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워야 할 선진국 회생 절차

▲ GM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 보호 신청을 한 뒤 법원의 관리 아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현재는 미국 자동차 시장 부흥에 힘입어 부활에 성공했다.[사진=뉴시스]
미국에서 한 기업이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고 치자.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무엇보다 미국은 기업의 회생만 담당하는 법관이 따로 있다. 경영을 기존 경영진에 맡기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갈아 치운다. 금융위기 이후 파산 위기에 직면한 기업은 많지만 ‘좀비기업’이 사회문제로 비화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회생절차’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업 환경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회생 절차는 단순 민사사건과 달리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를 합리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은 구조조정 시장 활성화와 각종 제도를 통해 ‘좀비기업’의 확산을 막고 있었다. 해외에선 좀비기업을 어떻게 관리할까. 김성용 성균관대(법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기업 회생이 활발한 국가는.
미국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너진 GM과 크라이슬러의 부활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 등장하는 통합 도산법의 제정 모델도 미국법이라는 것이다. 양국 모두 몇 차례 개정 절차를 거쳤지만 여전히 닮아 있다.”

어떤 점이 닮았는가.
DIP(Debtor in Possessionㆍ기존 관리인 유지) 제도다. 미국에서는 이 제도로 1978년부터 관리인을 따로 선임하지 않고 기업 경영진이 그대로 재산관리처분권을 행사하게 했다. 기업의 운명이 오락가락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경영자를 교체하기보다는 회사 상황을 잘 아는 기존 경영진이 사업을 계속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 회생 절차에만 말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대체로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 반면에 미국은 채권자협의회의 권한으로 기존의 오너를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다. 무능력하거나 모럴해저드에 빠진 기존의 오너들이 대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DIP 제도로 경영권을 보장 받는 오너는 절반 수준이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는 구조조정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부실자산을 매입해 구조조정 한 뒤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벌처펀드 시장을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신규 자금 차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을 활용한 워크아웃 절차로는 자금 확보가 가능하다. 이 제도 역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업회생 제도다.

기촉법과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없나.
선진국에서는 없다고 봐야 한다. 기촉법의 바탕은 영국에서 시행된 런던 어프로치(London approach)다. 문제는 이 모델이 1970년대에 시행됐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경기 불황으로 기업이 줄도산 위기에 처하자 기업과 금융기관 간의 협상만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지금 주요 선진국의 자금 흐름은 어떤가. 외국의 금융기관과 투자회사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자국의 금융기관에만 한정된 기촉법이 불필요한 이유다. 또한 기촉법이 법원의 관리 밖에서 진행된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기업회생 절차를 법적 관리 아래에 두고 있다.

선진국에 없는 기촉법의 한계

법원이 구조조정을 주도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옳은 지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독립된 파산 법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역시 일반 법원에 전담재판부를 뒀다. 우리나라도 파산 전문 재판부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관이 장기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DIP 제도에 따라 기존의 경영인이 경영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과 관리의 권한은 법원에 있다. 법관도 기업 경영의 지식을 갖춰야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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