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약속 ‘무상복지’

▲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게 무상복지 예산 논란을 통해 드러났다.[사진=뉴시스]

무상복지제도가 ‘바람 앞 촛불’ 신세다. 정부의 재정부담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돈만 잡아먹는 사업’으로 비쳐지고 있어서다. 이제는 영유아 무상보육(누리과정)까지 다툼의 대상이 됐다. 이것저것 다 하려면 돈이 없다는 게 이유다. 돈 없는 책임,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박근혜 정부 들어 무상복지 관련 사업들이 본래의 취지를 잃고 산으로 가고 있다. 최근엔 국민적 합의 속에 진행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무상보육은 3~5세 누리과정 지원, 중ㆍ저소득계층 방과후 비용지원 등을 골자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다. 하지만 여당은 최근 무상교육의 책임을 ‘국가’에서 ‘교육청’으로 떠넘겼다. 누리과정 예산을 국고보조가 아닌 지방교육청 부담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상급식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 아니지만 2003년부터 전국 지역 학교로 확대 추진된 사업이다. 쉽게 말해 10년 이상 자리를 잡아온 사업을 재정에 부담된다는 이유로 현 정부가 마음대로 중단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돈이 없다’며 무상복지 관련 사업을 축소ㆍ폐기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던 기초연금은 애초 취지와는 달리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최대 20만원에서 점차 깎이는 구조로 설계했다.

반값등록금 약속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수정했다. 올해 초엔 관련 예산까지 10분의 1로 줄였다. 모든 중증장애인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장애인연금도 방향을 틀었다. 소득 하위 63%에 속하는 중증장애인에게 매달 약 10만원씩 지급되던 조건을 소득 기준 70%로 끌어올리고, 매달 20만원씩 지급하도록 했다. 지급 대상자를 줄여 액수를 늘린 땜빵 조치라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무상복지정책의 수정ㆍ폐기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느냐다. 무상복지를 실천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선 증세增稅가 불가피하다는 건 여야를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나왔던 지적이다. MB(이명박) 정부 당시 줄였던 상속세ㆍ법인세ㆍ종합부동산세 등을 원상태로 되돌리고 소득수준에 비례한 직접세를 올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대안도 이미 나와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만을 외쳤다. 현재의 예산부족은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무상복지 제도들이 기로에 서 있는 건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한 정부 책임”이라며 “지금이라도 ‘증세 없는 복지’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세 없는 복지 외치다…

탄탄한 예산이 없는 무상복지제도들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정부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지자체와 교육청에,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에 떠넘겼다. 반값등록금은 장학금에 맡겼으며 장애인연금은 기존 수급자에게서 뺏어다 줬다. 무상복지의 수정ㆍ폐기가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할 때다. 이러다간 무상복지는 무상복지대로, 예산은 예산대로 무너질지 모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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