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활용한 연금의 명과 암

직장생활 20년 차인 김경준(가명)씨. 그는 최근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다.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였다. 하지만 아파트를 구입하느라 노후 준비를 아예 못한 게 부담이었다. 그런 그에게 ‘주택연금에 가입해 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김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주택연금의 명과 암을 알아봤다.

▲ 정부가 주택연금 가입 문턱을 낮추기로 하면서 연금 가입 신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노후준비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점이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공적연금 제도가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된 데다 잦은 이직으로 상당수 노동자의 퇴직금은 사라진 경우가 많다. 개인연금 가입률도 높지 않다. 그나마 은퇴 후 마련한 자산은 현금화하기 어려운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부동산 투자자는 많지만 실제로 쓸 돈은 없는 ‘하우스푸어’가 널려 있다는 거다.

이런 점에서 주택연금이 노후준비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택연금은 일종의 주택담보대출(역모기지론)이다. 보유 주택을 담보로 집의 가치에 해당하는 돈을 빌린다. 이를 다시 연금 수령 개월 수로 나눠 대출이자를 뺀 금액을 가입자가 매달 받아가는 개념이다. 연금 수령이 종료되면 주택이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아파텔 거주자도 가입 가능

2007년 처음 출시됐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부동산 소유에 집착하는 풍토 때문에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후 불안, 경기 침체, 저금리 등 갈수록 노후준비 여력이 없어지자 어느덧 누적 가입건수가 3만건(2016년 2월 기준)을 돌파했다. 주택연금을 활용하면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인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어 당당한 노후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 가입자는 앞으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주택연금 가입조건을 대폭 완화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의한 각종 법의 개정안에 따르면 그동안 가입이 제한됐던 9억원 초과 고가주택 소유자의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해졌다. 고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금 소득이 적어 생활에 불편을 겪는 노년층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또한 집을 두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주택가격 합산 9억원 이상)도 아무런 제한 없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고가주택일지라도 연금지급 기준이 되는 집값은 9억원까지만 인정한다. 집값이 9억원을 넘더라도 담보가 되는 가격은 9억원으로 보고 연금을 지급한다는 얘기다. 이는 고가주택 소유 가입자로 인한 주택연금 고갈을 막으려는 조치다.

대상 부동산도 확대됐다. 이제 아파텔을 포함한 주거용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도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시장에 공급되는 오피스텔 대부분은 아파트 못지않게 주거 요소를 갖추고 있다. 덕분에 수도권 전세난과 맞물려 주택 대체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 조치로 약 1만7000가구가 주택연금 가입 대상에 새로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한 ‘우대형 주택연금’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2억5000만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고령층(자산ㆍ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에게 정부 출연이나 주택도시기금 등 공공기금 지원으로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2억원짜리 주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택연금을 받으면 매월 45만5000원을 받는데, 우대형 주택연금은 연금 산정 이자율을 조정해 이보다 20% 많은 54만7000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가입조건이 완화되고 혜택이 늘어나면서 올해 4월 25일부터 5월 10일까지 주택연금에 가입을 신청한 건수만 874건이 됐다. 하루 평균 87.4건으로 지난해(29.3건)보다 가입 건수가 3배로 껑충 뛴 셈이다.

 
물론 주택연금에도 리스크는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주택연금에 가입한 뒤 집값이 오르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 결정된 월 지급금은 연금 가입 후 집값이 올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매월 받는 월 지급금을 평균 수명까지 단순 합산한 연금액이 주택가격보다 적다는 점도 가입을 꺼리게 하는 이유다.

기금 부실해지면 가입자 손해볼 수도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것보다 집 크기를 줄이거나 싼 집으로 이사를 가 목돈을 마련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이사를 가면 집값의 차액만큼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곽 지역으로 가거나 작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노후 라이프스타일을 잘 판단해 주택연금 가입을 결정하라고 권유하는 이유다.

리스크는 또 있다. 정부의 주택연금 확대를 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의 계획대로 유지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주택시장의 장기전망은 불투명한데도 가입자 리스크는 적어서다. 가입자는 폭증하고 주택시장이 침체기에 들어가 기금이 부실해지면 그 책임은 가입자가 부담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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