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28) 유진룡 국민대 석좌교수 편

유진룡(59) 교수는 정통 문화 관료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배신을 당했다고 느낀다면 배신감을 안겨준 상대방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먼저 따져보라고 말했다. 남들이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사람들을 신뢰하라고 충고했다.

▲ 유진룡 국민대 석좌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시스템이나 정부 지원금 제도는 신뢰 수준이 낮기 때문에 고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살아오면서 큰 배신을 당한 적 있나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했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유감스럽게도 크게 배신을 당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글쎄, 그냥 그러려니 했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타고난 성정이 그래요.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한번은 담임선생님에게 내가 하지도 않은 나쁜 짓을 했다고 일러바친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우리가 서로 친한 사이라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참 많이 맞았어요. 그 시절엔 체벌이 흔했어요. 억울했죠. 하지만 별 수 없었어요. 딱히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를 무고誣告한 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거예요. 그렇게 크면서 차츰 세상을 알아가는 거죠.

나는 그보다 배신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행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신뢰를 어기고 배신을 했으니 응징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상도 그럴까요? 가령 기업주의 신뢰를 저버리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정당한 내부고발은 배신일까요?

굳이 배신이라고 한다면 ‘바람직한’ 배신 아닐까요? 사회악적인 존재인 조직폭력배가 동료 조폭더러 자신을 배신했다고 한다면 그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만일 그가 동료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개과천선했다면 그래도 배신자로 규정돼야 할까요? 사회적으로 격려 받아야 할 배신자 아닌가요?

배신이란 스스로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믿음을 훼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과연 옳은 건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나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봅니다. 증세 없이 복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과는 말하자면 생각이 다른 거죠. 그렇게 믿는 사람이 나처럼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자기 편이 아니라고 해서 배신당했다고 하는 게 과연 옳을까요?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배신자로 규정하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신뢰를 보낸 사람의 생각이 옳지 않다면 그의 뜻과 말을 따르지 않는 게 도리어 옳은 거죠. 배신을 했느냐 아니냐보다 옳으냐 그르냐 하는 판단이 선행해야 합니다.

당사자일지라도, 배신했다고 표현하지 말고 배신했다는 남의 말에 얽매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더라도 배신 운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치를 떨 만큼 상대방이 정당한 믿음을 저버린 게 아니라면 배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도 말자고요.

무엇보다 남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생각이 저마다 다른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죠. 또 남의 생각을 비판하려면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 중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 있어요.

특정인에게 배신을 당했더라도 우리는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설사 거짓말을 했더라도 거짓으로 응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가족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돼요.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솔직히 털어놓아야 합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거짓말, 국익을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면 거짓말은 하지 말아요.

사실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이제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누군가가 과거에 한 행동은 물론 말과 생각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네크워킹이 긴밀해져 지금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사회에서 생존할 수가 없어요.

사회 구성원이 서로 믿지 못하면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경제활동은 대부분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사회적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여 줌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적 자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의 신뢰 수준이 낮으면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탈세처럼 사회적 믿음을 깨뜨리는 행동을 했을 때 가혹한 처벌을 받습니다. 신용불량자가 돼 경제적으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죠. 우리나라는 경제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그렇게 무겁지 않습니다. 거액을 횡령하더라도 추징금 내고서 감옥에 갔다 오면 남은 돈으로 평생 먹고살 수 있죠.

미국의 아마존닷컴에서 물건을 사려면 신용카드 번호만 입력하면 됩니다. 반면 국내에서 전자상거래를 할 땐 일종의 사이버 거래용 인감증명서인 공인인증서가 필요합니다. 과정이 복잡하고 본인 인증에 시간이 많이 걸려요. 신뢰의 속도가 느린 거죠. 이렇듯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일의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시스템, 정부 지원금 제도도 신뢰 수준이 낮아 고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높아질수록 아랫사람을 믿어야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나요? 야망이 있다면 더더욱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나아가 먼저 사람들에게 신뢰를 보내야 합니다. 회사의 CEO라면 구성원들이 정직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국민을 믿어야 합니다.

믿기 어려운 사람도 물론 있죠.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나 나름의 기준은 네 가지입니다. 겸손한가? 정직한가? 이기적이기보다 이타利他적인가? 약속을 잘 지키는가?

착시錯視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막상 겸손을 가장한 사기꾼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사기는 속아주는 게 예의입니다. 농담이고요. 사기꾼이 너무 능해 속을 수밖에 없다면 별 수 있나요. 속아야죠. 그냥 당하고 손해도 좀 보고 살아요.

사회의 신뢰 수준을 높이려면 반대로 구성원들이 이 네 가지 덕목을 잘 지켜야 합니다. 난 선의의 거짓말도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중환자에게도 병명을 알려줘야 한다고 봅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건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은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습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