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자와 배신자

▲ 정치인이라면 권력의 배신자가 아닌 민초를 위한 반역자가 돼야 한다.[사진=뉴시스]
영화 ‘동주’는 한편의 아름답고 애절한 시詩다. 시를 사랑하는 윤동주와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죽마고우인 송몽규의 갈등이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숨을 거두기 전 윤동주가 취조하던 일본인 형사를 향해 울분을 토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시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 부끄러워, 부끄러워… 서명하지 못 하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하던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총칼 대신 펜으로 식민지 통치에 반역한 진정한 애국자였다.

반역反逆과 배신背信은 혼용해서 쓰는 경향이 있지만 엄연히 다른 말이다. 반역은 기존의 권위에 대한 거부이고, 배신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다. 자신의 삶을 초개와 같이 던져 한 알의 밀알을 꿈꾸는 것이 반역이라면, 배신은 대의보다는 자신의 삶을 우선하는 태도이다. 반역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권력이나 권위를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세이며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정신이다. 반역은 성패와 관계없이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돼 새로운 시대의 막을 올린다.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의 삶은 좌절과 분노로 이어졌다. 그는 흉노 정벌에 나섰다가 포로가 된 장수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남자의 심볼이 잘리는 궁형宮刑을 받는다. 자신의 몸을 지킬 생각이었다면 다른 신하들처럼 당연히 침묵을 지켜야 했지만 그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용기 있는 반역자의 길을 택한다. 사마천은 처절한 삶의 끝에서 이를 악물고 저술에 나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불굴의 정신은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라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세상은 참 묘하다. 재벌기업에서 회장의 뒤통수에 대고 총질을 하는 배신자들은 대부분 총수의 총애를 받고 탄탄대로를 달려온 측근인사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조직에 등 돌리고, 이제까지 다루었던 회사기밀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불행하게도 재벌기업 회장들이 감옥에 가는 이유는 대부분 한때 회장의 사랑을 듬뿍 받던 내부 밀고자들 탓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다가 야당으로 둥지를 옮긴 조응천 당선인이 20대 국회를 앞두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다. 조 당선인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기관을 손보겠다”고 엄포를 놓고, 그 당의 원내대표는 “하나씩 터뜨릴 것”이라며 맞장구를 친다.

정권의 그림자를 훤히 꿰고 있는 그가 터뜨릴 판도라상자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익을 앞세운다면 비난보다 장려해야 할 일이다. 잘못된 권력의 의사결정과정이 낱낱이 밝혀지고, 개선될 계기가 마련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리사욕이나 개인 감정을 앞세운다면 공복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배신행위다. 처지가 바뀌었다고 자기가 몸담았던 보금자리를 향해 불화살을 쏘아댄 사람치고 뒤끝이 좋은 경우가 별로 없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의 말에는 시대적인 사명이나 자기희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미래에는 일정한 한계가 보인다. 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음으로 양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4선에 성공했다면, 대통령의 말을 비틀지 않는 게 최소한의 신의다. 대신 국가의 미래와 정권재창출을 위해 새로운 깃발을 들어야 한다.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가야한다. 단순한 권력자의 배신자가 되지 말고, 민초를 향한 반역자가 되라는 얘기다.

어느 여당 의원은 ‘탈친박’을 선언하고 원내대표 출마를 고집하는 동료의원을 향해 “10년 넘게 대통령을 팔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자들이 이제는 대통령을 팔아넘겨 한자리를 하려고 한다”고 맹비난한다.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12제자인 베드로와 가롯 유다는 배신의 대명사로 꼽힌다. 유다는 스승인 예수를 은화 몇 냥에 팔았다가 훗날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한다. 배신을 당한 예수는 반역자로 몰려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만 사흘 만에 부활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배신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행동하는 양심은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다. 반역자 없는 세상은 참으로 무미건조하고 미래가 없다. 배신자가 득실거리는 세상은 악취가 진동한다. 역사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듣기 전에 차라리 지금 반역자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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