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이에 훈장 줘라
당신의 나이에 훈장 줘라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25
  • 승인 2017.01.2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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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내 나이가 어때서…

▲ 선출직 65세 정년 주장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00세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사진=아이클릭아트]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에 나오는 노인들의 모습은 비참하다. 대통령은 신년담화를 통해 일도 않고 밥만 축내는 노인을 ‘불사不死의 로봇’이라고 비난한 뒤 공권력을 동원해 노인 제거에 나선다.

70대 노인인 프레드와 뤼세트 부부는 기관에 끌려가기 직전에 탈출해 반정부투쟁을 벌이지만 정부가 퍼뜨린 독감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료들이 하나둘 죽어간다. 결국 체포된 프레드는 자신에게 죽음의 주사를 놓으려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 늙은이가 될 게다.”

 현대판 고려장이 연상되는 이 소설은 노인문제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지난해 말 처음으로 국내 만 65세 이상 인구(699만명)가 15세 미만 인구(691만명)를 추월했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수명은 길어지니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세대간 갈등이 본격화할 것이다. 좀 산다는 나라 가운데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가 한국이다. 허리가 휘는 집값과 사교육비로 저축을 제대로 못했고, 자녀들이 커서 겨우 한숨 돌렸다 싶으면 퇴직으로 내몰리는 탓이다.

가뜩이나 힘들게 사는 어르신 세대를 향해 한 현역의원이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표창원(49ㆍ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모든 선출직과 최고위 정무직에 65세 정년 도입이 필요하다‘고 한 발언 때문이다. 표 의원의 주장은 후진적인 한국정치에 새바람을 몰고 왔으면 하는 염원에서 한 말일 게다. 그러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과 김종인, 손학규 등 쟁쟁한 70대 정객들을 싸잡아 매도하겠다는 노림수로 보일 소지가 있다. 차라리 문재인 전 대표까지 출마하지 못하도록 ‘선출직 60세 정년’으로 낮추자고 제안했으면 진정성을 인정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나이(Age)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현직 대통령까지 성형 의혹에 휘말릴 정도다. 그만큼 젊음에 대한 욕망이 크고, 나이를 부끄러워하는 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나이든 사람의 지혜를 활용하기는커녕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니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경험이나 기술 등 정신적인 역량은 오히려 증대된다. 현재의 업무가 젊은층에 맞게 디자인돼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부엉이(미네르바)를 지혜의 신으로 여기는데 이는 올드(Old)의 표상이다. 누구나 연령제한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촉발한 탄핵정국으로 한국은 지금 표류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관용의 정신이 넘치는 지혜로운 어르신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는 김대중 대통령은 75세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강한 미국의 대명사인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80살이 넘어 재선에 성공했다. 중국 등소평은 90살이 가까운 나이에 남방순례를 하면서 시장경제로 중국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공자는 당시 평균수명이 훨씬 지난 나이인 55세에 천하주유를 시작해 14년간의 수난을 거쳐 유가철학의 대가로 우뚝 섰다. 영원한 현역이던 그는 73세의 어느날 ‘마침내 하나도 이룬 것이 없음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이룬’ 위대한 인생역정을 마감한다.

히브리어에는 ‘우연偶然’과 ‘은퇴隱退라는 단어가 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숨쉬고, 일하고, 먹고, 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은퇴라는 개념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년停年은 산업사회에서 인간을 부품처럼 버리기 쉽도록 억지로 만들어낸 ‘사악한’ 단어다. 나이가 젊어도 무능하면 일찍 퇴출되어야 하고,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조직에 도움이 된다면 오래 남아있어야 하는 게 순리다.

설(1월 28일)을 쇠면 누구나 좋든 싫든 나이테를 하나 추가한다. 뇌가 굳어간다고, 흰머리가 늘어간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얼마나 젊게 사느냐, 생각이 얼마나 진취적이냐의 문제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올해 98세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100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인 것 같다”며 “50대에 제2의 마라톤을 달리는 각오로 인생을 새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스로의 나이에 훈장을 수여하면 어떨까.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트로트곡이 있다. 대답은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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