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금융사기 왜 당할까

▲ 금융사기가 특정인의 문제로 인식되면 정부와 금융당국, 수사기관의 범죄 예방조치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등 금융사기에 당하면 사람들은 부끄러운 일로 치부한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얼마나 모르길래 당했느냐는 핀잔도 받는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넋을 놓고 있지 않아도 금융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금융사기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범죄다.

금융사기가 끊이지 않는다. 줄기는커녕 매년 증가세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물론 언론까지 가세해 사기유형에 따른 대처법을 알리지만 피해자는 계속 나온다. “금융사기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들이 당하는 것”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대체 왜 당할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변종수법이 워낙 많다. 그래서 피해자는 사기인지조차 모른 체 당한다. 누구나 범죄에 노출돼 있고, 여건에 따라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이유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금융사기 피해의 원인을 비정상적인 사회현상에 연결해 설명한다. 개인정보 유출, 공적제도 불신,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낮은 금융사기 범죄자 검거율 등이 금융사기 피해자를 늘린다는 거다.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심리학) 교수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범죄는 금융사기로 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유괴범은 개인정보를 구해 아이를 유괴하지 않고도 돈을 요구할 수 있다. ‘몰라서’ 금융사기를 당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이수정 교수는 “피해자가 없으면 범죄도 없다”면서도 “하지만 금융사기 범죄가 먹혀들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 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유괴범은 돈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검거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인터넷 뱅킹이 발달하면서 범죄는 훨씬 쉬워지고 검거는 어려워졌다. 이 교수가 지적한 ‘금융사기가 용이한 환경’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범죄 유형이 들통 나면 범죄자는 더욱 시의적절한 수법을 개발한다”며 “최근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은 금융사기 범죄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말대로 봄철이 되면 입학식에 관한 보이스피싱이, 명절이면 우편물 배달 사기가 등장한다. 가족관계나 생활패턴을 분석한 금융사기도 늘고 있다는 얘기다.

 
황상민 연세대(심리학) 교수는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불안정한 사회분위기, 공적제도에 대한 불신 등 자기가 속한 사회와 시스템을 믿지 못할수록 금융사기 노출 빈도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쉽게 돈을 벌려는 다양한 범죄가 성행한다는 거다. 황상민 교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넋을 놓고 있다가 금융사기를 당한다고 여긴다”며 “하지만 특정한 심리상태 때문에 피해를 입는 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나는 똑똑하니까 그런 금융사기에 당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불행은 찾아오기 마련이다”며 “금융사기를 조심하라고 강조하는 금융당국이나 수사기관의 근무자들도 충분히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금융사기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사회 여건부터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멀쩡한 당신도 금융사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 아니던가. 정부의 ‘속지 말라’는 구호가 한낱 공염불에 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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