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시험대

삼성전자가 웨어러블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워치인 ‘갤럭시 기어’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는 삼성 기어 시리즈를 선보였다. ‘추격자 전략’으로 시장을 뒤업는 삼성전자의 기존 전략과는 크게 다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웨어러블 시장을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이 이끌 수밖에 없어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과제는 시장 선도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사진=뉴시스]
‘패스트 팔로(Fast Follow)’ 전략을 유지하던 삼성전자가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IFA(국제가전제품전시회)에서 스마트워치인 ‘갤럭시 기어’를 선보였다. 그로부터 5개월 만인 올 2월 MWC(세계모바일기기박람회)에서 ‘삼성 기어2’ ‘삼성 기어2 네오’ ‘삼성 기어핏’ 등 웨어러블 시리즈를 연이어 발표했다. 웨어러블 기기 시장 진출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업계에선 “예상했던 것보다 삼성전자가 일찍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엔 삼성 기어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 3월 개발자들에게 웨어러블용 개발도구(SDK)를 배포했고, 5월엔 ‘삼성 기어 애플리케이션(앱) 챌린지’를 개최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전용 생산 라인(A3)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사인 삼성디스플레이는 올 5월 이사회를 열고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생산 라인을 건설하는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A3는 웨어러블 기기 생산을 염두에 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고객사의 주문과 니즈에 따라 생산하기 때문에 어떤 제품을 양산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의 눈은 삼성전자가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지에 쏠린다. 특히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업계 관계자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은 헬스케어일 가능성이 크다”며 “헬스케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올 4월 중국 보아오 포럼 ‘아시아 경제전망 2014’에서 “삼성이 의료와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연구개발(R&D)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헬스케어의 성격이 뚜렷한 삼성 기어가 이 부회장의 첫 시험대로 꼽히는 이유다.

이 부회장이 웨어러블 기기를 주목한 이유는 뭘까.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판매 수익을 거둘 수 있다. IT 시장에서 ‘리더 이미지’도 구축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고민은 ‘추격자’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털어내느냐다. 어떻게 ‘시장 선도자’로 거듭나느냐가 삼성과 이 부회장의 고민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삼성은 패스트 팔로 전략으로 가전시장에선 소니, 피처폰과 스마트폰 시장에선 각각 노키아와 애플을 빠르게 뒤쫓아 앞질렀다. 배턴을 이어받은 3대 이재용 부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추종자가 아닌 ‘리더’로 탈바꿈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웨어러블 시장서 리더 노리는 삼성

웨어러블 기기에 신경 쓰는 이유는 또 있다. 스마트폰 제조업의 패권이 중국과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중국 제조업체와 아마존이 저가단말기를 내놓으면서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는 삼성전자나 애플로선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려워졌다. 삼성전자는 퀄컴과 구글에 적지 않은 로열티를 제공한다. 갤럭시 스마트폰은 삼성 로고를 달았지만 국제종합제품이나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APU는 퀄컴의 제품이고, 운영체제(OS)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에서 갤럭시가 판매되는 건 삼성이 퀄컴, 구글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며 “마케팅을 공동으로 전개한 덕분에 높은 판매고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이들에게 지불하는 로열티를 빼면 돈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웨어러블 기기에 독자 OS인 타이젠을 탑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타이젠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추종자로 불렸던 설욕을 만회하고, 단번에 리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삼성 기어2에 타이젠 OS를 적용했다.

그렇다면 이 부회장이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뭘까. 두가지가 꼽힌다. 먼저 헬스케어와 같은 신사업을 대비할 수 있다. 201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겠다며 의료기기ㆍ바이오제약ㆍ태양전지ㆍ2차전지ㆍ발광다이오드(LED) 5대 신수종 사업을 선정했다. 틀을 잡은 것은 이 회장이지만 헬스케어와 의료기기 사업을 이끄는 것은 이 부회장이다.

 
헬스케어 기능을 탑재한 웨어러블 기기의 장점은 사람이 항상 몸에 착용할 수 있다는 거다. 언제 어디서나 심장박동이나 혈당체크가 가능하다. 이는 삼성 기어2와 기어핏이 강조하는 기능이다. 더욱이 전세계가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어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얘기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대비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근 IT기업이 주목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스마트홈과 스마트카다.

삼성전자도 두 사업에 적극적이다. 올 1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갤럭시 기어로 BMW 전기차 i3의 차량 상태를 확인하고, 차량 온도 조절과 음성 인식 기능을 실행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행사에서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스마트홈 서비스도 강조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 시장에 진출했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밖에 있는 이용자가 가정의 가전제품이나 전기용품을 원격 제어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안’ 서비스를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시장은 선점했지만 …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 부회장의 출발은 상큼하다. 시장선점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어서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71.4%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시장점유율은 70%를 넘지만 물량으로 따지면 50여만대에 불과하다. 웨어러블 기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애플의 아이워치 대기수요가 존재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IDC가 미국 소비자 대상으로 제조사별 웨어러블 기기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애플 45%, 삼성전자 42%, 구글 35%로 나타났다. 이는 두가지를 의미한다. 아이폰의 등장을 기다리는 ‘애플 효과’가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웨어러블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의 선호도가 제품조차 출시하지 않은 애플보다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삼성의 웨어러블 시장 도전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시그널이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의 변신은 그만큼 어렵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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