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보호대책 최악의 시나리오

임차인의 수없이 많은 눈물이 배어 있는 ‘권리금’. 정부가 이를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진보세력도 ‘권리금 보호대책’ 만은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은 아직 많다. 이번 권리금 보호대책이 임대료 상승을 견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금의 근거자료(표준계약서)가 될 수도 있다. 꼼꼼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 정부가 내놓은 권리금 보호대책을 좀 더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상가 권리금에는 ‘오랜 분쟁’의 역사가 숨어 있다. 세입자의 권리금을 건물주인이 가로채거나 주인이 바뀌면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권리금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국내 전체 상가 중 41%(120만개)에 권리금이 붙어 있고, 그 규모는 33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런 권리금이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정부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권리금 문제를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권리금 보호법안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건물주인이 바뀌어도, 모든 상가 세입자는 5년 동안 계약기간을 보장 받는다. 계약이 끝나 2개월 안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오면 주인이 계약체결을 거부할 수 없다. 만일 이를 어길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은 일정 규모 이하에만(서울은 4억원 이하) 가능했는데, 모든 상가 세입자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바꿨다. 마지막으로 권리금 포함한 임대차 표준계약서 작성을 권장하고, 권리금 분쟁조정위원회 설치해 분쟁 조정토록 했다.

하지만 이 대책을 두고 건물주뿐만 아니라 점포 세입자들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물주들은 자신의 건물에 신규 세입자가 들어올 때 기존 세입자의 입김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다. 건물주는 지금까지 자신의 건물에 입주할 업종과 세입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기존 임차인이 소개한 세입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임차인 선정 기준을 두고 있는 건물주도 적지 않은데, 앞으론 이런 자율성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2년 상가임대차 보호법이 도입될 당시처럼 임대료가 크게 올라갈 거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권리금 규모가 투명하게 드러나면 상권이 좋은 곳에 건물을 보유한 사람은 임대료를 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개정안에 따라 5년 동안 임대료를 쉽게 올릴 수 없어, 5년치 임대료 상승분이 한꺼번에 올라갈 공산도 있다. 최근 상한가를 올리고 있는 상가시장도 혼란에 빠졌다. 점포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하는 내용의 ‘자영업자 종합대책’이 발표된 후 ‘상가에 반드시 투자를 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한 상가 건물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공개되자 권리금이 상가 투자의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오랜 분쟁’ 권리금 해결책 없나

이처럼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면 부작용과 역기능을 낳을 수 있다. 현 정부에서 쏟아낸 많은 정책 중 점포 임차권 권리금 보호방안만은 진보ㆍ시민단체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취지와 방향이 좋다고 해도 촘촘한 입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없고 형평성이 떨어지는 대책으로 전락할 수 있다. 건물주에게 불합리한 처방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벌써 보완점도 속속 나오고 있다. 점포 권리금 법제화 이후 남은 가장 큰 논란거리는 임차 점포가 속한 건물이 재건축ㆍ재개발 될 경우 권리금 보상 장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령 건물주가 재산 증식을 위해 재건축을 시행하면 1억원이 넘는 권리금을 내고 불과 1년을 장사했더라도 빈손으로 쫓겨나야 한다. 2009년 용산참사의 배경이 됐던 용산 재개발의 예를 들면 상가권리금은 전혀 보호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보호 수위가 낮아질 수는 있다 하더라도 재건축이나 재개발 시에도 최소한의 권리금 보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표준계약서 권고도 문제 소지가 있다. 이는 권리금과 관련된 증빙이 별도 계약서 없이 영수증 수수로만 이뤄지고 있어서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안전한 권리금 거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를 통해 권리금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 과세당국의 세금 부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는 증세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권리금은 소득세법에 나와 있는 기타소득의 하나라고 인정을 하고 있다. 게다가 권리금이 적힌 계약서를 공인중개사 거래정보망에 등록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인 만큼 세원 노출의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 이번 조치를 두고 ‘증세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따라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다운계약 작성 등 편법이 횡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담뱃세 주민세 인상 등으로 증세 논란에 휩싸여 있는 정부로선 충분한 설득이 필요해 보인다.

이밖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기존 세입자가 주선한 새 임차인과 계약하도록 한 것을 두고도 ‘정당한 사유’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건물주가 기존 세입자에게 입주를 원하는 특정 업종을 요구할 수 있다지만, 분쟁의 소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표준계약서, 증세 배경일 수도

그동안 적지 않은 임대인들은 임차인들끼리 주고 받는 권리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모든 임대인이 임차인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는 만큼 권리금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본인들이 받지도 않는 권리금에 대해 배상 책임이 부과된 만큼 임대인들은 높게 형성된 권리금을 임대료로 전가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권리금 보호대책이 알찬 열매를 맺으려면 이처럼 보완해야 할 게 많다. 귀를 열고 보완책을 찾아야 할 때다. 그래야 더 많은 상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 2002cta@naver.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