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진룡(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이 인터뷰는 9개월 전인 지난 2월 이루어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이다. 당시 그는 이런 이야기는 기사에 쓰지 않기를 바랐다. 기자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박근혜 정부 첫 내각에서 일한 유 전 장관이 파악한 박근혜 이야기.

▲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면 보고를 받지 않는 이유를 “대면 보고가 토론 상황으로 이어지는 게 달갑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진보 성향 문화계 인사 지원책을 놓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입장 차이가 있었다. 또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유 전 장관이 정부에 쓴소리를 한 것을 계기로 틀어지게 됐다고 들었다.”

2014년 10월 문화부 근무 중 사표를 낸 1급 공무원 최모씨는 최근 유 전 장관이 물러난 경위에 대해 중앙일보에 이렇게 밝혔다. 그를 포함해 당시 문화부 1급 공무원 6명이 일괄 사표를 냈는데 중앙일보는 “그 배경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유 전 장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유 전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간 다음 김기춘 비서실장이 유능한 1급 공무원 6명을 골라서 잘랐다. 이 ‘문체부 학살’이 다른 공무원 조직에도 소문 나면서 학습효과가 생겼다. 그런 식으로 조직을 정비한 거 아니겠느냐. 청와대 말을 안 들을 것 같은 사람들을 자르면 이후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다음부터 (미르ㆍK스포츠) 재단 등록이 하루 만에 이뤄진 것처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거다.”

기자는 지난 2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인터뷰했다. 우리는 인터뷰 후 주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그와 나눈 대화 일부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 세월호 참사 당시 내각 총사퇴를 건의한 것으로 압니다.
“내각 총사퇴 건은 당시 국무회의 때 한 여러 이야기 중 하나예요. 정말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졌는데 기성세대의 대표로서 공동의 책임을 느끼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자고 했습니다. 총사퇴 후 개각 때 일부 장관만 바뀌더라도 내각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효과도 생각했죠. 박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은 이런 건의 자체를 괘씸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건이 이날의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 그럼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나요?
“대통령이 결정해 주지 않으면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결정하려 들지도 않았거든요. 아무도 대통령이 결정하는 과정에 끼어들지도,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않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이야기 끝에 대통령이 무척 화를 냈습니다.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면 사달이 날 걸 알았지만 입 다물고 장관 자리를 지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가 그만두고 난 후에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습니다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죠.”

그는 자신이 장관을 그만둔 후 일어난 메르스 사태를 예로 들었다. 환자 격리 여부 및 감염 병원 발표 결정 등이 늦어진 게 일일이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했기 때문인 듯하다는 것이었다. 유 전 장관은 이날 박근혜 정부에 자신이 입각한 동기에 대해 털어놓았다. 당선자 시절 박 대통령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대선 때 자신을 찍은 문화예술인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묻더니 “별로 없겠죠” 하고 자문자답하더라고 그는 말했다.

“자신에게 반대한 문화예술인도 다 끌어안고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고 제가 그렇게 보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입각해 그 역할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라면 중요할뿐더러 보람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반드시 그런 과정이 필요하고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완장을 두르고 반대했던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일이 벌어졌거든요. 한가지 더, 대통령이 우리 사회가 금전만능주의와 경쟁 지향적 풍조에 젖어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런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김기춘 실장이 부임한 후 대통령에게 반대한 사람들을 쳐 내는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반대한 전력이 있는 단체에 대한 지원을 왜 중단하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었어요.”
 

✚ 당초 대통령의 약속 및 주문과 충돌하는 요구군요.
“2014년 1월 대통령 면담을 신청해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분명히 반대한 사람들도 안고 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저는 그 일을 하러 정부에 들어왔고 이렇게 반대자를 쳐 달라고 할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원래 생각대로 그렇게 하세요’ 하는 겁니다. 당시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주프랑스 대사)이 배석했는데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대통령의 약속과 배치되는 김 실장의 지시는 따를 의사가 없으니 아예 나에게 전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 대사는 유 전 장관의 문화부 후배다. 최근 동아일보는 장폴 베르메스 프랑스 파리상공회의소 의장이 미르재단과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가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당시 모 대사가 미르재단을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알져진 대로 그 후 김 실장의 청와대는 아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DJ·盧 정부 10년은 역사의 순리

