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투자자문의 바른투자 | 국내차 위기

▲ 한국을 대표 자동차 기업은 현대차‧기아차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진=뉴시스]

수입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상승하면서 현대차ㆍ기아차가 부진을 겪고 있다. 고가였던 수입차의 가격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진의 진짜 이유가 현대차ㆍ기아차에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높은 마진을 얻으려는 전략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는 거다. 안방호랑이의 이빨이 빠진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기업이 얘기하는 장수의 ‘비결’은 겸손이다. 겸손의 미덕이 기업에도 적용된다. 기업의 겸손이란 사람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고객을 의사결정의 최우선에 두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최고의 상품을 개발하는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 사세를 확장하던 기업의 성장이 둔화될 경우, 일반적으로 업황 부진을 첫번째 이유로 생각한다. 하지만 원인을 찾아보면 결국 경영진과 직원의 마음가짐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수록 경쟁사를 경계하는 심리가 느슨해지고, 기업의 이익이 증가할수록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도 예전만 못해진다. 또한 고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눈앞의 이익을 좇는 일이 많아지고 변화와 혁신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려고 한다. 모두 기업의 겸손함이 변질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서면 경영진은 개인적 판단만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근로자 역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게다가 기업을 자녀에게 상속하기 위해 무리하게 의사 결정을 하는 일도 있다. 장수 기업을 얘기하는 이유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 대한 고민에 있다. 과거 한국에는 현대차ㆍ기아차ㆍ대우차ㆍ쌍용차ㆍ삼성차 등 많은 자동차 업체가 있었다. 짧은 완성차 역사에 비해 많은 꽤 많은 기업이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점유율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대표 자동차 기업은 현대차ㆍ기아차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많던 자동차 기업 중 몇몇은 오너의 의사결정과 외환위기 과정에서 그룹이 해체돼 사라졌고, 일부는 경영 부진에 따른 대량 정리해고 등으로 노사간의 상처가 깊어졌다. 이에 비하면 현대차ㆍ기아차 그룹은 고질적인 노사문제와 경영 갈등ㆍ정치적 회오리 속에서도 매우 안정적인 성장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현대차ㆍ기아차의 연간 생산 능력은 800만대. 생산량 기준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이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ㆍ미국ㆍ브라질ㆍ러시아 등에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ㆍ기아차가 짧은 시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정부의 지원과 함께 우리나라 국민이 현대차ㆍ기아차를 기꺼이 구매해 줬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내에서의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해외 투자를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힘든 시기를 겪을 때도 현대차ㆍ기아차는 높은 국내 점유율을 기반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ㆍ기아차가 보여주는 모습은 한국의 대표기업이라는 위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주가는 5년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현대차ㆍ기아차 부진의 이유로 경쟁 국가인 일본의 ‘엔저’를 꼽는다. 물론 수출기업에 있어 경쟁국과의 환율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외부가 아닌 국내에 있다. 수입차의 국내 점유율 확대가 그것이다. 2005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의 수입차 점유율은 2~3%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수입차의 국내 점유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12.1%, 2014년 15.4%에 이어 올 상반기에는 17.5%까지 확대됐다. 과거에는 수입차의 가격이 국산차에 비해 크게 비쌌고 사회적인 인식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정된 애프터서비스(AS)망과 높은 공임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수입차 가격이 하락하고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게다가 영업망과 AS센터 등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수입차의 가격 매력ㆍAS 편의성 등이 예전과 달리 크게 개선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높아지는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

하지만 수입차의 판매증가를 단순히 가격 인하의 영향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가격차가 줄었지만 여전히 수입차의 가격은 동급의 배기량과 세그먼트(차량 크기ㆍ용도ㆍ가격에 따른 분류방법)를 비교했을 때 국산차에 비해 비싸다. 실제로 독일산 소형차를 살 돈으로 국내산 중형차를 살 수 있다. AS 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소비 면에서도 국산차가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 결국 수입차의 판매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현대차ㆍ기아차에 있다. 대우차 등 국내 경쟁사가 사라지면서 상승한 시장 점유율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 수입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해외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는 전략을 사용했다. 실제로 현대차ㆍ기아차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게다가 소형차보다는 마진이 높은 중형차 판매에 열을 올렸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도 점유율을 떨어뜨린 요인이다. 다양한 수입차를 접하게 되면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현대차ㆍ기아차의 모델 라인업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또한 차량의 선택 기준이 차의 크기와 배기량에서 연비와 브랜드 파워로 바뀌었지만 현대차ㆍ기아차는 이 두가지 조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배기량 축소와 경량화에 나서고 있다. 또한 출력과 효율을 강화해 환경친화적이면서도 상품성이 높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자동차는 디젤 라인업과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의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그러나 현대차ㆍ기아차는 여전히 대형ㆍ고배기량 차량 판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이미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중국 로컬 완성차 제조 기업의 성장세는 과거 우리의 성장속도를 능가하고 있다.

우리의 주요 목표 시장인 중국이 공급자로 나선 것이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완성차는 ‘더 좋은 자동차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이 소비자는 물론 주주에게 환영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ㆍ기아차의 경우 최근 한전부지 확보에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투자를 결정했고, 노사 문제 등 부정적인 이슈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이슈는 ‘좋은 차’ 개발이라는 목표와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지금의 위기가 더 걱정스러운 이유는 과거의 위기와는 모습이 달라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겪을 때도 국민은 현대차ㆍ기아차를 버리지 않았다. 함께 힘들어했고 함께 극복해 냈다. 지금은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

경영진ㆍ근로자 모두 초심 찾아야


현대차ㆍ기아차가 우리나라 대표기업으로 재기하기 위해서는 경영진부터 근로자까지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바로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쟁사의 선전을 인정하고, 경영 전략을 고객의 눈높이에 둔다면 지금의 위기를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누구나 사고 싶고 타고 싶은 차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는 달성했다. 이제는 디자인과 품질의 혁신, 기술 혁신을 통한 가격 메리트를 만들어 내야 한다. 현대차ㆍ기아차의 위기는 관련 부품회사는 물론 철강 등 유관산업을 넘어서 한국의 위기가 될 수 있다. 투자자와 국내 소비자의 지적과 쓴소리가 부쩍 잦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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