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07

이순신은 자기의 장졸들이 당황하고 겁을 내어 모두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는 것을 돌아보며 또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적선이 1000척이라도 내 배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동요하지 말고 힘껏 싸우라.” 그후 배에 초요기招搖旗를 높이 달아 뒤에 떨어진 제장선들을 불렀다.

제장들이 주춤하자 이순신은 혼자서 당당한 기세를 지으면서 명량목의 우수영 쪽의 한복판을 막고 구름 같은 적선을 향하여 대포를 놓아 싸움을 돋우었다. 그리고 쇠 방패를 많이 세워 적의 비 오듯 하는 철환을 막아냈다. 적선은 점점 접근하여 왔다. 이 형세를 보고 순신의 배 안에 있는 장졸들 중에도 겁 많은 사람은 겁을 먹었다. 노를 젓던 군사들은 팔에 힘이 풀어져 얼빠진 사람 같았다.

순신은 또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적선이 비록 1000척이 오더라도 내 배 하나를 당하지 못하리라. 내가 있는 이상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으니 적진을 어서 헤쳐 들어가자.” 이렇게 노를 재촉했고, 장졸들은 모두 따랐다.

그러면서 순신은 맨 앞에 서서 적장을 향하여 화살을 당겼다. 다른 한편은 각양 대포를 쏘게 하니 순신의 기함 하나에서 발하는 포성소리는 우레와 같았다. 일검으로 능히 100만 장수를 감당하였다. 적의 함대 제장은 놀랐다. 오직 배 한척이 당돌히 앞을 막고 총과 활을 빗발같이 쏟아 붓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다른 조선의 함대는 뒤만 터 놓아서 달아날 길을 열어 놓을 뿐이었다.

이순신은 자기의 장졸들이 당황하고 겁을 내어 모두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는 것을 돌아보며 또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적선이 1000척이라도 내 배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동요하지 말고 힘껏 싸우라.” 그후 배에 초요기招搖旗를 높이 달아 뒤에 떨어진 제장선들을 불렀다.

이보다 먼저 이순신은 중군영기中軍令旗를 달아 중군장의 배를 불렀지만 중군인 미조항첨사 김응함金應?은 이 부름에 응할 용기가 없어 들어오지를 못하였다. 이순신은 뱃머리를 돌려 중군을 베어 효시하여 군법을 세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만약 순신이 뱃머리를 돌리면 뒤에서 있던 배들이 겁을 먹고 달아날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초요기를 단 것이었다.

이때 적선은 순신의 배 한척을 겹겹이 에워싸고, 철환 등을 날렸다. 순신은 철방패를 많이 세워 군사의 몸을 엄호하게 하여 사상자는 극히 적었다. 적은 분명히 이 배가 이순신의 대장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적은 순신의 배에 기어 올라 단병전을 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의 궁술은 정말 무서웠다. 순신의 철궁이 한번 발할 때마다 적장의 죽음은 면할 수 없었다. 기어오르려고 하던 용감한 적장은 순신의 화살을 맞아 바닷물로 떨어졌다.

그의 백발백중하는 활솜씨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게다가 순신의 군관들도 천하에 유명한 장수들이고, 1만명을 감당하는 용사들이어서 당해낼 수가 없었다. 후에 남파 홍우원이 이순신 장군의 궁술을 노래하였다.

그때 종사관인 반곡盤谷 정경달의 시는 다음과 같다.

적의 장졸들은 혼자서 버티고 있는 장수가 이순신인 줄을 잘 안다. 그는 옥포ㆍ당포ㆍ당항포ㆍ한산도ㆍ안골포ㆍ사천ㆍ부산 등등 각처 싸움에서 자기네를 부순 원수다. 일본 장졸들은 반드시 이 원한을 갚아야 했다. 더구나 이 함대의 총사령인 협판안치, 부사령인 관야정영, 선봉장인 모리민부 등은 한산도와 안골포 기타 부산 싸움에서 이순신에게 대패를 당한 쓰라린 경험을 맛본 장수들이었다.

당시에 일본 장수들은 몸이 열 조각이 나더라도 이순신을 생포하여 일본의 수치와 군인의 원한을 갚으려고 이를 갈았다. 그중엔 마다시도 있었다. 그는 뱃머리에 나선 것이 이순신인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부하에게 결사적으로 이순신의 배를 점령하기를 독촉하였다. 적선에 포위된 순신의 운명은 실로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순신은 연기 나는 대포를 연속으로 쏘면서 맹렬하게 싸웠다. 만약 적군이 명량 울돌목을 지나가는 날에는 전라ㆍ충청 양도는 말할 것 없고 서울의 운명까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적을 막다가 화살이 다하고 철환이 다하며 힘까지 다하면 죽음으로써 싸움을 그만두겠다는 다짐을 했다. 실제로 이순신은 명량대첩이 열리기 직전에 조정에 이런 내용의 장계를 보냈다. 육지에서 싸우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는 이유가 적혀 있는 장계였다. 

▲ 조선 수군은 위기에 내몰렸다. 12척으로 적선 1000여척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임진년으로부터 5~6년 동안 적들이 감히 전라ㆍ충청에 바로 쳐들어오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전선이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 사력을 다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 만합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폐하면 적들은 호남을 거쳐 한강에 도달할 것이니, 이것이 신이 걱정하는 바입니다. 전선은 비록 적으나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自壬辰至于五六年間 賊不敢直突於兩湖者 以舟師之扼其路也 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 今若全廢舟師 則是賊之所以爲幸 而由湖右達於漢水 此臣之所恐也 戰船雖寡 微臣不死 則賊不敢侮我矣).”

어찌됐든 초요기를 본 중군장 미조항첨사 김응함은 순신의 배를 향하여 가까이 왔다. 그러나 그는 한편은 용감하지만 한편은 겁도 났다. 군법이 무서웠던 것이었다. 순신은 칼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안위와 김응함을 노려보았다. 안위는 황공무지하여 죽기로 결심하고 배를 저어 적선 속으로 달려들었다. 중군장 김응함의 배도 순신의 배 곁에 왔다. 순신은 칼을 빼어 들어 김응함을 베려 하다가 “지금 적세가 급하니 너는 어서 공을 세워 죄를 속하라”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