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06

이순신은 13척의 전함대에 출전명령을 내렸다. 13척의 함대가 명량목으로 진출했을 때 적의 함대는 쏜살같이 명량목으로 밀려 들어왔다. 적선의 수는 330여척이었다. 바다를 완전히 덮을 정도로 많은 수였다. 후군도 160척이나 되었다. 적의 세력은 참으로 위무당당하였다. 이순신의 제장들은 겁을 먹었다.

 
난선의 백성들은 이름난 거부들이었다. 변홍주卞弘洲, 백남진白南振, 문영개文英凱, 마하수馬河秀, 정명설丁鳴說, 김성원金聲遠, 정운희丁運凞, 하응구河應龜, 유기룡柳起龍, 김굉金䡏 , 김성업金成業, 김덕린金德麟, 송상문宋象文, 이희만李喜萬의 무리 만석꾼들이었다. 이순신이 군사들의 궁핍한 삶을 걱정하자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감은 적군만을 토벌하시오. 소인네들은 겨울옷과 양곡과 생선을 부담하겠소.”

그 무렵, 적의 척후선 2척이 산그늘에 숨어 감보도甘甫島(전남 진도군 벽파항 인근의 섬, 현재 이름은 감부도)까지 들어왔다. 이순신 함대의 허실을 정찰하기 위해 온 듯했다. 군사들은 기운을 내어 장편전을 쏘면서 배를 저었다. 그러자 적은 달아나 버렸다.

14일에는 군관 임준영이 해남 방면으로 육지를 정찰하고 돌아와 보고했다. “적선 200여척 가운데 정예 50여척이 어란진을 왔다 갔다 합니다.” 적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던 김해사람 중걸仲乞이 도망을 나와 고했다. “조선 수군이 불과 10여척인데도 자기네 병선을 여러 번 격파해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10배의 병력으로 일거에 이순신의 함대를 분쇄하여 전멸시킨 뒤 한강으로 올라갈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순신은 그 말을 다 믿지는 아니하였다. 하지만 적의 주력함대가 공격해 올 것으로 예측한 이순신은 “장차 큰 싸움이 일어날 것이니 백성들은 다 안전지대로 피난하라”고 명하였다.

13척 전함대에 출전명령 내려

9월 15일 이순신은 전함대 13척을 몰고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명량에 여러 날을 묵으며 철삭으로 해협을 막은 공사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 적군의 위세에 놀란 조선 함대는 전진하질 못했다. 오직 이순신이 탄 대장선만 적선을 제대로 맞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순신은 병법의 한두구절을 들어 훈시했다. “병법에 필사즉생하고 필생즉사라 하였으니 죽으려고 결심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일부당경一夫當逕하면 족구천부足懼千夫라 하였으니 한 장사가 죽을 마음을 먹고 길을 막으면 족히 1000사람을 두렵게 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처지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사생을 함께하기를 맹세하였으니 이제 나랏일이 이렇게 위급하거든 어찌 한 번 죽기를 아끼랴?”

순신의 훈시를 들은 여러 장수는 일제히 군복 왼편 어깨를 벗고 칼을 들면서 “끓는 물과 타는 불이라 할지라도 피하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이렇게 하기를 세차례. 이순신은 다시 말했다. “적선 수백척이 오늘 밤 달이 서천에 걸릴 때에 산그늘에 숨어 습격하여 올 것이오. 지금까지 여러 번 온 적선은 정탐 또는 척후선이며 선봉선에 지나지 않소. 이번에는 대함대가 올 것이오. 또 적장 마다시馬多時, 다시 말해 관야정영菅野正影은 수전水戰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 하니 이번에는 쌍방의 큰 주력함대가 대충돌할 것이오. 만일 우리 수군이 적군을 물리치지 못하면 적군은 곧 한강으로 올라가 한강 이북을 점령할 것이니, 금번 일전一戰에 나라의 운명이, 우리 13척 병선의 장병 2300여명에게 달린 것이오. 비록 적의 병선이 1000척이며 적군이 10만 대군이라지만 우리가 죽기로 싸운다면 이길 수 있소. 또한 적을 격파할 묘한 계책이 설비되어 있으니 제군은 걱정 말고 장령에만 복종하시오.”

이순신은 전함대 장졸에게 밥ㆍ술고기를 먹이고 “장령이 내릴 때까지 잘 자라”고 명했다. 그 후 피난선들에게 “민선들도 대오를 지어 안익진雁翼陳 형상으로 벌여 있으라”고 명했다. 그리고 이순신은 갑판 위에 꿇어 앉아 하늘에 빌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보름달은 낮같이 밝은데 기러기 떼가 소리를 지르며 남쪽 하늘로부터 떠오는 것이 보였다. 500여척의 적선에 대항할 13척의 우리 병선으로 싸울 이순신은 칼을 어루만지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16일 새벽에 동이 트려 할 때에 노적봉露積峰에서 망을 보던 별망군이 적선이 보인다는 군호를 보냈다. 그 군호는 횃불이었다. 이순신은 “몇 척이나 되더냐?” 하고 침착하게 물었다. 별망군은 “몇 척인지 소인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소. 온 바다를 덮은 것 같소”라고 답했다.

순신은 13척의 전함대에 출전명령을 내렸다. 13척의 함대가 명량목으로 진출했을 때 적의 함대는 쏜살같이 명량목으로 밀려 들어왔다. 적선의 수는 330여척이었다. 바다를 완전히 덮을 정도로 많은 수였다. 후군도 160척이나 되었다. 적의 세력은 참으로 위무당당하였다.

일본군의 총대장 금오수추는 일찌감치 참모총장 흑전효고 등 제장과 여러 계책을 상의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했다. “조선 수군이 한산도를 잃었지만 명장 이순신 군대를 섬멸하지 아니하면 조선의 제해권을 도로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세력이 커지기 전에 격멸하자.”

그래서 협판안치과 관야정영을 각각 총사령관, 부사령으로 삼고 모리민부를 선봉장으로 삼아 병선 500척과 수군 정예 2만인으로 이순신의 함대를 격파하게 하였다. 협판안치는 경력이 많고 지모가 깊은 수군 명장이었다. 관야정영은 무용이 당당한 날랜 장수였다. 그래서인지 이순신의 소수의 병력을 경멸하게 깔보고 사납게 전진했다. 진도 벽파정 아래에 이르러선 북치고 춤추며 난리도 아니었다.

위무당당한 적군에 기 꺾여

이순신의 적은 함대를 본 적의 함대는 위세당당하게 조익진鳥翼陣을 펼쳐 집어삼킬 듯한 모양을 보였다. 이순신의 뒤를 따르던 조선 제장선들은 이를 보고 하나씩 뒤로 물러나갔다. 바로 몇시간 전에 맹세한 약속을 잊은 채 머뭇머뭇 배회하며 회피할 길만 발견하려 했다. 이순신의 대장선에 탄 장졸들도 천하에 유명한 용사들이었지만 많은 적선을 보고는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했다. 이순신은 7척 장검을 빼어 들고 적진을 향하여 배를 젓기를 독려하였다. 이순신의 두 눈에 번갯불이 일어났다. 제장들은 감히 마주보지 못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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