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잡스’ 김동순 SWC 대표

직원들의 입김에 밀려 CEO에서 해임됐다. ‘성장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건 게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CEO가 해임된 직후 회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렇게 8년, 실적은 5분의 1로 줄었고, 직원들은 다시 CEO를 컴백시켰다.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화려하게 컴백한 스티브 잡스의 일화를 쏙 빼닮았다. 옛 삼성시계 SWC의 김동순 대표 이야기다.

▲ 김동순 SWC 대표는 8년 전 SWC의 CEO를 맡았다가 해임됐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다시 영입됐다.[사진=지정훈 기자]
애플의 전설이 된 스티브 잡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낸 혁신적인 개발자’로 통한다. 그래서 창조와 혁신을 얘기할 때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잡스의 매력은 개발자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매력까지 겸비하고 있다. 물건을 잘 만들어도 잘 팔지 못하면 그 물건은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잡스는 잘 만든 물건을 잘 팔기까지 했다. 애플 이사회가 위기의 순간 ‘고집불통’ 잡스를 다시 찾을 정도로 그의 ‘파는 능력’은 탁월했다. [※ 참고: 1983년 취임한 존 스컬리 CEO와 불화를 거듭한 끝에 애플에서 쫓 겨난(1985년) 잡스는 1997년 애플이 위기에 빠지자 화려하게 컴백했다. 잡스를 잘랐던 애플 이사회가 다시 잡스를 불러들인 것이다.] 이 일화는 수많은 CEO가 잡스를 닮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다.여기 잡스와 비슷한 부활을 꿈꾸는 CEO가 있다. 김동순(49) SWC(옛 삼성시계) 대표다.

SWC는 1983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시계’로 출발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지상파 9시 뉴스의 시보(시간을 알려주는 광고)를 맡을 정도로 유망한 회사였다. 일본 세이코, 스위스 론진과 제휴를 맺어 기술력도 탁월했다. 1991년 그룹 공채로 입사한 김동순 대표의 첫 발령지는 바로 삼성시계였다.

하지만 다른 기업처럼 삼성시계도 1997년 외환위기 폭풍에 휘말렸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되는 설움을 맛본 것이다. 믿었던 그룹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실망감이 컸지만 임직원들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손으로 회사를 키워보자”며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낙동강 오리알’이 됐던 삼성시계는 ‘종업원 지주제’로 전환했고, 사명도 SWC로 바꿨다. 김 대표가 CEO에 오른 건 그로부터 5년 뒤인 2003년이다. 해외영업 베테랑이던 김 대표는 수출비중이 높은 삼성시계의 수장으로 낙점 받았다. 매사에 꼼꼼한 경영스타일과 탄탄한 영업력은 회사를 키우는 데 흠이 없었다. 과장 직급에서 단숨에 CEO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경영스타일은 회사가 ‘안정화’에 접어들자 환영받지 못했다. 좀 더 편안한 직장생활을 바랐던 직원들은 2006년 그를 해임했다. ‘종업원 지주제’의 부정적 영향이었지만 그는 어쩔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SWC의 문제는 그가 해임된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잡스를 자른 애플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 것처럼 SWC 역시 ‘죽음의 바다’로 조금씩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의 역할을 뒤늦게 깨달은 직원들은 위기를 감지했고, 2014년 8월 김 대표를 다시 CEO로 영입했다. 한국판 ‘잡스의 귀환’으로, 지분 51%까지 약속받았다.

외환위기 시절 삼성계열사서 분리

8년 만에 컴백한 친정은 ‘그 옛날 그 회사’가 아니었다. 김 대표는 “매출은 8년 전과 비교해 5분의 1, 수출 판로는 3분의 1로 줄었고, 직원 수는 반토막이 났다”며 “그런데도 SWC의 비전과 경영이념은 이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의 뒤를 이은 CEO 역시 ‘종업원의 입김’에 막혀 아무것도 못했다는 방증이었다. 김 대표가 CEO 컴백의 조건으로 51%의 지분을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SWC의 주종목인 ‘시계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시계 한두개쯤 없는 사람은 거의 없고, 계절별ㆍ요일별 시계를 따로 구매하는 이들도 있다”며 “수요가 풍부한 시장이어서 패션 욕구를 충족할 만한 디자인만 있으면 공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시계시장은 120조원, 국내 시계시장은 2조3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국내 시계 수입 규모는 2009년 약 3억 달러(약 3300억원)에서 2013년 6억 달러(약 6600억원) 수준으로 2배 가까이 커졌다.

이렇게 큰 시계시장에서 김 대표는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경쟁업체보다 브랜드 수가 많은 SWC의 강점을 살린 전략이다. SWC의 브랜드는 1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스위스 정통시계 브랜드 하스앤씨(HAAS & CIE), 스페인 토털패션 브랜드 엑시토가(EXITOGAR), 스포츠시계 브랜드 뷰렛(BURETT), 전자시계 중심 브랜드인 카파(KAPPA), 캐주얼 브랜드 디펙토리(D’FACTORY), 중동시장을 꽉 잡고 있는 SWC 등 다양하다.

문제는 이 브랜드들을 지금껏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삼성시계 시절 스위스 명품 브랜드 하스앤씨를 국내에 들여오면서 쿼츠(건전지 시계)시계로 바꾼 것은 SWC의 대표적 패착이다. “하스앤씨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슬림 기계식 시계제작 기술을 가진 곳이었는데, 쿼츠시계를 만들어 팔면서 평범한 브랜드로 전락했다. 하스앤씨처럼 브랜드 관리를 잘못한 건 수없이 많다. 스페인 토털패션 브랜드인 엑시토가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각 브랜드에 어울리는 정체성을 하루빨리 확립해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게 최대의 과제다. 하스앤씨는 스위스의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장치) 핵심기술 보유업체와 손을 잡고, 다시 기계식 시계 브랜드로 키울 계획으로 구체적인 제품개발을 진행 중이다.”

깨끗한 몸에 헌 옷을 걸칠 수는 없는 일. 업그레이드 된 브랜드에 어울리는 디자인 개발도 한창이다. 지역마다 잘 팔릴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해 ‘재고’를 남기지 않겠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김 대표는 “시계산업이 패션산업인 만큼 디자인은 얼마든지 공유와 변형이 가능하다”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전체 혹은 로컬 시장에서 인기를 끌 수 있는 디자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디자인을 발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승부

그렇다고 그의 앞길이 편편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은 여전히 해외 업체들의 경쟁장이 된 지 오래고, 세계에는 고만고만한 시계업체가 넘쳐난다. 탁월한 기술력과 눈에 띄는 디자인이 없다면 승부를 걸기 어렵다. 매출 부진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된 것도 고민거리다. 땅에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들의 손으로 내보낸 CEO를 고개를 숙여가면서까지 영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성격은 그런 걸 가만히 앉아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SWC에 다시 온 만큼 멋지게 회사를 부활시키는데 인생을 걸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존심을 걸었고, 승부는 벌써 시작됐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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