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도 먹는 장사에 뛰어드는 나라

▲ 20대 청년실업자가 44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사상 최대다. 이들을 취업절벽에서 구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것이다.[사진=뉴시스]
‘먹는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큰돈은 못 벌어도 되는 장사로 여겨왔다. 이제 이 말을 바꿔야 한다. ‘먹는 장사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비싼 가게 임대료에 종업원들 월급 주고, 식재료 비용 빼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움직인 노동의 대가도 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카페나 치킨집, 식당 등 요식업으로 몰려든다. 과거 40〜50대 중장년 여성이 주도했던 이곳에 최근 퇴직한 50~60대 베이비붐 세대와 20~30대 젊은층까지 대거 뛰어들고 있다. 수십만 음식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표적 레드오션 자영업에 세대간 다툼까지 가세하는 모습은 통계로 입증된다.

지난 7월 숙박ㆍ음식점업 취업자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5.6% 많은 233만명. 2012년 1월부터 역대 최장인 55개월 연속 증가세다. 이 분야의 취업자 증가세가 가팔라진 것은 2013년 하반기. 1955~1963년 출생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한 시기와 맞물린다. 여기에 대학을 나오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들까지 합세한다. 지난해 늘어난 20대 취업자 6만8000명 중 3만1000명이 숙박ㆍ음식점업 취업자였다. 그나마 요식업 창업도 자발적 선택이 아닌, 직장을 못 잡아 내몰린 청년들에게는 또 다른 절망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14년 기준 국내 요식업체는 65만1000개. 인구 79명에 1개꼴로 170명당 1개인 일본보다 두배 이상 많다. 특히 우리나라 전국의 치킨집은 3만6000개로 전 세계 맥도날드 점포보다 많다. 오죽하면 기승전결에 빗대어 ‘기승전치킨집’이란 말이 나돌까.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창업 의지는 중국보다 한참 낮다. 무역협회가 지난해 한중일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창업하겠다는 청년이 중국은 40.8%인 반면 한국은 6.1%에 그쳤다. 더 우울한 점은 우리 청년들의 창업 이유가 ‘취업하기 힘들어서’라는 것이다. 선호 업종 또한 중국이 정보기술(IT)을 꼽은 반면 우리는 요식업을 1위로 쳤다. 창업이 꿈을 펼치는 도전이 아닌 취업 대피소화한 것이다.

 
9급 공무원시험 공채에 22만명의 젊은이가 몰리고, 창업 아이템 1위가 요식업인 나라. 학자금 융자에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대학을 나온 흙수저 입장에선 괜찮은 인턴도, 정규직 일자리 잡기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암울한 현실에 ‘헬조선’ 운운하며 절망한다. 이들을 격려하자며 경기도 성남시와 서울시가 먼저 시작한 청년수당(배당)과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취업성공 패키지를 놓고 다투는 모습에 청년들은 더 절망한다.

올 상반기 20대 청년실업자는 44만8000명으로 사상 최대다. 이들을 취업절벽에서 구출해야 한다. 시간제 알바나 계약직ㆍ비정규직 위주로 일자리를 늘리면서 남 탓이나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말고 불굴의 정신으로 성공신화를 다시 이뤄내자고 다그칠 수 없다. 청와대가 앞장서 청년실업을 타개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여유가 있는 대기업과 공기업들이 나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정규직을 적극 채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청년위원회를 만들고, 11월 5일을 ‘청년의 날’로 지정하는 이벤트에 그쳐선 안 된다.

핀란드에선 국민기업 노키아가 망하자 모바일 게임 ‘앵그리 버드’가 세계를 휩쓸었다.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에 대응하지 못해 쓰러졌지만, 실업자들에게 재취업 및 창업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익히도록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충실하게 가동된 결과 앵그리 버드로 대표되는 신생기업들이 실업자를 흡수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5060세대 퇴직자도, 2030세대 젊은이들도 화가 난 표정으로 닭을 튀기는 ‘앵그리 치킨집’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요식업이 아닌 미래성장형 업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사회ㆍ교육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학생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교육 시스템부터 입시 위주에서 능력개발 중심으로 바꾸자. 창업 활성화를 위한 자금ㆍ마케팅 지원 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실패한 창업자를 위한 재활 프로그램도 구축하자. 계층간 사다리를 복원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자.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정책이 바로 창조경제 아닌가.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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