(의미 있고 용감하다는 뜻. 더불어 ‘힘을 앞세운다’는 부정적 의미도 있음)의 종류에 가깝다 하여 속유俗儒들이 이 부분은 빼버리는 게 어떠하냐고 말한다. 하지만 임협의 행위라도 풍속을 바로잡는 일이면 장부의 당연지사로 안다. 혈기가 방장한 청년이던 이순신의 기개로 봤을 때 이 광경을 보고 참을 수 있나. 더구나 권신 윤원형 무리의 하수인을 정녕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윤원형은 음험하고 악독하며 재물을 좋아했다.

선비들을 모함해 죽인 것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도로의 행인들까지 윤원형을 흉적으로 봤다. 이런 순신에게 서애 유성룡은 이렇게 권했다. “그대의 영재로 무를 버리고 문을 좇으면 일찍 등과하여 청요대각(좁게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이르는 말. 여기에 홍문관 또는 규장각을 더하기도 한다)에 이름이 빛나리라.” 순신은 이렇게 답했다. “장부 어찌 평생토록 벼루와 붓과 책에 종사하리오. 임금을 모시는 도는 문무가 다르지 않으니, 옛날에 한신 제갈량이 무로써 빛났은즉 나는 난세를 당하여 일을 바로잡고자 하노라.”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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