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숨은 진짜 문제

▲ 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에 외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 500조원이 훌쩍 넘는 돈을 굴리면서 국민의 노후를 준비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당연히 국민의 뜻에 반한 운용을 해선 안 된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이상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한 결정에 한몫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사실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벌써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각종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 안전한 노후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외압을 못 이긴 정경유착의 결정체일까.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고 있는 사정 당국의 칼끝이 국민연금공단을 향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한 이유가 지저분한 정경유착의 결과물이 아니냐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합병의 표면적 이유는 시너지 창출과 지배구조 개편. 하지만 시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합병 이유를 해석했다. 삼성그룹은 2013년부터 사업재편을 통해 제일모직을 순환출자 고리의 정점으로 만들었다. 이런 제일모직에 삼성전자의 지분 4.1%를 보유한 삼성물산을 합치면(인수ㆍ합병), 제일모직 지분 22.4%를 가진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런 시나리오는 1대 0.35로 책정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적법한 비율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었다. 2015년 3월 기준으로 삼성물산의 자산(29조6000억원)이 제일모직(8조4000억원)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이 3배나 큰 삼성물산을 유리한 조건으로 M&A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2대 주주(11.2%)였던 국민연금이 불공평한 M&A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당연히 외압 의혹이 일었고, 특검이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성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소환했다. 특검 수사를 통해 나오는 두 사람의 진술은 그동안의 의혹이 ‘뒷말’만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문 이사장은 “삼성합병 찬성을 지시했다”고 고백했다. 의결권행사 자문위원회에서 합병 반대 의견이 나올 것을 우려해 내부 투자위원회가 결정하게 압박했다는 것이다. 홍 전 본부장도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간부로부터 합병 찬성요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정경유착에 휘둘린 국민의 노후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에 따라 책임 있는 판단 주체로서의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밝힌 기존의 진술은 거짓이 된 셈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국민의 종잣돈’을 굴리는 곳이라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올 9월 기준 운용자산 규모는 540조원에 달한다. 이 돈을 굴려 가입자 2179만명의 안전한 노후를 준비하는 게 국민연금의 역할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투자는 국민의 노후가 아닌 윗선의 입김에 좌지우지됐다. 이런 맥락에서 국민연금의 자금을 정부가 하라는 대로 운용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파장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물산 소액주주인 일성신약은 합병무효소송, 주식매수가액 경정소송,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2016년 12월 1일에는 시민 1만3000여명의 서명을 받은 한 시민단체가 정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라고 청원했다.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은 “국민 노후를 위해 마련된 국민연금이 불합리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약 4900억원의 손실을 봤다”면서 “결국 국민연금으로 삼성의 경영권 편법 승계를 도와주고 정유라의 말과 최순실의 호텔을 사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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