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 승계의 지혜 ❶

▲ 누르하치의 후계자는 여덟번째 아들이었다. 병자호란 때 인조를 무릎 꿇린 장본인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나라를 세웠든 기업을 설립했든 ‘창업자’의 가장 큰 고민은 승계다. 누구에게 이 나라를 또는 이 기업을 물려주느냐가 창업자의 최대 숙제라는 거다. 가문에게 물려주든 능력자에게 물려주든 ‘승계의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면 백년대계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롯데가家 ‘형제의 난’을 계기로 승계의 지혜를 하나씩 배워보자. 그 첫 번째 편이다.

롯데그룹은 지금 점입가경 상태다.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이 연로한 틈을 타고 형제간 볼썽사나운 권력다툼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보유주식의 표대결은 기본.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내 헐뜯고, 중상모략을 펼치며, 법정 고발도 고사하는 등 골육상쟁을 방불케 한다. 

필자(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김우일)는 이런 권력 쟁탈전의 이유가 창업자에게 있다고 본다. 후계자를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사욕私慾과 자식 가운데 적장자에게 물려줘야 된다는 서열序列사상이 창업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식에게도 물론 문제가 있다. 기업의 장래보단 ‘용상’을 차지하는 데만 혈안이 되기 십상이라서다.

이런 자식간 다툼은 옛날에도 똑같았다. 서기 626년 당나라를 세운 이연의 둘째 아들 세민은 태자인 형과 권력쟁탈전을 벌인 끝에 형제들을 죽이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후백제의 창업자 견훤의 장자인 신검은 아버지가 넷째 아들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둥생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다.

조선 왕국의 창업자인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태종은 동생인 세자 방석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태종 자신도 세자이자 장자인 양녕대군을 제치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도 장자인 이맹희씨가 아닌 셋째인 이건희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넘겼다. 고금古今의 이런 예를 보면, 뜻밖의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력쟁탈전은 인류의 역사를 후퇴시키기도 하지만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성군 세종대왕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그렇다면 권력승계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중국 명나라 말기, 수십만명에 불과한 여진족이 1억명 넘는 중국 한족을 멸하고 청나라를 세웠다. 여기엔 여진족의 영웅 ‘누르하치’의 지혜로운 권력승계 법칙이 숨어 있다.

누르하치에겐 10명의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장자에게 후계자 자리를 주지 않았다. 여러 부족장과 1년에 걸친 토론 끝에 화합ㆍ단결용맹성포용력이해력미래비전을 갖춘 여덟 번째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다. 이 아들이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조선 인조의 무릎을 꿇린 홍타이지 청태종이다. 청태종은 자신을 낙점한 여러 부족장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합리적인 정치를 펼쳤다.

무엇보다 명나라에서 투항해온 한족을 극진히 대접해 등용하고 여기서 얻어낸 선진기술을 수용해 중국을 통일하는 데 사용했다. 통치세력인 만주족의 기를 세워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만주족과 한족의 경계를 뚜렷하게 했고, 공문서에는 만주어를 먼저 표기토록 했다. 만주족의 실질적 통치력을 굳건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현실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치民治의 대성공이었던 거다. <다음호에 계속>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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