✚ 대통령이 이중 플레이를 했군요?
"진정성이 없었다고 봅니다. 취임 후 생각이 변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당선자 시절의 언급이 미처 체화되지 않은 가치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죠. 100% 대한민국이나 경제 민주화 공약에 대해 후보 시절 가정교사에게서 배우고 암기는 했지만 입속에서 맴돌았을 뿐 체화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그랬기에 그런 용어들이 두어달 후 자취를 감췄고 통일 대박이니 하는 말들이 튀어나온 거겠죠. 전교조, 전공노 등 법외 노조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과거엔 법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같이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 박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를 실현한 이른바 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라고 봅니다. 87년 체제의 또 다른 면모가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입니다. 만일 대통령에게 여전히 국회해산권이 있다면 박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해산했을 거로 봅니다. 자신은 국가와 결혼했고 자신의 결정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람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을 참아야 하는 겁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대통령이 생각하는 틀 안에서 북한에 내 생각을 따르라고 강요해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실제로 금강산 관광 등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는 건 어떤 것도 한 게 없어요. 비정상화의 정상화라고 하지만 정상성 판단의 유일한 절대적 잣대가 자신의 생각입니다.”

✚ 이 정부에 고언을 한다면…
“중소기업도 커지면 오너가 권한을 위임합니다. 국가는 대기업보다 훨씬 큰 조직이에요. 그런데 대통령이 위임전결을 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과장보다 하위직에 대해서는 장관에게 인사권을 다 줬다고 할지 모르죠.”

✚ 어떻든 국가 거버넌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한 사람만 바뀌면 돼요. 대통령이 제도적 거버넌스를 무력화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에 따라 우리나라의 거버넌스도 제도적 진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거버전스의 구성 요소는 제도만이 아니에요.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서로 신뢰할뿐더러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MB(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지금과 달랐다고 했다. 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대통령이 특별한 공식 일정이 없으면 30분, 한시간씩 용건 없이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 얘기를 들어보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수석회의가 열리면 몇시간씩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스템이 사라진 겁니다. 김기춘 실장이 청와대를 나온 후엔 우병우 민정수석이 그 역할을 대신했죠. MB 때 그렇게 토론을 벌이고도 결론이 부실했던 건 MB 정부 사람들이 너무 동질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 현재 대법원 구성 같았군요.
“그렇게 볼 수 있죠. 이질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활발하게 토론을 벌여 결론을 내야 합니다.”

✚ 박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기피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면 보고가 토론 상황으로 이어지는 게 달갑지 않은 거겠죠.”

✚ 문화부 차관을 지낸 노무현 정부 땐 어땠나요?
“문제 있는 청와대 비서관은 있었지만 시스템으로서의 거버넌스는 기능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장관들이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했죠.”
 

▲ 유 전 장관은 “대통령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반대 목소리에 과민 반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7일 수능을 끝낸 고3 학생과 청소년들의 박근혜 대통령 하야 집회에서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 DJ 정부에서 노 정부에 이르는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거치는 단계였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공적 권위를 상실하고 (균형 성장을 추구하느라) 성장을 포기한 시대였다고 하는데 이 두 정부의 출현은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와 성장주의로 치달았기에 생겨난 반작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이들 정권 담당자를 주역으로 만든 거죠.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고 우파 사람들이 계속 정권을 잡았다면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우리 사회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해졌을 거예요. 반대 세력을 억압해 토론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우리 사회의 빈곤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구조의 문제죠.”

✚ 대통령이 이런저런 브랜딩엔 능한 거 같아요.
“프레임 싸움에 능한 거죠.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프레임에 가두는 겁니다. 가령 개성공단 폐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에 반대하면 거의 매국노가 돼 버려요. 북한이 벌일지 모르는 일을 다 열거합니다. 그중에 한 가지는 김정은이 할 거예요. 그럼 ‘이거 봐라. 우리가 예상한 대로지 않은가’ 하는 거죠. 이런 구조로 갈 수밖에 없도록 프레임을 짜는 겁니다. 과거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일반적 컨센서스가 있었습니다. 그게 무너지고 각자 도생하는 세상이 돼 버렸어요. 박 대통령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위기 상황입니다. 이 위기를 타개하는 유일한 길은 서로 화합하고 중지를 모으는 겁니다. 대통령이 말씀하신 100% 대한민국이죠.’ 그 과정에서 지도자가 되레 배신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만델라처럼 포용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사회가 바뀝니다. 대통령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반대 목소리에 과민 반응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혼자 결정하니 자신도 없고 배신감을 느끼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위험합니다.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지도자가 먼저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다 복부를 가격 당하면 배를 끌어안고 가는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야죠.”

박근혜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국기 문란을 자초해 95%의 국민을 통합시켰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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