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24)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제2편

▲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은 “어느 사회든 지속가능하려면 경쟁을 제한해야 한다”면서 “제한은 오롯이 구성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한비야(58)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은 “정글의 법칙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사랑과 배려의 법칙도 작동한다”고 말했다. 이 사랑의 법칙을 모르면 세상살이에 균형을 잃을 수 있다고 청춘들에게 충고했다. “국가보다 대륙을 먼저 보고 지구촌 70억 인구를 한번 친구로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

Q 멘티가 멘토에게

고등학교에 들어와 친구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는 말할 것도 없고 졸업하고 나면 직업을 구하려 또 박터지게 경쟁을 해야겠지요? 직장에서는 승진 경쟁, 노후엔 자식 스펙 경쟁…. 인생의 경쟁은 언제 끝나나요? 경쟁 없이는 살 수 없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세상살이에 적용되는 법칙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글의 법칙’이죠. 먼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정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룰이죠.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없는 사람이 월드비전 같은 구호기구를 통해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매달 3만원씩 보냅니다. 어른들이 돈만 안다고 하는 우리 아이들이 엄마에게서 받은 용돈을 모아 내놓아요. 같은 반 친구도 경쟁자라고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이에요. 이런 후원회원이 월드비전에만 50만명가량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엔 정글의 법칙뿐 아니라 ‘사랑과 은혜의 법칙’도 작동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룰이죠.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다엔 초보자와 힘없는 해녀들의 구역이 따로 있습니다. 젊은 해녀들은 그 구역에 안 들어가요. 초보자나 힘없는 해녀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해녀 공동체의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죠. 경쟁사회이지만 경쟁하지 않는 지대를 남겨둔 거예요.

 
결국은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베면 작은 나무를 한 그루 심도록 돼 있는 나라도 있어요. 힘이 센 사람이든 노약자든 똑같이 지켜야 하는 그 나라의 오랜 불문율이죠. 그래야 숲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든 지속가능하려면 이렇게 경쟁을 제한해야 합니다. 경쟁에 대한 이런 제한은 오롯이 구성원들의 몫이죠. 나만 챙기려 들면 인생이 살벌한 제로섬 게임이 됩니다.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더라도 대륙을 먼저 보는 습관을 들이세요. 큰 그림부터 봐야 안목이 생기고 지평이 넓어집니다. 지구촌이 겪는 문제를 우리 집 일로 받아들일 수 있죠. 70억 인구가 여러분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새가 양 날개로 날고 자전거가 두 바퀴로 나아가듯이 세상은 두 법칙에 의해 움직입니다. 정글의 법칙과 사랑의 법칙. 정글 법칙에 충실해 성적은 우수하지만 거리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무거운 짐 든 할머니를 외면한다면 한쪽 날개로만 날아가는 새와 같죠. 그런 비행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요?

정글의 법칙 준수에 보상이 주어지듯 사랑과 은혜의 법칙을 지킬 때도 보상이 따릅니다. 얼마 전 시내에서 친구들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나를 태우기 위해 친구가 횡단보도 건너편 길가에 정차하고 있었죠.

그런데 시골에서 올라오신 듯한 한 할머니가 짐을 들고 내 옆에 서 있는 거예요. 그 짐을 들어드리느라 얼마간 지체했고 그 바람에 비싼 저녁밥을 쏴야 했지만 그날 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도울까 말까 망설여질 땐 도우세요. 그게 경쟁사회에서 좀처럼 자라나기 힘든 나머지 한쪽 날개를 제대로 발육시켜 균형 잡힌 비행을 하는 비결입니다.

도울 수 있을 때 망설이지 말라

사랑과 은혜의 법칙을 따르면 만족감과 자긍심을 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두 손 중 한 손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세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손 내미세요. 이렇게 평소에 스스로 훈련해야 남을 돕는 근육이 발달합니다. ‘나중에 돈 생기면 돕지’, ‘내가 힘이 있어야 돕지’ 하는 사람은 도무지 남을 돕지 못합니다. 나중에 언제, 힘 생기면 언제 도울지 그 기점을 좀처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작은 도움을 줄 줄 알아야 큰 도움도 줄 수 있습니다. 도울 수 있을 때, 도울 일 있을 때 망설이지 마세요.

경쟁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지만 정글의 법칙에서 벗어나 경쟁 상대를 사랑할 때도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경쟁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남과의 경쟁을 나와의 싸움으로 대체할 수도 있어요. 운전면허시험처럼 단지 합격ㆍ불합격만 가르는 경쟁도 있죠.

동갑내기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처럼 선의의 경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이란 서로를 성장시키는 라이벌 간의 경쟁입니다. 나는 그런 경쟁 상대가 없었습니다. 세계일주를 할 때도, 긴급구호 활동가로 일할 때도, UN에 일하러 갔을 때도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재난 대비를 중심으로 한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의 연계점’을 주제로 논문을 구상하고 있는 지금도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기에 나는 외롭습니다. 자극을 주고받는 경쟁자가 있다는 건 그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경쟁 없이는 살 수 없나고요? 경쟁을 피하면 루저가 되냐고요? 나는 대입에 실패했고 서른에 첫 직장을 잡았지만 한번도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차라리 나처럼 시대를 반 발짝만 앞서가 보는 건 어때요? 내가 만일 오지 여행을 20대 초반에 떠났다면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을지 몰라요. 내가 6년에 걸친 세계 배낭여행을 떠난 30대 초반은 다른 사람들도 배낭여행을 시작했을 때였기에 관심을 끌었습니다. 운이 좋았고 어떻게 보면 시대와 궁합이 맞았다고도 할 수 있죠.

전적으로 운이 좋았다고만 할 수 없는 건 어려서부터 세계지도를 보면서 세계일주에 대한 꿈을 키웠고, 아버지와 산에 다니면서 자연과 가까워졌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면서 생각이 깊어졌죠. 큰 그림을 보려면 일기를 쓰면 됩니다. 일기를 쓰면 힐링도 됩니다. 일기장에 손글씨로 자신의 속마음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 새 치유가 됩니다.

경쟁에 지쳐 괴롭고 힘들 때, 분하고 억울할 때,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깊을 때 길게 일기를 쓰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정신도 맑아집니다. 기분도 좋아져요. ‘자가 힐링’이죠. 새해엔 일기를 써 보세요. 일단 시작하세요. 며칠 쓰다 말더라도 밑질 거 없어요. ‘가다가 중지하더라도 간 만큼은 이익’이거든요!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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